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베로 Jean George Beraud,부자의 출근길 - La Sortie du Bourgeois, 1889,캔버스에 유채, 37.5 X 53.3 cm
파리와 파리 시민들을 묘사한 작품들로 유명한 장 베로의 그림들 중에는 유독 영국의 런던이 연상되는 작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부자의 출근길'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흡사 영국의 문호 찰스 디킨스의 명작 '크리스마스 캐럴'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합니다. 눈 쌓인 거리에서 마차에 오르려는 듯한 신사의 모습은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 영감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거리에 늘어서서 구걸을 하는 빈민들을 무시한 채 마차에 오르려는 부유한 노신사의 모습은 지독하게 인색하고 탐욕스런 스크루지 영감을 떠올리게 합니다. 더우기 건물 안에서 얼굴만 삐죽이 내밀고 있는 사람은 스크루지 사무실의 직원인 밥을 연상시킵니다. 여러모로 이 작품은 '크리스마스 캐럴'의 한 장면과 너무도 유사해 보입니다. 다른게 있다면 작품의 제목처럼 '부자의 출근길'이 아닌 스크루지 영감의 퇴근을 묘사한 '부자의 퇴근길' 같다는 점일 것입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스크루지 영감은 오로지 돈 밖에 모르는 탐욕스런 인물로 나옵니다. 그는 인정이 없는데다 매우 차갑고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자선과 구호가 행해지는 크리스마스의 관습이 싫어서 스크루지는 조카의 크리스마스 인사와 초대마저 무시해버립니다. 그러다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과 자기 주변 사람들의 삶을 되돌아 볼 기회를 갖게 됩니다.
거기엔 젊은 시절 돈에만 눈이 멀어 자신의 약혼녀와 헤어지게 되었던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고, 자신에게 구박만 받던 직원밥 가족의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도 있었습니다. 스크루지와의 단란한 삶을 꿈꾸었던 약혼녀는 이제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고, 밥은 스크루지로부터 모진 착취를 당하면서도 스크루지를 위해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엔 또한 물질만을 추구한 채 세상과 담을 쌓다시피 고립되어 지내다가 세상 사람들의 조롱 속에 죽는 자신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유령들에 이끌려 자신의 추한 모습과 세상 사람들의 밝은 모습들을 모두 목격한 스크루지는 이제 개과천선합니다. 스크루지가 탐욕과 아집으로 뭉친 지독한 물질주의자에서 철저한 금욕주의자로 환골탈태해서 이후 남은 여생은 주변을 위해 베푸는 나눔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게 '크리스마스 캐럴'의 이야기입니다. 찰스 디킨스의 이 작품은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 연극과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끊임없이 리바이벌되어 왔습니다. 지금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어떤 장르를 통해서든 어김없이 다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장 베로의 '부자의 출근길'은 개과천선하기 직전의 탐욕스런 스크루지 영감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김이 날 정도로 춥고 눈 쌓인 겨울을 묘사하고 있는 것도 크리스마스 시즌을 연상하게 합니다. 도시 빈민들의 구걸을 거들떠 보지 않는 듯한 거만한 노신사의 모습은 거리의 서민들이 벌이는 크리스마스 모금을 완전 무시해버리는 스크루지 영감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해 보입니다.
단지 장소만 런던에서 파리로, 스크루지 영감의 퇴근길이 노신사의 출근길로 장소와 상황만 바뀌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장소가 런던 골목의 스크루지 영감의 사무실 앞 같다는 느낌은 여전합니다. 왜냐하면 스크루지 영감의 눈치를 보면 서문 앞에서 얼굴만 빼꼼히 내민 사람은 영감의 직원 밥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장베로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떠올리며 이 작품을 완성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로 '부자의 출근길'은 '크리스마스 캐럴'의 한 장면을 묘사한 호화스런 삽화로도 손색 없다는 생각입니다.
인상파 시기에 활동한 장 베로는 파리와 거리 시민들의 모습을 인상파와 달리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오스망 남작의 도시 재개발 계획을 통해 근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한 파리는 그의 작품에 주된 소재가 되었습니다. 거리를 활보하는 시민들의 활기찬 모습이나 파리 여인들의 패셔너블한 모습들은 그가 즐겨 그리던 작품의 소재입니다. 거기에 더해 파리 사교계의 화려한 일상이나 파티 등을 묘사한 작품들도 많아 장 베로의 작품들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게 특징입니다.
그런데 장 베로의 '부자의 출근길'은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이례적일 정도로 그동안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걷어내고 빈부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 작품을 통해 계층적인 갈등이나 위화감을 묘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도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여러 계층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절묘한 구도로 그들을 배치시킨데다 그들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담아낸 결과, 대단히 소설적이고 드라마틱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연예부 박정은 미술컬럼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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