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선 언론인,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지난 22일 한나라당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날치기 처리한 날, 그와는 다른 이유로 희비가 엇갈린 사람들이 있었다. 기대가 어긋나 낭패스러워한 것은 강원도를 비롯한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사람들, 기뻐했다기보다는 잠시나마 안도의 숨을 돌린 것은 동계올림픽을 위한 '묻지마 환경파괴'를 염려한 사람들이었다.
FTA비준안 기습처리의 여파로 그날 평창올림픽지원특별법을 논의할 예정이었던 국회 동계올림픽지원특위 법안심사소위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 법은 특위와 법사위 등을 거쳐 12월 중 본회의까지 통과할 것으로 기대되었었다.
지난 7월 3수 끝에 평창이 2018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을 때, 강원도 뿐 아니라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던 것은 인지상정이라 하자. 이제 승리의 흥분도 한숨 돌렸으니, 힘들여 유치한 동계올림픽을 세계에 자랑할 만한, 그리고 강원도와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 세련되고 실속 있는 올림픽으로 치르기 위한 냉정하고 합리적인 준비가 시작되어야 할 때다.
문제는 어떻게 경제적 낭비와 환경훼손을 최소화하느냐이다. 특히 유전자보호림으로 개발이 금지된 가리왕산에 스키활강경기장을 만드는 문제가 논란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당 최종원 의원이 대표발의한 평창동계올림픽지원특별법안은 사전환경성검토와 환경영향평가를 대폭 완화하고 산림유전자보호구역을 해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바로 가리왕산에 스키활강경기장을 만들기 위한 조처다.
미래세대 물려줄 유전자보호림
1996년 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된 가리왕산 일대는 산림보호법에 따라 일체의 개발은 물론, 나무를 베거나 임산물을 채취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도 식생이 우수해 산삼이 많이 났기 때문에, 산삼봉표(유형문화재 113호)를 세워 일반인의 벌채를 금하고 왕실이 직접 관리한 국가보호림이었다. 이런 가리왕산이 두 주일간의 동계올림픽, 아니 단 하루의 활강경기를 위해 마구 파헤치도록 허가하는 특별법이 제정되려 한다.
고난도의 올림픽활강경기장은 올림픽 이후 일반인들의 스키장으로 활용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선수들을 위한 훈련장으로 쓰거나 일부 아랫부분을 일반인들이 활용한다 해도 강설량이 부족한 가리왕산에 최소 50cm의 인공눈을 덮을 제설비용을 생각하면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활강경기장이 들어설 부지가 가리왕산의 일부라지만, 리프트나 곤돌라에다 경기지원시설물과 이에 접근하기 위한 차도까지 감안하면 산의 상당부분이 훼손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10월에 찾아간 가리왕산엔 다양한 활엽수들로 다채로운 색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다. 도깨비부채 땃두릅 만병초 눈측백 꼬리겨우살이 등 희귀식물들 뿐 아니라, 사향노루 담비 하늘다람쥐 등 희귀 포유류와 붉은새매 쇠유리새 되솔새 등 희귀조류가 깃들어 사는 곳이다. 국제자연보존연맹 관계자들이 부러워했다는 다양한 생태계가 그곳에 있었다.
무리한 특별법을 동원한 개발의 결과가 어떠한지는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경기가 열렸던 무주의 경우가 잘 보여준다. 주목 등 희귀식물들을 베어내고 조성한 스키경기장은 폐허처럼 버려졌고 동계올림픽까지 바라보며 야심차게 무주리조트를 개발했던 쌍방울은 결국 부도로 내몰렸다.
환경평가 무력화하는 특별법
기존의 법을 무력화하는 특별법 제정에 앞서, 최선을 다해 대안을 찾는 노력이 먼저다. 희귀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노르딕경기 코스를 변경했던 나가노 동계올림픽의 전례도 있다. 당초 동계올림픽 유치를 염두에 두고 개발했던 무주의 설천봉 활강경기장을 보완 사용하는 방법도 진지하게 연구해 볼 일이다.
동계올림픽은 강원도만의 일도, 체육인들만의 일도 아니다. 유전자림의 보호 주체인 산림청,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환경부의 역할이 기대된다.
