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인하시 다국적 제약사가 시장 주도" … 허가특허 연계제로 시장잠식 우려 증폭
"어느 나라가 기업을 망하게 하는 정책을 하겠는가."
-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 8월
"감기 면역력 키워주자면서 아이 벌거벗겨 겨울바람에 내보는 격."
- 최영희 민주당 의원, 10월
정부가 추진중인 약가 일괄인하와 한미FTA 비준 정책은 국내 제약사들의 체질개선과 신약개발 유도를 통한 제약선진국 진입을 명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 제약사의 특허권을 국제기준을 넘어 대폭 강화하고 일시에 큰 폭의 가격인하를 실시할 경우 체질개선은 커녕 산업 붕괴로 국내 제약시장이 다국적 제약사들의 '식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제약산업에 다시 투자하는 일본 = 세계 의약품 시장은 대부분 미국, 일본, 유럽 6~7개국의 제약사들이 독점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자국 제약사를 우대하는 정책을 펴 1980년대에 신약강국에 들어선 일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제약 식민지' 상태다. 베트남(다국적 제약사 비중 85%) 태국(75%) 싱가포르(97%) 대만(74%) 등 대부분 다국적 제약사의 비중이 압도적이며 필리핀(65%), 사우디(63%) 정도가 그나마 6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제약시장 분석기관인 IMS에 따르면 대만의 경우 상위 20대 제약사 중 화이자, 노바티스 등 다국적사 11개가 상위를 장악하고 있고 베트남 역시 상위 20개사 중 자국 제약사는 3곳 뿐이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다국적 제약사의 점유율이 높은 이유가 시장 개방이 조기에 이뤄져 외국 기업이 일찍 정착할 수 있었던 반면 자국 제약 기업은 신약 개발 등 연구개발 활동이 부진해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블록버스터급 신약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제약선진국'임에도 2007년부터 민관 합동으로 제약사의 신약개발을 촉진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약가인하에 따른 세계시장 점유율 하락을 막기 위해서다. IMS에 따르면 일본은 1994년 제약산업 세계시장 점유율이 21.6%에 달했다. 그러나 계속적인 약가인하정책의 영향으로 약값이 절반 수준까지 떨어지고 매출도 감소했다. 그러자 2008년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도 절반 이하인 10% 이하로 낮아졌다.
약가인하 중심의 정책기조를 10년 이상 유지하던 일본 정부는 2012년까지 의약품 분야 연구예산을 기존의 3500억엔에서 7000억엔으로 2배 늘리기로 한 상태다. 그 외에도 임상시험 환경 개선 및 신약심사 신속화 등 산업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장 약값이 싸진다고 마냥 반길 수는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 곧 신약강국 문턱인데" = 한국은 자국의 제약산업 기능이 유지되는 몇 안되는 국가 중 하나다. 시장은 크지 않지만 자급률이 동아시아에서 높은 편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안심하긴 이르다. 복지부에 따르면 국내시장에서 다국적 제약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40% 수준이지만 제품판매 비중을 고려하면 사실상 50대 50이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국내에 생산시설을 갖고 있는 외국제약사가 2곳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높다고 보기 힘들다.
국내 제약산업은 걸음마 단계다.
한국은 현재까지 17개의 신약을 내놨다. 2003년 세계 10번째 신약개발국이라는 성과도 거뒀다. 그러나 아직 '돈 버는' 신약은 없다. 그나마 평균 12년 걸린다는 연구개발 기간을 거쳐 성과가 갓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국내사들의 임상시험 프로젝트 수도 2009년 198건에서 지난해 2010년 229건으로 늘었고 동아, 중외, 한미 등의 제약사들은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해외임상을 추진 중이다. 이제는 성공하는 신약이 나와야 할 단계라는 지적이다.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지배" = 이런 현실에서 대대적인 약가인하는 의약주권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원희목(한나라당) 의원실이 지난 9월 국내 제약사 31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제약사들은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으로 인해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줄어들어 신약개발이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31개 제약사들의 지난해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율은 평균 4.78%였다. 그러나 향후 투자비율은 4.36%로 추산돼 8.8%가 감소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또한 응답기업 중 28곳은 '약가일괄인하 조치 후 신제품 및 신약개발이 가능한가?'란 질문에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대표적인 사유로는 '수익성 악화'(57.1%), '신약의 낮은 약가로 투자비용 회수 어려움'(35.7%)이 꼽혔다.
