거시수단 빠진 연착륙 대책으론 한계 … 금리인상 타이밍 놓쳐
경제위기 본격화되면 가계부담 증가 … 부동산 거품부터 없애야
국가부채 문제가 기준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통계수치로 인해 가려져왔다면 가계부채의 위험성은 오래전부터 인식되어온 문제다. 금융당국 수장인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가계부채를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기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빚은 많은데 상환능력은 취약 = 가계부채는 한 나라의 개인 또는 가계전체가 금융회사로부터 빌린 빚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가계신용 통계가 활용된다. 가계신용은 은행 등 금융회사가 가계에 빌려준 가계대출과 신용카드나 할부 판매 이용액(판매신용)을 합친 것이다.
지난 3월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신용 규모는 가계대출 752조27억원과 판매신용 49조13억원을 합쳐 801조40억원에 달한다.
한국은행은 2분기말 가계신용 통계를 내면서 그동안 자료수집 곤란 등으로 반영하지 못했던 증권회사, 대부사업자, 연금기금 등의 가계대출금을 포함시켰다. 그랬더니 2분기말 현재 가계신용은 876조3000억원으로 늘어났다. 바뀐 통계기준을 적용하면 1분기말 가계신용은 857조4000억원. 1분기만에 18조9000억원이 증가한 셈이다. 이같은 추세라면 가계부채 900조원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순수 가계 이외에 소규모 개인 기업과 민간 영리단체 부채를 포함한 개인금융부채는 이미 지난 3월말 1000조원을 넘어 1006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문제는 가계부채의 증가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데 있다. 1999~2010년중 가계부채 증가율은 연평균 13%로 같은 기간 연평균 경상 GDP 증가율 7.3%을 크게 상회했다. 이에 따라 2000년말 214조원 수준에 그쳤던 가계부채는 10여년만에 세 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가계부채가 급증한 것은 2000년대 들어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집 값이 오르자 너도나도 주택담보대출 등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주택구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들도 외환위기 이후 기업대출에 비해 위험이 작고 손쉽게 수익을 낼 수 있는 가계대출에 치중하면서 이같은 현상을 부채질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 국가들이 부동산 거품을 거둬내고 가계부채를 줄일 때에도 우리나라의 가계부채의 증가세는 멈추지 않았다.
가계부채 규모가 크고 빠르게 증가해도 갚을 능력 범위 내에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취약한 편이다. 개인의 부채 상환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인 개인 가처분소득 대비 개인부채 비율의 경우 우리나라는 2010년말 기준 146%에 달한다. 이는 13개 주요 OECD국가의 평균치인 133%보다 높은 수준이다. 서브프라임 사태 발생 당시 미국(130%) 보다도 높다. 가처분소득 대비 개인부채 비율이 높다는 것은 소득에 비해 갚아야 할 빚이 많다는 의미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세계경제의 위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기가 침체되면 국내 경기도 위축되면서 가계 소득이 줄고 그만큼 채무상환능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빚을 갚을 수 없게 된 가계가 부동산을 내놓기 시작하면 자산가치가 폭락하고 이는 다시 소비위축과 경기침체로 이어져 가계소득이 줄어드는 악순환을 낳는다.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이유다.
◆"청와대부터 인식 바꿔야" = 금융당국이 가계 부채 연착륙 대책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6월말 가계부채 증가를 적정 수준에서 관리하고 경기 변동에 따른 위험이 적은 고정금리·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 확대를 유도하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책이 발표된 이후인 7~8월 금융회사 가계대출 증가액이 10조2000억원으로 최근 4년중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등 오히려 급증했다. 저금리가 지속되는 가운데 전세 등 물가 상승 등으로 가계의 자금수요가 증가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관리'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미시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송태정 우리금융 수석연구위원은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시적인 대책보다도 금리 인상 등 거시정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며 "가계부채 대책에 거시정책 수단이 빠져 있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사실 가계부채를 줄이고 신규 대출 수요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준 금리를 인상해 자연스럽게 대출 금리가 올라가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도 금리는 내버려둔 채 미시수단만 동원하다보니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책 발표 이후에도 가계대출이 줄지 않자 금융당국이 총량규제를 하면서 일부 시중은행들이아예 대출을 중단한 사태가 벌어진 것은 대표적이다.
