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골목길에서 서울의 미래를 본다

도서출판 해냄/황두진 지음
1만원
더 말할 것도 없이 서울은 대한민국의 중심지이자 종착역이다. 정치적으로는 물론 경제, 학술,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의 활동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조선왕조의 새 도읍지로 결정한 1392년 이래 국가 행정의 가장 핵심적인 무대가 바로 서울이었다.
서울 곳곳에서 역사적 나이테의 흔적이 쉽게 발견하게 되는 것도 그런 결과다. 경복궁을 비롯하여 북한산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성곽과 북촌의 한옥마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종로 뒷골목의 피맛골이나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등의 저자 거리에서도 정겨운 삶의 체취와 함께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더욱이 서울에서는 아직도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인구가 이미 1000만명을 넘어선 데다 수도권의 이동인구까지 집중되어 갈수록 과밀화되면서 거기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지나 첨단 정보통신사회를 경험하기까지 고도성장을 구가하며 급속한 변화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곳이 또한 서울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세계적인 거대도시로서 불가피한 생존방식이기도 하다. 과거 무분별한 개발의 상처 위에 새로운 상처를 덧입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서울에서의 삶의 모습은 가변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현상으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번듯한 도시 미관에도 불구하고 장마가 몰아치면 광화문 네거리에서조차 물난리를 겪어야 하는 실상이다. 갑작스런 단전으로 멈춰버린 엘리베이터에 갇혀버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는 그동안 근시안적인 개발의 와중에서 역사의 옛 자취를 잃어가는 아쉬움과 앞으로 제 기능을 살리며 발전해나가야 하는 나름대로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저자인 황두진은 건축가의 입장에서 도시미학적 측면의 발전상을 강조한다.
저자는 서울 인구의 상당수가 몰려 사는 강남의 신시가지가 개발된지 불과 20~30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또다른 개발의 물결이 밀려오는 바람에 재건축이라는 명목하에 집들이 헐려나가는 현상을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뉴타운이라는 이름 아래 마치 누더기처럼 파헤쳐지고 있는 강북 지역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100년, 1000년이 지나도 끄떡없는 건물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그렇게 믿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저자는 요즘의 세태를 풍자한다. 설령 건물이 물리적으로 오래 지탱할지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껏 10여년 지난 건물도 그냥 헐려나가는 곳이 바로 서울이라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성장과 속도 위주의 개발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건축이 문화유산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빈말에 지나지 않는다. 볼품없는 잡동사니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규모와 평수가 건물 가치의 척도가 됨으로써 후세에 물려주기에는 민망한 경우가 적지 않다. 아파트의 평수로 사람의 인격과 능력이 평가받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들에게 가치판단을 내릴 시간적 여유가 별로 주어지지 않는 것도 그런 탓이다. 동작이 빨라야 하고, 생각보다는 손이 앞서야 한다. 작업을 마치면 보람보다는 후회나 미련이 많이 남는 것도 이런 처지에서 당연한 현상이다. 저자는 "서울을 둘러보자면 이 사회가 진정한 의미에서 건축가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실망감을 드러낸다. 마치 북극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겠다고 나선 이방인과 같은 존재처럼 느껴진다는 얘기다.
이러한 실망감은 서울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토박이 서울내기로서 어린 시절 혜화동 로타리에서 전차를 타봤던 기억을 흑백 무성영화 속의 장면처럼 흐릿하게나마 떠올린다. 홍대앞 문화의 거리를 거론하는가 하면 통의동의 백송(白松)과 효자동에 살던 이상(李箱) 시인의 자취에 대해서도 더듬는다.
그는 한명의 시민으로서, 또는 전문가로서 서울을 한마디로 정의한다. "해서는 안되는 것이 너무나 많은 금기(禁忌)와 금지(禁止)의 도시, 그것이 서울이다"라고. 도시가 여기저기 마비되고, 부분과 전체 사이에 균형이 결여된 것은 그런 결과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값비싼 술의 소비가 세계적으로 가장 많고, 몸치장에 유난을 떨면서도 초라한 건물에 드나드는데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 서울이 무려 6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창고에 지나지 않으며. 결코 어른스럽지도 못하고 오히려 철부지 같은 느낌마저 풍긴다고 그는 실토한다.
하지만 그는 주차난이 심각한 도심의 골목길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변두리 동네의 산책길에서도 서울의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도시공간의 모순과 딜레마를 억지로 극복하기보다는 포용을 통해 새로운 기능과 모습으로 가꿔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낯선 도시로 여행을 떠나듯이 외국인을 위한 관광 안내서를 지참하고 독자들에게 서울 탐방여행을 권하는 것은 그런 가능성에 동참하자는 뜻이다.
더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도시, 산과 물이 함께 꿈꾸는 서울을 그는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시민들 개개인의 삶의 질도 그래야 향상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러나 현실은 자꾸만 이런 가능성에서 멀어져가는 듯한 느낌이다. 서울이 문화적인 삶의 터전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무대로 더욱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달로 예정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도 예비후보들이 저마다 바람직한 서울의 미래상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도시로서 서울의 기능회복 얘기는 뒷전에 미뤄둔 채 정치적인 이념공방이 앞서는 듯한 모습은 아무래도 불편하기만 하다.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그냥 전셋값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편리하게 출근할 수 있으며, 더욱이 퇴근길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빈대떡 한 접시에 막걸리 한잔 축일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한 데도 말이다. 서울을 푸근하고 정겨우며 살맛나는 도시로 꾸미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저자가 "당신의 서울은 어디이냐"고 묻는 것도 그런 뜻일 것이다.
