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원 휘문고 교사, 전국학부모지원단 고문
지난 5월 한 교원단체가 교원 173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온라인설문에서 '교직 만족도와 사기가 최근 1~2년간 어떻게 변화했느냐'고 물었다. 응답자의 79.5%가 '떨어졌다' 혹은 '매우 떨어졌다'로 답했다.
왜 그럴까? 담임교사가 네이스에 생활기록부를 입력하고 있는데 학생이 면담을 신청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로그오프되기 때문에 방과후에 면담하자고 학생을 돌려보냈단다. 방과 후에 그 학생하고 면담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5시까지 결식아동 상황을 보고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면담하기로 하고 학생을 돌려보냈는데, 그날 이 학생은 가출했고 한달이 지나도록 연락도 없고 찾지도 못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생활기록부 작성이 큰 업무가 아니었다. 학생당 A4 서너장 정도. 학기말에 집중적으로 작업하면 3~4일 안에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활동이 많은 학생은 20쪽 이상이 되고 보통 학생이 10쪽 내외이다. 학교생활기록부는 12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특별활동상황,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독서활동상황 등 학년 당 1~2쪽 씩 채워야 한다.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 가장 중요한 서류라서 대충 넘길 수 있는 게 아니다.
교사의 업무 부담 경감 차원에서 상부기관에서 공문을 줄인다고 하지만 이곳저곳 기관에서 하루에도 몇 건씩 내려온다. 바로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전교생을 상대로 조사해야 하는 것도 있고, 몇년 동안 쌓아둔 서류를 모두 뒤져야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이런 공문 하나가 일선 학교에 떨어지면 담당자는 며칠 동안 야근해야 한다. 일을 많이 맡은 어떤 교사는 교무실에 오면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쉴 시간이 없단다. 숫제 교실에서 수업하면서 숨을 돌린다고 하소연한다.
집중이수제 교과교실제, 좋긴 하지만…
2009개정 교육과정의 특징은 집중이수제이다. 2~4학기에 걸쳐 가르치던 것을 주당 4~8시간씩 중편하여 한 학기에 끝내는 것이 집중이수제이다. 주당 2시간씩이면 8개 반을 맡지만 주당 4시간씩이면 4개 반을 맡게 되며 교재연구 부담은 2배로 증가한다.
수준별 수업을 하거나 학급수가 적어 2개 학년을 맡으면 교재연구 부담은 2~3배로 증가한다. 이 정도 되면 매일 교재연구를 해도 모자란다. 게다가 학생들이 매 시간 교과교실로 이동하면서 수업을 받는다. 학생 한명 찾는 데 그 학생 개인시간표를 보고 이 교실 저 교실 기웃거려야 간신히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어떤 학교는 학생들 왕래가 빈번한 곳에 전광판을 달았다. 어떤 선생님이 어떤 학생을 찾고 있다는 메시지가 계속 오르락내리락한다.
상황이 이러니 담임이 학급 학생들을 장악할 수 없고, 상담지도나 생활지도가 되지 않는다. 집중이수제나 교과교실제 의도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교사의 업무를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언론에서는 교사들이 학원 강사들보다도 못 가르친다며 교사들의 능력을 질타하기도 한다. 잡무로 교사들의 손발을 묶어 놓고 링에 올려놓은 꼴이나 마찬가지다.
교사들은 매년 학부모와 학생들의 평가를 받고 있다. 교사 교육 활동에 관한 수십 문항을 '매우 만족' 5점에서 '매우 불만족' 1점까지 5단계로 평가한다. 평가자들은 교사들의 수업 이외 잡무를 알지 못하고 수업만 평가한다. 이미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들이 담임 업무를 서로 미루고 맡지 않으려고 경쟁한다.
손발 다 묶어 놓고 사각의 링에 올려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업이다. 좋은 수업 없이 공교육을 바로 세울 수 없다. 정부는 이 점을 인식하여 교사들의 잡무를 획기적으로 경감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행정 전담 교사나 요원을 증원하는 것도 방법이고, 2009개정 교육 과정을 학교 상황와 교원 수급 현실에 맞추어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며, 학교생활기록부 항목을 대폭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현 정부 출범 이래 교사들에게 요구한 것은 많지만 복지나 업무 경감에는 인색했다. 교직 만족도가 2년 사이 24%나 떨어진 것을, 그리고 이 여파가 교육 현장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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