시장 전망도 어두웠다. 61.3%에 해당하는 19개사는 향후 국내 제약산업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으로 다국적 제약회사를 꼽았다.
정부는 연구개발을 열심히 하는 이른바 '혁신형 제약사'를 선정해 약가우대, 세제혜택 등 여러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업계 반응은 냉담한 상황이다.
◆한미FTA마저 다국적사 혜택 = 최근 비준동의안이 통과된 한미FTA 비준안도 다국적 제약사들의 시장 잠식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허가특허 연계제도'의 도입으로 외국 제약사들의 신약 특허권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허가특허 연계제란 신약을 보유한 제약사가 제네릭을 출시하려는 회사로부터 허가신청 통보를 받고,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일단 소송만 제기해도 정부가 제네릭의 허가절차를 중지하게 되므로 특허권이 연장되고 제네릭·개량신약 개발은 더뎌진다.
외국 제약사가 소송을 제기하면 제네릭 출시가 미뤄지는만큼 소비자들은 비싼 돈을 주고 신약을 구입해야 하므로 국민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정부는 제네릭 시판 허가·특허연계 이행 의무를 3년 동안 유예키로 한 상태지만 피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허가특허 연계제로 인한 타격이 최대 △생산 9500억원 △소득 6327억원 △고용감소 5795명으로 추산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달걀을 깨고 나서 품으면 병아리가 나오느냐"며 "정부는 연구개발을 유도하기 위해 자잘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산업붕괴를 막을 안전장치는 없다"고 말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어느 나라가 기업을 망하게 하는 정책을 하겠는가."
-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 8월
"감기 면역력 키워주자면서 아이 벌거벗겨 겨울바람에 내보는 격."
- 최영희 민주당 의원, 10월
정부가 추진중인 약가 일괄인하와 한미FTA 비준 정책은 국내 제약사들의 체질개선과 신약개발 유도를 통한 제약선진국 진입을 명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 제약사의 특허권을 국제기준을 넘어 대폭 강화하고 일시에 큰 폭의 가격인하를 실시할 경우 체질개선은 커녕 산업 붕괴로 국내 제약시장이 다국적 제약사들의 '식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제약산업에 다시 투자하는 일본 = 세계 의약품 시장은 대부분 미국, 일본, 유럽 6~7개국의 제약사들이 독점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자국 제약사를 우대하는 정책을 펴 1980년대에 신약강국에 들어선 일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제약 식민지' 상태다. 베트남(다국적 제약사 비중 85%) 태국(75%) 싱가포르(97%) 대만(74%) 등 대부분 다국적 제약사의 비중이 압도적이며 필리핀(65%), 사우디(63%) 정도가 그나마 6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제약시장 분석기관인 IMS에 따르면 대만의 경우 상위 20대 제약사 중 화이자, 노바티스 등 다국적사 11개가 상위를 장악하고 있고 베트남 역시 상위 20개사 중 자국 제약사는 3곳 뿐이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다국적 제약사의 점유율이 높은 이유가 시장 개방이 조기에 이뤄져 외국 기업이 일찍 정착할 수 있었던 반면 자국 제약 기업은 신약 개발 등 연구개발 활동이 부진해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블록버스터급 신약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제약선진국'임에도 2007년부터 민관 합동으로 제약사의 신약개발을 촉진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약가인하에 따른 세계시장 점유율 하락을 막기 위해서다. IMS에 따르면 일본은 1994년 제약산업 세계시장 점유율이 21.6%에 달했다. 그러나 계속적인 약가인하정책의 영향으로 약값이 절반 수준까지 떨어지고 매출도 감소했다. 그러자 2008년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도 절반 이하인 10% 이하로 낮아졌다.
