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처럼 지녀 온 날 돌아가리 그 벼랑 앞/ 저물녘 진혼곡도 이제는 버릇되어/ 귀향이 망향 된다 해도 불러보는 그 안부……. (적(跡) 중)
시조시인 한춘섭(60) 씨의 첫 시조집 ‘적(跡)’(동학사)이 출간되었다.
1966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이후 국문학자, 향토사학가로도 살아왔던 시인은 육신의 나이로 갑년을 맞은 올해에서야 주옥같은 시조들을 책으로 엮어내었다. 등단 나이로는 삼십 오년만이다.
이번 시조집 출간은 최근의 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문 예에 속한다. 등단하자마자 연례 행사처럼 시집을 묶는 근래의 시단 풍토를 보면, 한 시인의 이번 시조집 출간은 더디어도 한참 더딘 일이다. 더구나 <한국 시조="" 큰="" 사전="">, <현대 시조시="" 연구=""> 등의 저서로 시조사 연구에 큰 획을 그어왔던 것은 물론, 활발한 시작발표를 해왔던 그이기에 ‘더딤’은 시단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올해가 인생을 한 바퀴 돌아온 갑년인데, 이 쯤이면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듯 싶었지요.”
시인의 나이만큼 채워진 꼭 60편의 시조들은 세월의 풍랑속에 거친 모서리를 깎아내고 둥그런 품으로 우리네 삶을 껴안고 있다. 수많은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선택된 시조들인 만큼, 시조집에서는 굵직한 밀도가 느껴진다.
‘한 무리 떠돌기를/ 솔잎 새 바람이듯/ 흐르는 머언 둘레/ 풀잎 새 이슬이듯(‘풍경’ 중)’ 낮은 목소리로 자연과 향토, 신앙과 민족혼을 노래해 온 그의 시조는 이제 한 권의 책으로 가슴을 열어보인다.
내용은 ‘시조시 앞에’, ‘고향 사계사’, ‘십자가’ 등 7부로 나뉘어져 있다. 각 부마다 순수서정, 향수, 신앙, 민족혼 등 주제와 시어, 표현법 등이 다양해서, 고전적인 시조의 작품성부터 대담하게 장르의 변형을 가져온 것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시조 세계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특히 굵직한 역사의 장을 녹여낸 연작시조들이 눈길을 끈다. 8년간 연재하여 문단에 획기적인 시도로 평가받았던 ‘녹슨 철마, 그 언저리’ 는 40편 연작으로 이루어진 장시조. 시인은 ‘바람은/ 남북 분계선/ 갈대 소리 썰고 있다(11편 중)’ 며 분단의 상흔을 어루만진다.
또한 ‘만세터 할아버지’, ‘탄천둑’ 등의 시조에서는 시인의 성남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성남 골목골목의 이름을 짓기도 했던 그는 ‘내 핏줄 후대거니/ 팔도 사람 어울마당(성남이야기2 중)’ 으로 삶의 터를 영혼의 터로 승화시킨다.
한 시인은 중국의 좌익작가였던 노신(1881-1936)의 정신을 거울로 삼는다. 문학은 국민정신에 등불을 밝히는 불꽃이 되어야 한다는 것. 요즈음 팽배하는 개인의 신변잡기식 시들은 한 시인에게는 아쉬움이다.
현실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는 그의 시조가 고매한 차(茶)향으로 독자에게 와닿을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아련하게 간직할 만한 향토와 정서가 배어있기 때문이다. 후배시인들이 그의 향토미학을 가리켜 ‘내 뿌리를 가장 아프게 사랑한 이정표’ 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가 아닐까.
‘이제 됐다’ 고 하여 책으로 엮이기까지 35년이 걸렸다. 반평생 시인의 궤적을 이렇게 엮어놓고, 시인은 또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跡)을 내딛고 있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돌아보면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어있지 않을까.
/고은주 리포터 milkypower@hanmail.net현대>한국>시조문학>
시조시인 한춘섭(60) 씨의 첫 시조집 ‘적(跡)’(동학사)이 출간되었다.
1966년 <시조문학>으로 등단 이후 국문학자, 향토사학가로도 살아왔던 시인은 육신의 나이로 갑년을 맞은 올해에서야 주옥같은 시조들을 책으로 엮어내었다. 등단 나이로는 삼십 오년만이다.
이번 시조집 출간은 최근의 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문 예에 속한다. 등단하자마자 연례 행사처럼 시집을 묶는 근래의 시단 풍토를 보면, 한 시인의 이번 시조집 출간은 더디어도 한참 더딘 일이다. 더구나 <한국 시조="" 큰="" 사전="">, <현대 시조시="" 연구=""> 등의 저서로 시조사 연구에 큰 획을 그어왔던 것은 물론, 활발한 시작발표를 해왔던 그이기에 ‘더딤’은 시단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
“올해가 인생을 한 바퀴 돌아온 갑년인데, 이 쯤이면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듯 싶었지요.”
시인의 나이만큼 채워진 꼭 60편의 시조들은 세월의 풍랑속에 거친 모서리를 깎아내고 둥그런 품으로 우리네 삶을 껴안고 있다. 수많은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선택된 시조들인 만큼, 시조집에서는 굵직한 밀도가 느껴진다.
‘한 무리 떠돌기를/ 솔잎 새 바람이듯/ 흐르는 머언 둘레/ 풀잎 새 이슬이듯(‘풍경’ 중)’ 낮은 목소리로 자연과 향토, 신앙과 민족혼을 노래해 온 그의 시조는 이제 한 권의 책으로 가슴을 열어보인다.
내용은 ‘시조시 앞에’, ‘고향 사계사’, ‘십자가’ 등 7부로 나뉘어져 있다. 각 부마다 순수서정, 향수, 신앙, 민족혼 등 주제와 시어, 표현법 등이 다양해서, 고전적인 시조의 작품성부터 대담하게 장르의 변형을 가져온 것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시조 세계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특히 굵직한 역사의 장을 녹여낸 연작시조들이 눈길을 끈다. 8년간 연재하여 문단에 획기적인 시도로 평가받았던 ‘녹슨 철마, 그 언저리’ 는 40편 연작으로 이루어진 장시조. 시인은 ‘바람은/ 남북 분계선/ 갈대 소리 썰고 있다(11편 중)’ 며 분단의 상흔을 어루만진다.
또한 ‘만세터 할아버지’, ‘탄천둑’ 등의 시조에서는 시인의 성남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성남 골목골목의 이름을 짓기도 했던 그는 ‘내 핏줄 후대거니/ 팔도 사람 어울마당(성남이야기2 중)’ 으로 삶의 터를 영혼의 터로 승화시킨다.
한 시인은 중국의 좌익작가였던 노신(1881-1936)의 정신을 거울로 삼는다. 문학은 국민정신에 등불을 밝히는 불꽃이 되어야 한다는 것. 요즈음 팽배하는 개인의 신변잡기식 시들은 한 시인에게는 아쉬움이다.
현실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는 그의 시조가 고매한 차(茶)향으로 독자에게 와닿을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아련하게 간직할 만한 향토와 정서가 배어있기 때문이다. 후배시인들이 그의 향토미학을 가리켜 ‘내 뿌리를 가장 아프게 사랑한 이정표’ 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가 아닐까.
‘이제 됐다’ 고 하여 책으로 엮이기까지 35년이 걸렸다. 반평생 시인의 궤적을 이렇게 엮어놓고, 시인은 또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跡)을 내딛고 있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돌아보면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어있지 않을까.
/고은주 리포터 milkypower@hanmail.net현대>한국>시조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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