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회계사·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부대표
최근 유럽 발 재정위기가 세계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는 주요 은행을 거쳐 세계적 금융위기로 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배경과 경과는 다르지만 2008년에도 이미 세계적 금융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주기적인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자체 모순에서 비롯된다는 주장도 있고 이 또한 나름의 근거는 있으나 합리적 규제 장치를 마련하여 금융위기를 일정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주장 또한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이런 점에서 토빈세라 불리는 외환거래세를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최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금융거래세 도입을 제안했다. 게이츠는 지난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 20 재무장관 회의에서 국가 간 금융거래 등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영의 반대로 진척에 어려움
그는 이 보고서를 통해 파생상품을 포함한 각종 국가 간 금융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면 최대 2500억달러(약 300조원)를 확보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외환거래세는 국경을 넘는 채권, 외환, 주식 등 금융상품의 거래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제임스 토빈이 1978년 제안해 '토빈세'라고도 불린다.
토빈세는 당초 국제 투기자본 제어 차원에서 착안되었으나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금융산업이 공적 자금 조성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 아래 프랑스와 독일 등이 적극적으로 도입을 주장해왔다. 유럽의회도 지난 3월 토빈세 도입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승인한 바 있다.
그러나 단기자금(핫머니)의 국제거래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얻고 있는 미국과 영국 등의 반대로 진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 상공회의소는 "외환거래세는 미국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투자자와 기업 모두 피해를 볼 것"이라는 성명을 내고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에게 반대 입장을 표명해 달라는 서한을 보내는 등 적극적 반대행동에 나서고 있다.
우리 나라도 비예금 외화부채 잔액에 대하여 거시건정성 부담금(은행세)을 부과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러나 현행 제도로는 도입 목적인 거시건전성 강화에 큰 도움에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화자금의 변동성이라는 특정 요인을 통제하고자 한다면 은행세보다 토빈세 방식이 더 효과적이며 과세의 일반 원리 측면에서 보더라도 바람직하지 못한 경제활동을 억제하는 데에는 은행세와 같은 보유세보다 토빈세 같은 거래세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현행 은행세 제도는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상 자산/부채 계정 중에서 '비예금 외화부채'라는 특정 차입금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부담금을 물리는 방식으로 현금 거래(flow)가 아닌 잔액(stock)에 부과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한국처럼 국제결제화폐를 보유하지 못한 나라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급격한 외화의 유출이며, 이는 외화의 흐름을 직접 통제해야만 막을 수 있다. 외화 부채에만 부과하는 세금은 외화유입 통제 수단은 될 수 있으나 유출통제 수단은 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우려는 외화거래의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일반은행예금은 일거에 만기가 오지 않아 지급준비율의 10% 정도에 상당하는 자금만 갖고도 원활하게 운용할 수 있으나 외화는 대외 신인도에 일단 문제가 생기면 만기시 일거에 인출 요구가 몰리기 때문이다.
외환거래세 도입 검토할 시기
전체 외환 거래금액에서 0.2%에 불과한 은행세는 정작 금융위기가 와서 외국인들이 한꺼번에 돈을 인출할 때 큰 도움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금융위기가 터지고 나서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보다 애초에 금융위기가 터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며, 자본의 유출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외화거래 자체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토빈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이유이다.
규제 만능 사고도 위험하지만 묻지마 식의 규제완화는 더 위험하다. 합리적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국제금융시장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한국경제의 구조상 외환거래, 나아가서는 금융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외환거래세의 도입을 진지하게 재검토할 시기가 다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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