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바도르 달리,황혼의 격세유전 (강박적 현상),1933~1934,패널에 유화, 14 X 18 cm,베른 국립미술관.
일체의 평범을 거부한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들은 기발하면서도 기괴하며 또 기상천외 합니다. 통상적인 개념이나 이미지를 완전 해체하거나 뒤집어 놓음으로써 그의 작품들은 새로우면서도 괴상망측해서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또 단순히 작품만 괴상한게 아니라 그의 삶 자체도 그리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달리의 예술에는 세상을 보는 그만의 평범하지 않은 괴이한 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달리의 예술은 기존의 이미지나 상식을 확 뒤집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이렇듯 기존 상식을 뛰어넘는 달리 미술에 비교적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거장 밀레의 명화 '만종'을 패러디한 일련의 작품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밀레의 '만종'은 이미 달리 시대 이전부터 유럽의 대표적인 명화로 자리잡은 작품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만종'을 보고 자란 달리는 이후 '만종'에 광적으로 집착합니다.
'황혼의 격세유전'은 밀레의 '만종'이 지닌 경건하고 거룩한 이미지를 완전히 뒤엎은 문제작으로 꼽힙니다. 달리의 작품에는 밀레의 '만종'에 나오는 순박한 시골 농부는 온데간데 없고, 해골형상의 기괴한 인물이 등장하는데다 수확한 곡식을 담아 둔 수레마저 농부의 머리 위에 달라붙어 있습니다. 밀레의 '만종'이 농촌의 현실을 바탕으로 시골농부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면, 달리의 '황혼의 격세유전'은 농촌이 아닌 황야로 무대를 옮겨놓은 한 편의 공포 드라마를 보는 듯 합니다. 밀레의 작품이 지극히 현실적이라면, 달리의작품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입니다.
달리가 그토록 밀레의 그림에 집착했던 이유는 그가 쓴 '밀레의 만종에 담긴 비극적 신화'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만종'의 원제는 '삼종기도'인데, 달리는 어렸을때부터 신앙심이 깊었던 할머니로부터 삼종기도의 종소리가 들릴 때는 일을 멈추고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달리에게 '만종'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난 후 감사의 마음과 경건한 기도를 그린 거룩한 작품이 아니라, 죽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기도를 그린 다소 섬뜩한 작품이라는 얘기입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만종,1859년,캔버스에 유화,55.5x66cm,프랑스 루브르 미술관.
밀레의 '만종'에 먹을 것을 담은 바구니도 달리는 이들 부부의 아이를 담은 관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부부의 기도 역시 수확에 대한 감사의 기도가 아니라, 세상을 떠난 아이를 위한 추모의 기도로 보고 있습니다. 밀레의'만종'에 대한 세간의 통상적인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참으로 별스럽고 해괴망측한 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듯 '만종'에 대한 해괴한 해석을 바탕으로 완성한 것이 만종을 패러디한 일련의 연작들이며. 그 중에서도 '황혼의 격세유전'은 '만종'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기존 작품의 경건한 이미지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괴작입니다. '만종'을 다른 시각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기에 달리의 작품은 '만종'과 구별되는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인의 자세는 기도하는 모습이 아니라 사마귀가 공격하기 직전의 포즈인데, 그녀는 가면을 쓰고 남자에게 덤벼들기 직전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남편이 아닌 그녀의 아들인데, 성적인 기대감과 공포심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합니다. 즉 아들은 저항하기 힘든 어머니의 매력에 빠져있지만, 동시에 암사마귀가 교미 후 수컷을 머리부터 씹어먹을 것을 알고 있기에 공포심에 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한 편의 공포 드라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근친상간이나 곤충의 생태까지 동원하여 밀레의 '만종'을 완벽하게 해체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달리다운 패러디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 내막을 알고 나면, 패러디를 넘어 위대한 작품을 송
두리째 파괴하여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탈바꿈시킨 달리의 '발칙한 도발'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평범한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편집증적 집착과 과대망상을 예술로 옮겨놓은 달리는 20세기 초 초현실주의 그룹 중에서도 단연 튀는 존재입니다. 달리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괴짜를 넘어 거의 정신병자 수준에 이른 그의 광적인 행태에 놀라게 됩니다.
작품에 앞서 이미 그의 사고와 삶 자체가 초현실적이었던 것입니다.
물고기의 입에서 호랑이가 튀어나오거나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코끼리가 사막을 힘겹게 걸어가는 엉뚱하고 기괴한 이미지는 달리의 작품에 흔히 등장하는 것들입니다. 달리는 20세기 초현실주의 미술의 가장 대표적인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지만, 그는 예술과 삶이 분리되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갖가지 기행으로 미술계의 광인으로 불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스스로 천재를 자처했던 달리의 자위도취와 과대망상은 그의 유명한 말만 봐도 알 수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내가 살바도르 달리라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
[이슈데일리 박정은 미술컬럼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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