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지진 부른 1%, 02년 프랑스 대선
오늘날 여론조사가 없는 선거는 상상할 수 없다. 주기적인 여론조사는 선거를 하루 만에 끝나는 1회성의 의례가 아닌, 최소 몇 달에 걸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장기 레이스로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후보들 간의 정치경쟁을 엎치락뒤치락하는 스포츠경기처럼 관전할 수 있다. 하지만 선수와 관객이 완전히 분리된 스포츠경기와 달리, 유권자는 여론조사의 표본이 되어 관객이자 행위자로 설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더한다.
그런데 여론조사는 실제 투표 결과에 완전히 종속된다는 점에서 시뮬레이션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것이 유권자들의 투표참가여부와 투표향방을 결정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데 있다.
2002년 4월 프랑스 대선,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의심한다 한들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모든 여론조사는 이미 1년 전부터 대선 결선투표에서 좌우동거정부의 대통령 자크 시라크와 수상 리오넬 조스팽의 격돌을 단정 짓고 있었다. 결과를 알고 있는 스포츠 경기 재방송을 보듯, 1차 선거를 앞둔 프랑스인들의 관심은 과반수를 획득한 후보가 없을 시 최다득표한 2인의 후보만을 놓고 치러지는 다음 경기로 이미 저만치 가 있었다.
다만, 1차 선거를 앞두고는 16명으로 역대최다후보기록을 갱신한 그들 중 눈 여겨 볼만한 자가 있는지에 잠시 눈을 돌릴 뿐이었다.
드디어 4월 21일, 좌파연합정부 수상 조스팽은 다수의 후보난립에 따른 결선에서의 좌파연합에 대해 고민하며 집을 나섰다고 한다.
햇살 가득했던 그 4월의 봄날이 자신의 정치적 삶의 마지막 날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을 것이다. 식상한 결론을 위해 자신의 수고를 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일까? 그날 사람들은 투표장으로 향하지 않았다. 28.4%. 1차대선 역대 최고 기권율을 기록했다.
곧이어 8시, 출구조사가 발표되었다. 결선투표에 진출할 두 인물의 이미지가 화면을 가득 메우자, TV앞에 둘러앉은 유권자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1969년 이래 사회당이 줄곧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이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국민전선이 주장하는 극단적인 인종주의는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의 극우정당들 조차도 그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어, 많은 유색인종과 이민자들에게는 중대한 위협이자 자유·평등·박애의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치욕이었다.
19만 표차, 등록유권자의 0.5%도 되지 않는 차이로 조스팽은 2차선거의 자리를 극우후보에게 넘겨주고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그날 저녁 많은 유권자들은 바스티유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새벽까지 '반대! 르펜'을 외쳤고, 시라크 대통령 역시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수호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민주주의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선거를 통해 이민자 등 일부 사회구성원들의 배제를 주장하는 반민주주의 세력이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였다.
하지만 2차선거는 달랐다. 투표율이 1차선거에 비해 8%이상이 올랐을 뿐만 아니라, 극우후보는 1차 선거에서 극우세력들이 획득한 18.5%의 득표율보다 오히려 낮은 17.8%를 얻는데 그쳤다.
82.2%라는 경이로운 득표율로 당선된 우파성향의 시라크는 당선 연설에서 위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선택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특히 부득이하게 자신에게 투표할 수밖에 없었던 좌파성향의 국민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물론 극우세력에 대한 지지율 상승은 다양한 원인을 가지고 있고, 유난했던 후보들의 난립 역시 이 선거에서 중요한 변수였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온 여론조사와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은 분명히 낮은 투표율과의 관련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또한 선명한 결과를 위해 무응답자와 투표율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여론조사방법의 허점도 지적되었다.
무엇보다 선거결과가 확연히 예상될 때, 유권자의 투표동기는 저하된다. 하지만 낮은 투표율이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스포츠 경기에서 관객과 달리, 선거에서는 바로 유권자가 승패를 최종 결정하기 때문이다.
