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임기 마치는 김지형 대법관] “노동법은 기본적 인권 보장하는 출발점입니다”

지역내일 2011-11-15
휴머니즘 없으면 유능할 순 있어도 좋은 법률가 될 수 없어
'단순파업 처벌제한', '불법파견 고용보장' … 판례변경 역할

지난 2005년 10월 19일 이용훈 대법원장은 김지형 서울고법 부장판사(53·사법연수원 11기)를 대법관에 제청했다. 당시 사법연수원 4기인 김황식 법원행정처 차장(현 국무총리)이 함께 제청된 것과 비교하면 7년 후배로 연수원 11기인 김 부장판사의 제청은 가히 충격적인 발탁이었다. 김 대법관에 대해서는 노동법 분야 전문가라는 것 이외에는 외부에 그다지 알려진 게 없었다.

6년이 지난 오는 18일 김 대법관의 퇴임식이 예정돼 있다. 임기 동안 김 대법관은 노동사건의 대법원 판례를 진일보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동법실무연구회를 만들고 대법원 산하 연구회로 정식 발족시키게 된 데에도 김 대법관의 역할이 컸다. 국내 법조인들이 등한시해왔던 노동법 연구의 터전을 탄생시킨 것이다.

김 대법관은 지난 10일 내일신문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은 외부의 평가에 대해 "과분하다"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지난 1일 노동법실무연구회 특별강연에서 '노동법이야말로 인간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노동법은 사람의 생존과 연결된 법이다. 법률문제 중에서도 노동법 문제는 헌법에 명시된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첫 출발이다. 노동법은 특히 인간의 존엄과 가치 중에서도 깊이 들여다 봐야할 가치이다.

법관이나 로스쿨 학생들의 강연요청을 받아 법률가로서의 덕목을 얘기할 때마다 가장 중심 키워드는 휴머니즘이다. 법률가는 기본적으로 휴머니즘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유능한 법률가는 될 수 있어도 좋은 법률가는 안된다. 법을 다루는 데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노동법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대학교 다니면서 학생회 활동에 별로 참여하지 않았다. 대학생활 자체를 공부하는 데 보냈다. 대학 입시에 두 번 실패했다. 한번 실패하고 절치부심했는데 시험 하루 앞두고 몸이 너무 안 좋았다. 결국 후기를 선택해서 대학에 들어갔다. 5형제 중 장남이고 아버지도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대학에 두 번 떨어진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어 대학 1년간 한없이 방황했다. 겨울에 마음을 잡고 2학년부터 사법시험 공부에 전력을 다했다. 다른 데 눈 돌릴 여유가 없었다.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대학 4학년 올라가면서 사시에 합격, 순탄하게 법조인이 됐다. 사회문제를 찾아들어갈 계기가 없었다.

독일연수에서 중요한 계기가 마련됐다. 연수를 가기 전까지도 경제법 분야에 관심이 있었지 노동법은 관심 영역이 아니었다.

독일 괴팅겐대학 법관장기연수를 시작하면서 200~300페이지 분량의 커리큘럼 안내서를 받아보고 충격을 받았다. 민법에 이어서 소개된 노동법 관련 커리큘럼과 세미나, 개설된 강의가 민법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국내 대학에서 접해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괴팅겐대학에는 독일에서 유명한 노동법 교수도 있었다. 마음껏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뒤 헌법재판소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국내 판례는 노동 분쟁 관련 실무에 도움이 되는 게 거의 없는 형편이었다.