허영섭 언론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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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해냄/황두진 지음
1만원
더 말할 것도 없이 서울은 대한민국의 중심지이자 종착역이다. 정치적으로는 물론 경제, 학술,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의 활동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조선왕조의 새 도읍지로 결정한 1392년 이래 국가 행정의 가장 핵심적인 무대가 바로 서울이었다.
서울 곳곳에서 역사적 나이테의 흔적이 쉽게 발견하게 되는 것도 그런 결과다. 경복궁을 비롯하여 북한산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성곽과 북촌의 한옥마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종로 뒷골목의 피맛골이나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등의 저자 거리에서도 정겨운 삶의 체취와 함께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더욱이 서울에서는 아직도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인구가 이미 1000만명을 넘어선 데다 수도권의 이동인구까지 집중되어 갈수록 과밀화되면서 거기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기간에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지나 첨단 정보통신사회를 경험하기까지 고도성장을 구가하며 급속한 변화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곳이 또한 서울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세계적인 거대도시로서 불가피한 생존방식이기도 하다. 과거 무분별한 개발의 상처 위에 새로운 상처를 덧입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서울에서의 삶의 모습은 가변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현상으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번듯한 도시 미관에도 불구하고 장마가 몰아치면 광화문 네거리에서조차 물난리를 겪어야 하는 실상이다. 갑작스런 단전으로 멈춰버린 엘리베이터에 갇혀버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는 그동안 근시안적인 개발의 와중에서 역사의 옛 자취를 잃어가는 아쉬움과 앞으로 제 기능을 살리며 발전해나가야 하는 나름대로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저자인 황두진은 건축가의 입장에서 도시미학적 측면의 발전상을 강조한다.
저자는 서울 인구의 상당수가 몰려 사는 강남의 신시가지가 개발된지 불과 20~30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또다른 개발의 물결이 밀려오는 바람에 재건축이라는 명목하에 집들이 헐려나가는 현상을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뉴타운이라는 이름 아래 마치 누더기처럼 파헤쳐지고 있는 강북 지역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100년, 1000년이 지나도 끄떡없는 건물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그렇게 믿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저자는 요즘의 세태를 풍자한다. 설령 건물이 물리적으로 오래 지탱할지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껏 10여년 지난 건물도 그냥 헐려나가는 곳이 바로 서울이라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성장과 속도 위주의 개발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건축이 문화유산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빈말에 지나지 않는다. 볼품없는 잡동사니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규모와 평수가 건물 가치의 척도가 됨으로써 후세에 물려주기에는 민망한 경우가 적지 않다. 아파트의 평수로 사람의 인격과 능력이 평가받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들에게 가치판단을 내릴 시간적 여유가 별로 주어지지 않는 것도 그런 탓이다. 동작이 빨라야 하고, 생각보다는 손이 앞서야 한다. 작업을 마치면 보람보다는 후회나 미련이 많이 남는 것도 이런 처지에서 당연한 현상이다. 저자는 "서울을 둘러보자면 이 사회가 진정한 의미에서 건축가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실망감을 드러낸다. 마치 북극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겠다고 나선 이방인과 같은 존재처럼 느껴진다는 얘기다.
이러한 실망감은 서울에 대한 애착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토박이 서울내기로서 어린 시절 혜화동 로타리에서 전차를 타봤던 기억을 흑백 무성영화 속의 장면처럼 흐릿하게나마 떠올린다. 홍대앞 문화의 거리를 거론하는가 하면 통의동의 백송(白松)과 효자동에 살던 이상(李箱) 시인의 자취에 대해서도 더듬는다.
그는 한명의 시민으로서, 또는 전문가로서 서울을 한마디로 정의한다. "해서는 안되는 것이 너무나 많은 금기(禁忌)와 금지(禁止)의 도시, 그것이 서울이다"라고. 도시가 여기저기 마비되고, 부분과 전체 사이에 균형이 결여된 것은 그런 결과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값비싼 술의 소비가 세계적으로 가장 많고, 몸치장에 유난을 떨면서도 초라한 건물에 드나드는데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 서울이 무려 6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창고에 지나지 않으며. 결코 어른스럽지도 못하고 오히려 철부지 같은 느낌마저 풍긴다고 그는 실토한다.
하지만 그는 주차난이 심각한 도심의 골목길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변두리 동네의 산책길에서도 서울의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도시공간의 모순과 딜레마를 억지로 극복하기보다는 포용을 통해 새로운 기능과 모습으로 가꿔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낯선 도시로 여행을 떠나듯이 외국인을 위한 관광 안내서를 지참하고 독자들에게 서울 탐방여행을 권하는 것은 그런 가능성에 동참하자는 뜻이다.
더 나아가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도시, 산과 물이 함께 꿈꾸는 서울을 그는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시민들 개개인의 삶의 질도 그래야 향상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러나 현실은 자꾸만 이런 가능성에서 멀어져가는 듯한 느낌이다. 서울이 문화적인 삶의 터전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무대로 더욱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달로 예정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도 예비후보들이 저마다 바람직한 서울의 미래상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도시로서 서울의 기능회복 얘기는 뒷전에 미뤄둔 채 정치적인 이념공방이 앞서는 듯한 모습은 아무래도 불편하기만 하다.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그냥 전셋값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편리하게 출근할 수 있으며, 더욱이 퇴근길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빈대떡 한 접시에 막걸리 한잔 축일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한 데도 말이다. 서울을 푸근하고 정겨우며 살맛나는 도시로 꾸미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저자가 "당신의 서울은 어디이냐"고 묻는 것도 그런 뜻일 것이다.
허영섭 언론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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