손영우 국립목포대학교 연구선임교수
▶프랑스의 결선투표제도
1차 선거에서 과반수를 획득한 후보가 없을 경우, 2주 후에 최다득표한 2인의 후보만을 놓고 결선투표를 진행함.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오늘날 여론조사가 없는 선거는 상상할 수 없다. 주기적인 여론조사는 선거를 하루 만에 끝나는 1회성의 의례가 아닌, 최소 몇 달에 걸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장기 레이스로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후보들 간의 정치경쟁을 엎치락뒤치락하는 스포츠경기처럼 관전할 수 있다. 하지만 선수와 관객이 완전히 분리된 스포츠경기와 달리, 유권자는 여론조사의 표본이 되어 관객이자 행위자로 설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더한다.
그런데 여론조사는 실제 투표 결과에 완전히 종속된다는 점에서 시뮬레이션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것이 유권자들의 투표참가여부와 투표향방을 결정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데 있다.
2002년 4월 프랑스 대선,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의심한다 한들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모든 여론조사는 이미 1년 전부터 대선 결선투표에서 좌우동거정부의 대통령 자크 시라크와 수상 리오넬 조스팽의 격돌을 단정 짓고 있었다. 결과를 알고 있는 스포츠 경기 재방송을 보듯, 1차 선거를 앞둔 프랑스인들의 관심은 과반수를 획득한 후보가 없을 시 최다득표한 2인의 후보만을 놓고 치러지는 다음 경기로 이미 저만치 가 있었다.
다만, 1차 선거를 앞두고는 16명으로 역대최다후보기록을 갱신한 그들 중 눈 여겨 볼만한 자가 있는지에 잠시 눈을 돌릴 뿐이었다.
드디어 4월 21일, 좌파연합정부 수상 조스팽은 다수의 후보난립에 따른 결선에서의 좌파연합에 대해 고민하며 집을 나섰다고 한다.
햇살 가득했던 그 4월의 봄날이 자신의 정치적 삶의 마지막 날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을 것이다. 식상한 결론을 위해 자신의 수고를 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일까? 그날 사람들은 투표장으로 향하지 않았다. 28.4%. 1차대선 역대 최고 기권율을 기록했다.
곧이어 8시, 출구조사가 발표되었다. 결선투표에 진출할 두 인물의 이미지가 화면을 가득 메우자, TV앞에 둘러앉은 유권자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1969년 이래 사회당이 줄곧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펜이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국민전선이 주장하는 극단적인 인종주의는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의 극우정당들 조차도 그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어, 많은 유색인종과 이민자들에게는 중대한 위협이자 자유·평등·박애의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치욕이었다.
19만 표차, 등록유권자의 0.5%도 되지 않는 차이로 조스팽은 2차선거의 자리를 극우후보에게 넘겨주고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그날 저녁 많은 유권자들은 바스티유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새벽까지 '반대! 르펜'을 외쳤고, 시라크 대통령 역시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수호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민주주의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선거를 통해 이민자 등 일부 사회구성원들의 배제를 주장하는 반민주주의 세력이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였다.
하지만 2차선거는 달랐다. 투표율이 1차선거에 비해 8%이상이 올랐을 뿐만 아니라, 극우후보는 1차 선거에서 극우세력들이 획득한 18.5%의 득표율보다 오히려 낮은 17.8%를 얻는데 그쳤다.
82.2%라는 경이로운 득표율로 당선된 우파성향의 시라크는 당선 연설에서 위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선택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특히 부득이하게 자신에게 투표할 수밖에 없었던 좌파성향의 국민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물론 극우세력에 대한 지지율 상승은 다양한 원인을 가지고 있고, 유난했던 후보들의 난립 역시 이 선거에서 중요한 변수였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온 여론조사와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은 분명히 낮은 투표율과의 관련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또한 선명한 결과를 위해 무응답자와 투표율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여론조사방법의 허점도 지적되었다.
무엇보다 선거결과가 확연히 예상될 때, 유권자의 투표동기는 저하된다. 하지만 낮은 투표율이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스포츠 경기에서 관객과 달리, 선거에서는 바로 유권자가 승패를 최종 결정하기 때문이다.
손영우 국립목포대학교 연구선임교수
▶프랑스의 결선투표제도
1차 선거에서 과반수를 획득한 후보가 없을 경우, 2주 후에 최다득표한 2인의 후보만을 놓고 결선투표를 진행함.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