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대법원 기능 변화 시사 … 연구 착수
대법원 사건부담 해소없이 대법관 구성 다양화 어려울듯
지난 1년간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3만 6000건. 대법관 12명으로 단순하게 나누면 대법관 1명 당 3000건을 처리해야 한다. 1년 365일 매일 일해도 하루 8건에 대해 결론을 내려야 하는 살인적인 업무부담이다.
27일 취임한 양승태 대법원장(63·사법연수원 2기)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대법원은) 하급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원래 기능이 아니다"며 "제도 취지에 상고허가제가 맞고 법 실정적으로도 적합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상고허가제는 항소심 재판이 끝난 사건의 당사자가 대법원에 상고를 하려고 할 때 대법원이 원심 판결 기록과 상고 이유서를 검토해 상고 허가여부를 사전에 결정하는 제도이다. 법률심인 대법원의 본래 기능을 원칙으로 하면 사실관계의 다툼을 이유로 상고하는 사건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양 대법원장은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대법원에 상고해서 최종 판단을 받자는 국민 욕구가 계속돼 왔다"며 "상고허가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게 사법부의 도리여서 구체적으로 연구해보겠다"고 말했다.
◆상고허가제와 대법관 구성 다양화 병행해야 = 양 대법원장은 대법원이 본래의 기능을 회복해 미국과 같이 모든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로 판단하게 되면 현재 12명의 대법관도 많다는 입장이다. 그는 "대법원 기능을 수행하려면 (대법관) 12명도 많다고 생각한다"며 "12명도 (합의를) 하기가 참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어떤 기능을 수행할 것인가의 문제는 대법관 구성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양 대법원장은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 모여서 논의하는 게 대법원의 원래적 기능에 맞다"면서도 "법령 해석 기능보다 하급심의 잘잘못을 따지는 기능에 대법원이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현실에서 고도의 법적 경험과 소양을 갖춘 사람들이 필요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대법원 구조에서는 다양성만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는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대법원이 법령해석 기능을 할 수 있게끔 병행해 나가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처음 대법관을 제청할 때 파격적으로 했는데 두 번째부터는 그 정도 까지는 아니고 과거 전통적으로 회귀한 걸로 안다"며 "과거 패턴대로 돌아간 이유가 뭘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기능을 바꾸지 않고는 다양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말한 것으로, 뒤집어 보면 대법원의 기능을 바꾼 이후에는 대법관 인선에 다양화를 본격적으로 시도하겠다는 말로 풀이된다.
◆국회 주도의 사법개혁 반대 = 양 대법원장은 최근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서 추진한 대법관 증원과 양형기준법 제정 등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사법부는 입법부나 행정부와 더불어 권력분립의 한 축"이라며 "한 축에서 다른 축을 너무 지나치게 관여하면 헌법적 균형추가 기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아무리 부당하고 합리성이 떨어져도 명시적으로 법률에 정해진 것을 법원이 달리 해석한다면 입법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입법부도 사법부를 존중해줘야 하듯이 그 반대도 삼권 분립의 기본 취지에 맞다"고 강조했다.
◆"불구속수사 원칙 양보 못해" = 양 대법원장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 재임 기간 중 검찰과 갈등을 겪었던 구속영장 문제와 관해 "기본적으로 불구속수사 원칙은 형소법에 명문화돼 있다"며 "법원에서 원칙적으로 추구해야 할 부분이고 양보 못할 부분"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람이 불구속되는 것을 비난하는 국민 시각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면서도 "법원이 원칙을 깨 가면서 국민 인식에 영합해야 한다고 법관에게 권유할 수 없을 듯하다"고 덧붙였다.
양 대법원장은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다른 국가에서 시행 중인 보석조건부 영장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언급해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영미에서는 수사기관에서 영장 청구를 하면 발부하면서 발부단계에서 미리 보석처분을 정한다"며 "구속 효과도 달성하면서 신병 자체는 현실적으로 제한되지 않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좋은 제도"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체포된 피의자를 즉시 법원으로 보내 최초의 출석기일에 부판사가 서약서나 보석금 등 석방조건을 정해 피의자를 석방한다.
양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사법부의 인사권을 분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법원장 인사권 분산, 1·2심 법관 분리인사는 계속 = 그는 "인사권을 분산시키겠다는 생각은 과거부터 갖고 있었고 건의도 했다"며 "법개정을 통해 할지, 법개정 없이 고등법원장들의 의견을 받아서 그대로 인사를 할지 등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판사들을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판사로 분리해서 인사를 하는 '법관 인사 이원화'와 관련해서는 법과인사제도의 변화가 불가피했고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양 대법원장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추진했던 정책들은 과거부터 내려오는 일관된 대법원 정책 방안"이라며 "저도 계속 이어받을 것"이라고 말해 공판중심주의·구술심리 등 기존 재판제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궁극적인 사법부의 지향 목적을 첫째가 재판독립, 둘째가 국민신뢰 확보"라면서 "어떤 방법으로 더 할 수 있는가가 남은 것이지 궁극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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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사건부담 해소없이 대법관 구성 다양화 어려울듯
지난 1년간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3만 6000건. 대법관 12명으로 단순하게 나누면 대법관 1명 당 3000건을 처리해야 한다. 1년 365일 매일 일해도 하루 8건에 대해 결론을 내려야 하는 살인적인 업무부담이다.
