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위기다. 3년 전에 겪었던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공포와 전율이 엄습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지표만 놓고 보면 한국경제는 이미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 최근 두 달 새 원·달러 환율은 100원 넘게 올랐고 코스피 주가지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급등락을 반복하는 널뛰기 장세를 연출하고 있다. 특히 달러에 대한 우리나라 돈값인 환율의 절하폭은 지난 7월 1050원대에서 최근 1170원대를 웃돌아 세계 주요 20여개국 통화 가운데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유럽발 재정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이되고 다시 실물경제의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위기가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저신용자 가계 파산에서 비롯됐다면 이번 위기는 그리스의 재정파산에서 비롯돼 위기의 양상과 파장이 더 복합적이고 해결 또한 쉽지 않다.
소위 PIIGS 국가들인 포르투갈과 스페인 이탈리아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리스와 비슷한 재정상황에 처해 있고 이들 나라에 돈을 많이 꿔준 프랑스와 독일의 은행들이 부실채권 때문에 비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두 달 새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주식과 채권을 팔아치우며 6조원에 이르는 돈을 빼내고 있는 곳도 바로 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들 유럽계 자금이다.
유럽발 재정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이
IMF에 따르면 유로존이 발행한 채권 6조5000억유로의 근 절반이 부실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번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선진국 정부들이 스스로의 재정난 때문에 은행을 지원할 여력이 없다는 게 최대 문제다.
이번 위기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처럼 급진전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도 바로 유럽계 금융기관들의 유동성 위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즈(FT)에 따르면 이미 독일 최대 제조업 그룹인 지멘스는 프랑스 은행과 금융 거래를 중단하고 40억~60억 유로(약 6조2000억~9조3000억원)의 예금을 빼냈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직접적인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지멘스에 이어 영국 최대 보험그룹인 로이드도, 네덜란드 최대 금융그룹인 ING도 프랑스 BNP파리바, 소시에테제네랄 등에 맡긴 돈을 빼갔다. 중국은행도 프랑스 은행들과는 통화스와프를 그만뒀다. 소위 선진국 금융기관들의 위기가 발목을 지나 무릎을 거쳐 목까지 차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국가간 협력과 공조가 절실한 데도 선거 리스크라는 암초를 만나 진퇴양난의 위험에 처해 있다. 세계경제에 영향력이 큰 주요 20개국(G20)과 경제위기의 진앙지인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국가 중 대선을 치르는 국가가 10개국에 이른다.
권력이 교체되는 시기에 다른 나라를 돕는 결정을 하기도 어렵거니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긴축을 단행하고 제살을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일은 쉽지 않다. 유로존의 위기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해이다. 우리는 이미 권력의 교체기에 경제위기를 겪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YS정권 말기였던 1997년 IMF 외환위기가 그렇고 DJ정권 말이었던 2002년 5월 카드대란이 그렇다.
유비무환, 먼저 대비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비록 이번 위기가 2008년 리먼사태 때와는 달리 어느 정도 '예견된 위기'이기는 하지만 어물쩍 방심하다가 3년 전처럼 당할 수 있다. 아무리 외환보유고를 많이 쌓아놓고 수출이 잘 된다고 해도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경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대외변수들이 일촉즉발의 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국민들 대다수가 '리먼의 악몽'을 떠올리며 공포에 쌓여 있지만 '3년 전보다 펀더멘털이 충분하다'거나 '단기외채가 다 빠져나가더라도 외환보유액으로 위기 대응에 충분하다'고 호언장담하는 정부 관료들을 보면 IMF 외환위기 때 상황이 자꾸 떠올라 믿음이 가지 않는다.
가계건 기업이건 스스로 위기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 유비무환 먼저 대비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위기 앞에 개인과 기업 모두 생존전략을 재검토할 때다.
안찬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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