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간호사·광부가 부르는 아리랑 연주
프랑크푸르트한인합창단 5일 마포구 찾아
"태어난 곳에서 노래 한번 부르고 싶었는데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한국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리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무대에 선) 그 자체가 감동이에요."
세계 한인의 날인 5일 저녁 특별한 손님들이 서울 마포구청 대강당 무대에 섰다. 멀리 독일에서 날아온 프랑크푸르트 한인합창단이다. 30~40년 전 간호사·광부로 일하기 위해 떠났던 이들이 음악선물을 안고 고국 땅을 밟았다.
◆노래 부르며 향수 달래 = "딸아이가 한국학교에 간지 2주만에 음악회를 한다고 연락이 왔어요. 결혼한 이후 한국 교민사회와 접촉이 없어서 망설였는데 남편이 한번 가보재요. 연주회 내내 눈물 흘리던 기억밖에 없어요."
박승자(59)씨는 아직도 그 객석에 앉아있는 듯 눈물을 글썽였다. 일하느라 아이 키우느라 잊고 살았던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든 그날 이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가 노래를 권했다. 그 길로 프랑크푸르트 한인합창단 '막내'가 됐다.
47명 단원 모두 박승자씨처럼 노래를 부르며 가족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 있다. 단원 8명으로 출발한 1986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정자(71)씨는 "가곡이건 가요건 한국 것은 모두 좋았다"며 "노래 부르기를 갈망하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돌이켰다. 프랑크푸르트에 교민합창단이 생겼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순식간에 20명이 모였고 곧 3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말과 문화가 다른 이국땅에서 대부분 직장생활에 바빴고 아이 돌보며 집안일을 하자면 시간이 부족했다. 김씨는 "사정이 안돼 떨어져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단원들 주류가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50·60대인 이유다.
음악 전공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노래는 웬만큼 한다"는 이들이다. 매주 2시간씩 연습을 하고 더러는 개인교습도 받으며 실력을 쌓고 있다. 그렇게 25년. 프랑크푸르트 한인합창단은 독일 내 여러 교민합창단 가운데 최고 수준급임을 자신한다. 유럽 최대 규모인 마인강변축제에 정기적으로 초대받고 프랑크푸르트 자랑거리인 성탄절 상설시장에서도 단독 음악회를 갖는다. 각종 교민행사나 프랑크푸르트와 인근 도시에서의 자선음악회 등은 기본이다. 김영식(프랑크푸르트 오페라하우스 전속 테너) 지휘자는 "교민사회보다 독일사회 초청이 더 많다"며 "민요와 가곡을 부르며 한국을 전하는 민간외교사절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수고로움 위로받고 싶어 = "마포구 대흥동에서 태어났어요. 창천초등(초등)학교를 나왔지요."
마포구와 프랑크푸르트 한인합창단에는 공통분자가 있다. 광부로 독일 땅을 밟은 뒤 40여년간 이국생활을 하고 있는 박영래(67)씨다. 마포 무대는 그의 바람이었다. 대구시가 국제합창제를 열며 독일 대표로 합창단을 초청, 한국행이 확정됐을 때 '고향에서 노래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박홍섭 마포구청장과 함께 대학시절 야학을 했던 인연이 지금 무대로 이어졌다. 박씨는 "소원이 이루어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굳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도 고국 무대는 단원들 누구에게나 감격적인 장이다. 김정자씨는 "조국 무대에 서니 가슴이 울리고 눈물이 났다"며 "(마지막 곡인) 아리랑을 부르지 못하겠더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들의 노래는 단순한 회한이 아니다. 이준아 단장은 "열심히 일했고 그만큼 독일사회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자평했다. 유춘지(68)씨 역시 "예나 지금이나 '보리밭'을 들으면 어느 자리에서도 눈물을 글썽이지만 노래하는 행복·자부심이 더 크다"고 말했다. 그들이 고향 땅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유다. 김영식 지휘자는 "성실히 일하며 조국 근대화에 기여한 30~40년간 세월을 이제는 고국에서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라고 전했다.
그 마음이 전해졌을까. 차승희 기획예산과 주무관은 "큰 기대 없이 공연장에 갔는데 무척 감동받았다"며 "젊어서 고향을 떠나 외국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오는 동안 갈고 닦은 노래 솜씨라서 그런지 큰 울림이 있었다"고 평했다. 공연을 준비했던 구본수 교육지원과장은 "전문공연장이 아니라 미흡한 점이 있었지만 합창단과 관객들이 동포애로 하나되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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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한인합창단 5일 마포구 찾아
"태어난 곳에서 노래 한번 부르고 싶었는데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한국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리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무대에 선) 그 자체가 감동이에요."