27일 취임한 양승태 대법원장(63·사법연수원 2기)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대법원은) 하급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원래 기능이 아니다"며 "제도 취지에 상고허가제가 맞고 법 실정적으로도 적합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상고허가제는 항소심 재판이 끝난 사건의 당사자가 대법원에 상고를 하려고 할 때 대법원이 원심 판결 기록과 상고 이유서를 검토해 상고 허가여부를 사전에 결정하는 제도이다. 법률심인 대법원의 본래 기능을 원칙으로 하면 사실관계의 다툼을 이유로 상고하는 사건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양 대법원장은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대법원에 상고해서 최종 판단을 받자는 국민 욕구가 계속돼 왔다"며 "상고허가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게 사법부의 도리여서 구체적으로 연구해보겠다"고 말했다.
◆상고허가제와 대법관 구성 다양화 병행해야 = 양 대법원장은 대법원이 본래의 기능을 회복해 미국과 같이 모든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로 판단하게 되면 현재 12명의 대법관도 많다는 입장이다. 그는 "대법원 기능을 수행하려면 (대법관) 12명도 많다고 생각한다"며 "12명도 (합의를) 하기가 참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어떤 기능을 수행할 것인가의 문제는 대법관 구성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양 대법원장은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 모여서 논의하는 게 대법원의 원래적 기능에 맞다"면서도 "법령 해석 기능보다 하급심의 잘잘못을 따지는 기능에 대법원이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 현실에서 고도의 법적 경험과 소양을 갖춘 사람들이 필요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대법원 구조에서는 다양성만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는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대법원이 법령해석 기능을 할 수 있게끔 병행해 나가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처음 대법관을 제청할 때 파격적으로 했는데 두 번째부터는 그 정도 까지는 아니고 과거 전통적으로 회귀한 걸로 안다"며 "과거 패턴대로 돌아간 이유가 뭘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기능을 바꾸지 않고는 다양화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말한 것으로, 뒤집어 보면 대법원의 기능을 바꾼 이후에는 대법관 인선에 다양화를 본격적으로 시도하겠다는 말로 풀이된다.
◆국회 주도의 사법개혁 반대 = 양 대법원장은 최근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서 추진한 대법관 증원과 양형기준법 제정 등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사법부는 입법부나 행정부와 더불어 권력분립의 한 축"이라며 "한 축에서 다른 축을 너무 지나치게 관여하면 헌법적 균형추가 기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양 대법원장은 "아무리 부당하고 합리성이 떨어져도 명시적으로 법률에 정해진 것을 법원이 달리 해석한다면 입법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입법부도 사법부를 존중해줘야 하듯이 그 반대도 삼권 분립의 기본 취지에 맞다"고 강조했다.
◆"불구속수사 원칙 양보 못해" = 양 대법원장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 재임 기간 중 검찰과 갈등을 겪었던 구속영장 문제와 관해 "기본적으로 불구속수사 원칙은 형소법에 명문화돼 있다"며 "법원에서 원칙적으로 추구해야 할 부분이고 양보 못할 부분"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람이 불구속되는 것을 비난하는 국민 시각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면서도 "법원이 원칙을 깨 가면서 국민 인식에 영합해야 한다고 법관에게 권유할 수 없을 듯하다"고 덧붙였다.
양 대법원장은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다른 국가에서 시행 중인 보석조건부 영장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언급해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영미에서는 수사기관에서 영장 청구를 하면 발부하면서 발부단계에서 미리 보석처분을 정한다"며 "구속 효과도 달성하면서 신병 자체는 현실적으로 제한되지 않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좋은 제도"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체포된 피의자를 즉시 법원으로 보내 최초의 출석기일에 부판사가 서약서나 보석금 등 석방조건을 정해 피의자를 석방한다.
양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사법부의 인사권을 분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법원장 인사권 분산, 1·2심 법관 분리인사는 계속 = 그는 "인사권을 분산시키겠다는 생각은 과거부터 갖고 있었고 건의도 했다"며 "법개정을 통해 할지, 법개정 없이 고등법원장들의 의견을 받아서 그대로 인사를 할지 등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판사들을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판사로 분리해서 인사를 하는 '법관 인사 이원화'와 관련해서는 법과인사제도의 변화가 불가피했고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양 대법원장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추진했던 정책들은 과거부터 내려오는 일관된 대법원 정책 방안"이라며 "저도 계속 이어받을 것"이라고 말해 공판중심주의·구술심리 등 기존 재판제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궁극적인 사법부의 지향 목적을 첫째가 재판독립, 둘째가 국민신뢰 확보"라면서 "어떤 방법으로 더 할 수 있는가가 남은 것이지 궁극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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