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이 보는 세계] 필리핀 전 현직 대통령의 알력이 주는 교훈

지역내일 2011-11-21
장행훈 언론인,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지난 주말의 세계적인 화제는 단연 신병 치료를 내세워 외국으로 출국하려고 휠체어에 몸을 싣고 마닐라 공항까지 나왔다가 출국 금지를 당해 되돌아가는 필리핀 전 대통령 글로리아 마카파갈-아로요의 초라한 사진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필리핀 법무부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는 부통령, 2001년부터 2010년6월30일까지는 대통령으로서 필리핀 최고의 권력을 행사하던 아로요를 공항에서 출국 금지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병원으로 돌아간 그를 체포하는 결정을 내렸다. 베니그노 아키노 3세 정부의 아로요 정부 부패와 반미주적 행위에 대한 엄한 심판을 예고하는 징후로 보인다. 새 정권이 부패한 전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 어디 필리핀에만 국한된 이야기겠는가?

하지만 베니그노 아키노 3세는 마르코스에 의해 암살당한 민주 투사 베니그노 아키노와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의 아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의 명예를 위해서도 그가 함부로 정치적인 보복을 자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코라손 아키노는 한국의 민주화와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1986년 코라손 아키노는 필리핀 판 유신독제를 도입한 마르코스에 맞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 마르코스 독재를 축출하고 필리핀의 민주주의를 회복시켰다. 코라손 아키노는 마르코스 독재에 반대하는 투쟁에 국민이 적극 참여해 줄 것을 호소했고 국민이 적극 호응했다. 미르코스 정권을 축출한 인민의 힘(피플 파워)혁명이 일어났다.

필리핀의 피플파워 혁명은 전두환 독재와 싸우고 있던 한국에 독재타도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언론은 필리핀의 피플파워 활동을 연일 크게 보도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우리 민주화운동을 격려했다. 전두환 정권이 각 신문에 피플파워 보도를 축소하라는 언론지침을 내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모두 대통령 부모를 둔 대통령

코라손 아키노(1986~1992) 이후 군인 출신의 라모스(1992~1998), 배우 출신의 에스트라다(1998~2001), 학자 겸 정치인 출신의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2001~2010)를 거쳐 2009년 코라손 아키노의 사망을 계기로 어머니의 후광에 힘입어 아들 베니그노 아키노 3세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과정에서 에스트라다가 부패 혐의로 탄핵을 받아 재임 3년 만에 축출되고 그의 자리를 글로리아 마카파갈-아로요 부통령이 물려받으면서 필리핀 정치가 좋지 않게 얽히게 된다. 글로리아 아로요는 마르코스의 전임자인 마카파갈 대통령의 딸이다. 그를 마카파갈-아로요로 부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마닐라의 아테네오 대학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그곳에서 가르치다 코라손 아키노의 부름을 받아 통상산업성 차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지금 그를 옥죄고 있는 대통령 아키노 3세는 아테네오 대학에서 그의 제자였다. 두 사람 모두 대통령 부모를 둔 대통령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참으로 미묘한 인연이다.

두 사람의 악연은 부통령인 아로요가 에스트라다 대통령 탄핵에 가담하면서부터 시작된다.아로요가 아직 대법원의 탄핵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대통령에 취임한 것이 합법이냐는 논란이 일 때 아키노 3세는 아로요 반대편에 섰다. 아로요는 중도 하차한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잔여 임기를 마치면 물러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6년 임기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서 100만표 차이로 당선됐다. 그러나 2005년 국가수사국은 아로요 대통령이 선거위원회의 가르실라노에게 100만표 차이로 승리하도록 투표 결과를 조작해 달라고 부탁하는 녹음 테이프를 확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헬로, 가르시" 스캔들이 터졌다.

아로요도 그런 발언을 한 사실을 시인했다. 다만 "순간적인 판단의 잘못"으로 빚어진 발언일 뿐이며 실제로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아로요는 탄핵 대상이 된다. 탄핵은 부결되지만 하원의원 아키노 3세는 아로요가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력남용에 대한 엄중조치 예고

아키노 3세가 아로요를 용서할 수 없는 인물로 간주하게 된 결적인 사건은 그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2010년 5월10일 이틀 후인 12일 아로요가 심야에 대법원장을 새로 임명한 것이었다.

아키노 3세는 아로요가 임명한 대법원장의 자신의 대통령 취임선서 집전을 거부하고 다른 대법관이 취임식을 집전하게 했다.

신임 대통령의 전 정권에 대한 적의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취임일 발표한 대통령령 제1호에서 전 정부의 관리와 민간부문의 부정 부패를 조사할 진실위원회를 창설하고 2012년 말까지 그 임무를 완료하게 한 것이다. 남용한 권력에 대한 엄중한 인과응보가 따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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