올림픽의 대세는 경제올림픽 환경올림픽이다. 외국인들에게 잘 보이려 턱없이 후하게 구는 후진국 콤플렉스, 무턱대고 크고 요란한 시설부터 짓는 개발주의에서 벗어나는 평창동계올림픽이 되었으면 좋겠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 편집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지난 22일 한나라당이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날치기 처리한 날, 그와는 다른 이유로 희비가 엇갈린 사람들이 있었다. 기대가 어긋나 낭패스러워한 것은 강원도를 비롯한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사람들, 기뻐했다기보다는 잠시나마 안도의 숨을 돌린 것은 동계올림픽을 위한 '묻지마 환경파괴'를 염려한 사람들이었다.
FTA비준안 기습처리의 여파로 그날 평창올림픽지원특별법을 논의할 예정이었던 국회 동계올림픽지원특위 법안심사소위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 법은 특위와 법사위 등을 거쳐 12월 중 본회의까지 통과할 것으로 기대되었었다.
지난 7월 3수 끝에 평창이 2018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을 때, 강원도 뿐 아니라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던 것은 인지상정이라 하자. 이제 승리의 흥분도 한숨 돌렸으니, 힘들여 유치한 동계올림픽을 세계에 자랑할 만한, 그리고 강원도와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 세련되고 실속 있는 올림픽으로 치르기 위한 냉정하고 합리적인 준비가 시작되어야 할 때다.
문제는 어떻게 경제적 낭비와 환경훼손을 최소화하느냐이다. 특히 유전자보호림으로 개발이 금지된 가리왕산에 스키활강경기장을 만드는 문제가 논란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당 최종원 의원이 대표발의한 평창동계올림픽지원특별법안은 사전환경성검토와 환경영향평가를 대폭 완화하고 산림유전자보호구역을 해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바로 가리왕산에 스키활강경기장을 만들기 위한 조처다.
미래세대 물려줄 유전자보호림
1996년 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된 가리왕산 일대는 산림보호법에 따라 일체의 개발은 물론, 나무를 베거나 임산물을 채취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도 식생이 우수해 산삼이 많이 났기 때문에, 산삼봉표(유형문화재 113호)를 세워 일반인의 벌채를 금하고 왕실이 직접 관리한 국가보호림이었다. 이런 가리왕산이 두 주일간의 동계올림픽, 아니 단 하루의 활강경기를 위해 마구 파헤치도록 허가하는 특별법이 제정되려 한다.
고난도의 올림픽활강경기장은 올림픽 이후 일반인들의 스키장으로 활용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선수들을 위한 훈련장으로 쓰거나 일부 아랫부분을 일반인들이 활용한다 해도 강설량이 부족한 가리왕산에 최소 50cm의 인공눈을 덮을 제설비용을 생각하면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활강경기장이 들어설 부지가 가리왕산의 일부라지만, 리프트나 곤돌라에다 경기지원시설물과 이에 접근하기 위한 차도까지 감안하면 산의 상당부분이 훼손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10월에 찾아간 가리왕산엔 다양한 활엽수들로 다채로운 색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다. 도깨비부채 땃두릅 만병초 눈측백 꼬리겨우살이 등 희귀식물들 뿐 아니라, 사향노루 담비 하늘다람쥐 등 희귀 포유류와 붉은새매 쇠유리새 되솔새 등 희귀조류가 깃들어 사는 곳이다. 국제자연보존연맹 관계자들이 부러워했다는 다양한 생태계가 그곳에 있었다.
무리한 특별법을 동원한 개발의 결과가 어떠한지는 1997년 동계유니버시아드경기가 열렸던 무주의 경우가 잘 보여준다. 주목 등 희귀식물들을 베어내고 조성한 스키경기장은 폐허처럼 버려졌고 동계올림픽까지 바라보며 야심차게 무주리조트를 개발했던 쌍방울은 결국 부도로 내몰렸다.
환경평가 무력화하는 특별법
기존의 법을 무력화하는 특별법 제정에 앞서, 최선을 다해 대안을 찾는 노력이 먼저다. 희귀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노르딕경기 코스를 변경했던 나가노 동계올림픽의 전례도 있다. 당초 동계올림픽 유치를 염두에 두고 개발했던 무주의 설천봉 활강경기장을 보완 사용하는 방법도 진지하게 연구해 볼 일이다.
동계올림픽은 강원도만의 일도, 체육인들만의 일도 아니다. 유전자림의 보호 주체인 산림청,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환경부의 역할이 기대된다.
올림픽의 대세는 경제올림픽 환경올림픽이다. 외국인들에게 잘 보이려 턱없이 후하게 구는 후진국 콤플렉스, 무턱대고 크고 요란한 시설부터 짓는 개발주의에서 벗어나는 평창동계올림픽이 되었으면 좋겠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 편집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