약가인하 중심의 정책기조를 10년 이상 유지하던 일본 정부는 2012년까지 의약품 분야 연구예산을 기존의 3500억엔에서 7000억엔으로 2배 늘리기로 한 상태다. 그 외에도 임상시험 환경 개선 및 신약심사 신속화 등 산업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장 약값이 싸진다고 마냥 반길 수는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 곧 신약강국 문턱인데" = 한국은 자국의 제약산업 기능이 유지되는 몇 안되는 국가 중 하나다. 시장은 크지 않지만 자급률이 동아시아에서 높은 편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안심하긴 이르다. 복지부에 따르면 국내시장에서 다국적 제약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40% 수준이지만 제품판매 비중을 고려하면 사실상 50대 50이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국내에 생산시설을 갖고 있는 외국제약사가 2곳에 불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높다고 보기 힘들다.
국내 제약산업은 걸음마 단계다.
한국은 현재까지 17개의 신약을 내놨다. 2003년 세계 10번째 신약개발국이라는 성과도 거뒀다. 그러나 아직 '돈 버는' 신약은 없다. 그나마 평균 12년 걸린다는 연구개발 기간을 거쳐 성과가 갓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국내사들의 임상시험 프로젝트 수도 2009년 198건에서 지난해 2010년 229건으로 늘었고 동아, 중외, 한미 등의 제약사들은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해외임상을 추진 중이다. 이제는 성공하는 신약이 나와야 할 단계라는 지적이다.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지배" = 이런 현실에서 대대적인 약가인하는 의약주권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원희목(한나라당) 의원실이 지난 9월 국내 제약사 31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제약사들은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으로 인해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줄어들어 신약개발이 불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31개 제약사들의 지난해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율은 평균 4.78%였다. 그러나 향후 투자비율은 4.36%로 추산돼 8.8%가 감소한다는 전망이 나왔다.
또한 응답기업 중 28곳은 '약가일괄인하 조치 후 신제품 및 신약개발이 가능한가?'란 질문에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대표적인 사유로는 '수익성 악화'(57.1%), '신약의 낮은 약가로 투자비용 회수 어려움'(35.7%)이 꼽혔다.
시장 전망도 어두웠다. 61.3%에 해당하는 19개사는 향후 국내 제약산업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으로 다국적 제약회사를 꼽았다.
정부는 연구개발을 열심히 하는 이른바 '혁신형 제약사'를 선정해 약가우대, 세제혜택 등 여러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업계 반응은 냉담한 상황이다.
◆한미FTA마저 다국적사 혜택 = 최근 비준동의안이 통과된 한미FTA 비준안도 다국적 제약사들의 시장 잠식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허가특허 연계제도'의 도입으로 외국 제약사들의 신약 특허권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허가특허 연계제란 신약을 보유한 제약사가 제네릭을 출시하려는 회사로부터 허가신청 통보를 받고,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일단 소송만 제기해도 정부가 제네릭의 허가절차를 중지하게 되므로 특허권이 연장되고 제네릭·개량신약 개발은 더뎌진다.
외국 제약사가 소송을 제기하면 제네릭 출시가 미뤄지는만큼 소비자들은 비싼 돈을 주고 신약을 구입해야 하므로 국민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정부는 제네릭 시판 허가·특허연계 이행 의무를 3년 동안 유예키로 한 상태지만 피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허가특허 연계제로 인한 타격이 최대 △생산 9500억원 △소득 6327억원 △고용감소 5795명으로 추산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달걀을 깨고 나서 품으면 병아리가 나오느냐"며 "정부는 연구개발을 유도하기 위해 자잘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산업붕괴를 막을 안전장치는 없다"고 말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