인위적으로 은행 대출을 억제하자 2금융권 대출이 급증하는 등 '풍선효과'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은이 금리인상에 미적거리는 동안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 등이 확산되면서 이제는 금리를 올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부동산 정책 등 청와대와 정부의 경제관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면서 가계부채를 잡으려다보니 대책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가계부채로 떠받치고 있는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면서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며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대통령과 청와대부터 인식을 바꾸고 가계부채 증가 억제를 위한 강력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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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본격화되면 가계부담 증가 … 부동산 거품부터 없애야
국가부채 문제가 기준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통계수치로 인해 가려져왔다면 가계부채의 위험성은 오래전부터 인식되어온 문제다. 금융당국 수장인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가계부채를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기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빚은 많은데 상환능력은 취약 = 가계부채는 한 나라의 개인 또는 가계전체가 금융회사로부터 빌린 빚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가계신용 통계가 활용된다. 가계신용은 은행 등 금융회사가 가계에 빌려준 가계대출과 신용카드나 할부 판매 이용액(판매신용)을 합친 것이다.
지난 3월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신용 규모는 가계대출 752조27억원과 판매신용 49조13억원을 합쳐 801조40억원에 달한다.
한국은행은 2분기말 가계신용 통계를 내면서 그동안 자료수집 곤란 등으로 반영하지 못했던 증권회사, 대부사업자, 연금기금 등의 가계대출금을 포함시켰다. 그랬더니 2분기말 현재 가계신용은 876조3000억원으로 늘어났다. 바뀐 통계기준을 적용하면 1분기말 가계신용은 857조4000억원. 1분기만에 18조9000억원이 증가한 셈이다. 이같은 추세라면 가계부채 900조원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순수 가계 이외에 소규모 개인 기업과 민간 영리단체 부채를 포함한 개인금융부채는 이미 지난 3월말 1000조원을 넘어 1006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문제는 가계부채의 증가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데 있다. 1999~2010년중 가계부채 증가율은 연평균 13%로 같은 기간 연평균 경상 GDP 증가율 7.3%을 크게 상회했다. 이에 따라 2000년말 214조원 수준에 그쳤던 가계부채는 10여년만에 세 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가계부채가 급증한 것은 2000년대 들어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집 값이 오르자 너도나도 주택담보대출 등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주택구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들도 외환위기 이후 기업대출에 비해 위험이 작고 손쉽게 수익을 낼 수 있는 가계대출에 치중하면서 이같은 현상을 부채질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 국가들이 부동산 거품을 거둬내고 가계부채를 줄일 때에도 우리나라의 가계부채의 증가세는 멈추지 않았다.
가계부채 규모가 크고 빠르게 증가해도 갚을 능력 범위 내에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취약한 편이다. 개인의 부채 상환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인 개인 가처분소득 대비 개인부채 비율의 경우 우리나라는 2010년말 기준 146%에 달한다. 이는 13개 주요 OECD국가의 평균치인 133%보다 높은 수준이다. 서브프라임 사태 발생 당시 미국(130%) 보다도 높다. 가처분소득 대비 개인부채 비율이 높다는 것은 소득에 비해 갚아야 할 빚이 많다는 의미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세계경제의 위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기가 침체되면 국내 경기도 위축되면서 가계 소득이 줄고 그만큼 채무상환능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빚을 갚을 수 없게 된 가계가 부동산을 내놓기 시작하면 자산가치가 폭락하고 이는 다시 소비위축과 경기침체로 이어져 가계소득이 줄어드는 악순환을 낳는다.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이유다.
◆"청와대부터 인식 바꿔야" = 금융당국이 가계 부채 연착륙 대책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6월말 가계부채 증가를 적정 수준에서 관리하고 경기 변동에 따른 위험이 적은 고정금리·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 확대를 유도하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책이 발표된 이후인 7~8월 금융회사 가계대출 증가액이 10조2000억원으로 최근 4년중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등 오히려 급증했다. 저금리가 지속되는 가운데 전세 등 물가 상승 등으로 가계의 자금수요가 증가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관리'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미시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송태정 우리금융 수석연구위원은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시적인 대책보다도 금리 인상 등 거시정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며 "가계부채 대책에 거시정책 수단이 빠져 있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사실 가계부채를 줄이고 신규 대출 수요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준 금리를 인상해 자연스럽게 대출 금리가 올라가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도 금리는 내버려둔 채 미시수단만 동원하다보니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책 발표 이후에도 가계대출이 줄지 않자 금융당국이 총량규제를 하면서 일부 시중은행들이아예 대출을 중단한 사태가 벌어진 것은 대표적이다.
인위적으로 은행 대출을 억제하자 2금융권 대출이 급증하는 등 '풍선효과'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은이 금리인상에 미적거리는 동안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 등이 확산되면서 이제는 금리를 올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부동산 정책 등 청와대와 정부의 경제관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면서 가계부채를 잡으려다보니 대책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가계부채로 떠받치고 있는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면서 가계부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며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대통령과 청와대부터 인식을 바꾸고 가계부채 증가 억제를 위한 강력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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