세계 한인의 날인 5일 저녁 특별한 손님들이 서울 마포구청 대강당 무대에 섰다. 멀리 독일에서 날아온 프랑크푸르트 한인합창단이다. 30~40년 전 간호사·광부로 일하기 위해 떠났던 이들이 음악선물을 안고 고국 땅을 밟았다.
◆노래 부르며 향수 달래 = "딸아이가 한국학교에 간지 2주만에 음악회를 한다고 연락이 왔어요. 결혼한 이후 한국 교민사회와 접촉이 없어서 망설였는데 남편이 한번 가보재요. 연주회 내내 눈물 흘리던 기억밖에 없어요."
박승자(59)씨는 아직도 그 객석에 앉아있는 듯 눈물을 글썽였다. 일하느라 아이 키우느라 잊고 살았던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든 그날 이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가 노래를 권했다. 그 길로 프랑크푸르트 한인합창단 '막내'가 됐다.
47명 단원 모두 박승자씨처럼 노래를 부르며 가족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 있다. 단원 8명으로 출발한 1986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정자(71)씨는 "가곡이건 가요건 한국 것은 모두 좋았다"며 "노래 부르기를 갈망하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돌이켰다. 프랑크푸르트에 교민합창단이 생겼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순식간에 20명이 모였고 곧 3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말과 문화가 다른 이국땅에서 대부분 직장생활에 바빴고 아이 돌보며 집안일을 하자면 시간이 부족했다. 김씨는 "사정이 안돼 떨어져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단원들 주류가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50·60대인 이유다.
음악 전공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노래는 웬만큼 한다"는 이들이다. 매주 2시간씩 연습을 하고 더러는 개인교습도 받으며 실력을 쌓고 있다. 그렇게 25년. 프랑크푸르트 한인합창단은 독일 내 여러 교민합창단 가운데 최고 수준급임을 자신한다. 유럽 최대 규모인 마인강변축제에 정기적으로 초대받고 프랑크푸르트 자랑거리인 성탄절 상설시장에서도 단독 음악회를 갖는다. 각종 교민행사나 프랑크푸르트와 인근 도시에서의 자선음악회 등은 기본이다. 김영식(프랑크푸르트 오페라하우스 전속 테너) 지휘자는 "교민사회보다 독일사회 초청이 더 많다"며 "민요와 가곡을 부르며 한국을 전하는 민간외교사절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수고로움 위로받고 싶어 = "마포구 대흥동에서 태어났어요. 창천초등(초등)학교를 나왔지요."
마포구와 프랑크푸르트 한인합창단에는 공통분자가 있다. 광부로 독일 땅을 밟은 뒤 40여년간 이국생활을 하고 있는 박영래(67)씨다. 마포 무대는 그의 바람이었다. 대구시가 국제합창제를 열며 독일 대표로 합창단을 초청, 한국행이 확정됐을 때 '고향에서 노래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박홍섭 마포구청장과 함께 대학시절 야학을 했던 인연이 지금 무대로 이어졌다. 박씨는 "소원이 이루어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굳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도 고국 무대는 단원들 누구에게나 감격적인 장이다. 김정자씨는 "조국 무대에 서니 가슴이 울리고 눈물이 났다"며 "(마지막 곡인) 아리랑을 부르지 못하겠더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들의 노래는 단순한 회한이 아니다. 이준아 단장은 "열심히 일했고 그만큼 독일사회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자평했다. 유춘지(68)씨 역시 "예나 지금이나 '보리밭'을 들으면 어느 자리에서도 눈물을 글썽이지만 노래하는 행복·자부심이 더 크다"고 말했다. 그들이 고향 땅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유다. 김영식 지휘자는 "성실히 일하며 조국 근대화에 기여한 30~40년간 세월을 이제는 고국에서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라고 전했다.
그 마음이 전해졌을까. 차승희 기획예산과 주무관은 "큰 기대 없이 공연장에 갔는데 무척 감동받았다"며 "젊어서 고향을 떠나 외국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오는 동안 갈고 닦은 노래 솜씨라서 그런지 큰 울림이 있었다"고 평했다. 공연을 준비했던 구본수 교육지원과장은 "전문공연장이 아니라 미흡한 점이 있었지만 합창단과 관객들이 동포애로 하나되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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