노동법과 관련된 실무적인 책을 냈는데 당시가 마침 80년대 후반이었고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지면서 법원에 노동 관련 사건이 많이 들어오던 시기였다.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사법연수원 교수로 갔을 때는 김선수 변호사(현 민변 회장)가 만든 노동법학회가 있었다. 연수원생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학회였다. 학회 지도교수로 있으면서 만난 연수원 28기~31기생들이 수료 후에 판검사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노동법 실무층을 넓히는 역할을 했다. 노동법하고는 운명인 것 같다.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에 반대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것으로 안다. 대법원이 기존 판례를 변경했지만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의견을 대표 집필했다.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게 우리나라다. 국제사회의 비판도 거세다. 다수의견 자체도 기존 판결에서 많이 진전된 입장이다. 다수의견도 폭력이 수반되지 않은 파업에 대해서는 위력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용자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일어나고 손해가 아주 심한 경우만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후속 재판에 영향을 주고 있다.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 한진중공업 사태와 같은 정리해고도 문제다. 우리 사회의 중요 쟁점인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결국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기본적 관점은 고용의 안정성을 선택할 것이냐 유연성을 선택할 것이냐의 문제다. 우리 사회의 방향은 합의를 통해 정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월가 점령' 같은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비정규직을 가능하게 하고 정리해고를 쉽게 하게 만든 판례의 저변에는 신자유주의가 깔려 있다. 고용보다는 성장에 중심을 두고 있다. IMF사태 이후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려는 사회적 요청이 법과 판례에 반영된 것이다.

최근 반성적인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그동안 판례는 비정규직을 아무런 제한 없이 허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러미 리프킨이 쓴 '노동의 종말'이나 '유러피언 드림'에서 보면 경쟁을 통해 이긴 사람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은 틀렸고 공동체가 협력해 가는 유러피언 방향이 우리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사회가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도 달라져야 한다. 파견법에 2년 이상 파견돼 근무하면 정규직이 되도록 했는데 불법 파견에 대해서는 하급심 판결이 엇갈렸다.

관련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는데 대법관 전원일치로 정규직 고용을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에 대해 위법한 파견이라도 2년이 지나면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비정규직과 관련된 문제는 불법 파견 사건과 같이 다뤄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정리해고 관련사건을 맡지 못했다. 현행 판례는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가 있으면 정리해고를 할 수 있도록 요건이 굉장히 완화돼 있다. '긴박한'이라는 것도 사실상 사문화돼 있다. 관련 사건을 다뤄보지 못해 아쉽고 숙제로 남아있다.

세간에서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5명의 대법관을 '독수리 5형제'라고 하는데 여기에 포함돼 있다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대법원에 개인적 분쟁 사건이 많지만 사회 구성원 전체에 영향을 주는 사안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게 대법원 본연의 역할이다. '독수리 5형제'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회의 다른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그룹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국민들은 '내 얘기를 대신해 주는 대법관이 대법원에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위안을 받는다. 다른 목소리를 전달해 주는 사회적 역할이 있고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5'의 한계가 있다. 대법관은 13명(대법원장 포함)이다. 13명 중 5명은 다수의견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전원합의체에서 논쟁할 수 있는 구도는 된다. 다른 견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임기 6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 있다면.

대법관 취임하기 전부터 출퇴근 산재에 대해 공무원은 인정하면서 일반 노동자는 왜 인정이 안되는지 의문을 가졌다. 취임하자마자 관련 사건이 있어서 연구관실에 연구를 시켰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사건을 회부했다. 다수의견에 밀려 인정이 안됐지만 반대의견에서 입장을 상세하게 많이 썼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사건이다.

또한 대법관 취임 초기에 맡았던 성전환자의 호적 정정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몸은 여자인데 성정체성은 남성인 50대가 낸 사건이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건을 통해 성적소수자문제가 우리 사회에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회에서 엄청난 박해를 받고 있었다. 절절한 사연을 들여다보니 '큰 문제겠다' 싶어서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호적 정정을 해줘야 된다는 게 다수의견이었다. 판사나 법률가들이 사람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해준 사건이다.

퇴임 후 계획은.

모교(원광대)에서 석좌교수로 법률지식을 후배들에게 전수해주고 싶다. 또한 전관예우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공익적 성격의 변호사를 고민하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들처럼 법률서비스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보탬이 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활동을 생각하고 있다. 법조인에 대한 일반인의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권위주의 시대의 인권변호사 활동은 법조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런 영역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법조인을 이기적 집단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를 해소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법조인의 진정성 있는 공익활동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문진헌 기자 jhmu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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