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욱 칼럼] 끝내 ‘라면 정권’으로 갈 것인가

지역내일 2011-10-05
전 간행물윤리위원장

라면광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는 1975년 처음으로 전파를 탔다. 한 그릇뿐인 라면. 후루룩~ 혼자 먹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사랑하는 아우에게 "자네 먼저 드시게"라며 슬쩍 양보해보는 형. 그런 형한테 라면그릇을 되돌려주는 시늉을 하다 못이긴 척 받아먹으며 그냥 흐뭇해하는 동생.

교과서에도 실린 '의좋은 형제'를 차용한 덕일까, 광고는 대히트를 쳤다. 물론 당대를 풍미했던 코미디언 구봉서와 '후라이보이' 곽규석의 능청 연기도 한몫 했을 것이다. 광고가 나오자 어린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서 "형님 먼저" "아니, 아우 먼저"를 뇌며 즐거워했다.

우리는 이 광고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심리가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음을 깨닫게 됐는지 모른다. 먹고 싶지만 참아야 할 때가 있고,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지켜야 하며, 양보 끝의 수락이 아름답다거나, 맛있는 건 나눠먹어야 제맛이라는 정서가 우리 마음 속에 흐른다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좋았다. 정감이 있었다. 가령 야구에서 경쟁선수가 함께 홈런을 치거나 축구에서 골 잔치가 나면 언론은 꼭 제목으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를 뽑았다. 형제자매나 각별한 친구가 입학, 결혼, 취직, 승진 등 경사를 차례로 맞을 경우 더욱 즐겁게 그 관용구를 들먹였다.

그러나 이 맛있고 재미있던 말은 정치권에 들어와 뜻이 변했다. 끼리끼리 나눠먹거나 이권에 함께 코 박고 챙기는 따위를 지칭하는 속어로 변질됐다.

아름다웠던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라면광고가 나온 3년 후. 1978년 10대 국회의원선거 때 무소속후보들은 "이번 선거는 공화, 신민 양당이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나눠먹는 '라면 선거'"라며 "짝짜꿍 정당에 절대로 표를 주지 말자"고 호소했다.

이듬해 79년. 제1야당인 신민당의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내부에서도 같은 비판이 나왔다. '사쿠라' 별명을 듣던 당수(대표)에 맞서던 비주류의 한 의원은 "00당수 아래 신민당은 여당인 공화당을 형님으로 모시는 '라면 정당'일 뿐"이라며 그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했다.

꼭 '라면선거'란 말이 나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10대 국회는 임기를 못 채우고 해산됐다. '라면정당' 신민당 역시 박정희 대통령 피살과 신군부의 등장으로 역사 속으로 소멸돼버렸다. 정치의 유착과 비리, 제 역할을 못하는 정당을 꼬집은 말이 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식으로 사라진 것이다.

40년도 훨씬 지난 2011년 정치판에 다시 '형님 먼저, 아우 먼저'가 등장했다. 이번에도 좋은 뜻이 아니다. 정권실세들에게 뒷돈을 대고 향응을 베풀었다는 SLS그룹 이국철 회장을 만난 뒤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큰일 났구나,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이)시쳇말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지겠구나"라고 탄식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대통령 측근들이 심심치 않게 구속되고 이런저런 말이 많던 터라 그런가보다 했더니 어제 국정감사에서 '진짜' 대통령 형님 이름이 나왔다. 정권에 부패가 만연했다는 비유로 '형님 먼저'를 쓴 줄 알았는데 실제 형님 이상득 의원을 지칭한 것이라고 한나라당이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사실, 그 실명이 공개되는 이런 사태는 이미 예견됐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경고가 쏟아졌었다. 야당과 국민뿐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 그것도 비주류는 물론 주류에서조차 끊임없이 이 의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오직 두 사람만이 그 경고음을 듣지 않았다. 그 한 사람이 바로 '형님'이다.

먹고 싶은 것 참고 젓가락 놓아야 할 때

인사전횡, 총리실 불법사찰, 4대강 사업배정, 지역구 예산몰이, 상왕정치, 자원외교 잡음 등 자신을 향한 온갖 비난에도 이 의원은 "나는 대통령 친인척으로서의 한계를 잘 안다. 국내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말로 화살을 피해왔다. 그만큼 비난이 집중되면 대통령 동생을 위해서라도 물러날 법하련만 그는 의연했다. 물론 그가 비리를 저질렀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었다.

이번에도 그럴지 모른다. 뚜렷이 드러난 잘못이 없고 스스로 할 일만 하는데 왜 물러나느냐는 주장도 할 것이다. 자신이야말로 정쟁의 희생자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먹고 싶은 걸 참고 젓가락을 놓아야 할 때도 있다. 그게 진정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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