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정부와 한국은행의 목표치 4%를 훨씬 넘어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1~10월 평균 4.4%를 기록했다. 이처럼 가파르게 오르던 소비자물가가 지난 29일 갑자기 4.0%로 뚝 떨어졌다. 귀신이 곡하고도 남을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물가정책 실패로 비난이 쏟아지고 뭇매를 맞던 정부가 하루 아침에 목표를 달성하게 됐다. '고용대박'에 이어 '물가대박'을 노래할만 하게 된 것이다.
물가대박의 비결은 간단했다. 정부가 온갖 정책을 쏟아내고도 잡지 못한 물가가 목표선 안으로 들어오게 된 데는, 금반지를 빼고 전월세 가중치를 낮춘 새 물가지수 덕이다. 물가잡기 묘책이라는 것이 단순히 '숫자놀음'인 셈이다.
통계청은 사회현상 소비형태 등 시대변화에 맞춰 5년마다 소비자물가 산정 품목과 가중치를 조정한다. 지난 2005년부터 적용하던 품목과 가중치를 이번엔 바꾸고 새 기준을 작년 1월부터 소급적용하자 날아가던 물가가 곤두박질치게 된 것이다. 원래 12월 1일로 예정됐던 물가지수 개편을 한달 앞당겨 적용했다. 올해 물가상승률을 정부 목표대로 낮추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이유다.
물가잡기 묘책이라는 것이 단순한 '숫자놀음'
이번 물가지수 개편으로 소비자물가가 0.3~0.1%p 낮아지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여 올해 물가상승률은 정부 목표치 4.0%를 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새 기준을 한달 일찍 적용하고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어온 금반지를 조사품목에서 제외하는 개편안을 추진키로 함으로써 개편안 발표 전부터 꼼수 논란이 빚어졌었다. 정부가 고물가 비난을 회피하기 위해 해가 가기 전에 물밑작업을 해왔다는 의심이 일었던 것이다. 의심은 사실로 드러났다. 조사품목과 가중치 조정 결과 목표치를 크게 웃돌던 물가가 절묘하게도 목표선에 맞아떨어지는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새 개편안은 조사대상 품목을 489개에서 481개로 줄였다. 논란이 됐던 금반지를 빼버렸다. 금반지는 최근 몇 년 사이에 금 국제시세가 폭등하여 물가지수를 크게 끌어올린 주범으로 꼽혀 물가당국의 눈엣가시가 됐다. 금반지가 조사대상에서 제외됨으로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25%p나 낮아지게 됐다. 금반지 제외 효과다.
정부는 금반지 등 귀금속은 자산으로 분류하는 유엔기준에 따라 조사대상에서 제외시켰다고 설명한다. 군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다. 이 기준은 이미 1993년에 나온 것인데 이제 와서야 제외한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억지조정이라는 비판이 이는 이유다.
가중치 조정도 물가상승률을 낮추는 쪽으로만 적용했다. 값이 많이 올라 물가상승을 주도한 전월세와 쌀 등의 가중치를 낮췄다. 모집단 가구를 1인 이상 도시가구에서 1인 이상 농촌가구로 확대한 것도 농축수산물 가중치를 낮추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다. 값이 오른 품목만 골라 가중치를 조정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조사규격이 2개 이상인 품목의 경우엔 기하평균방식을 적용한다고 한다. 결국 금반지 제외로 0.25%p, 품목과 가중치 조정으로 0.12%p, 기하평균방식 적용으로 0.02%p 물가상승률을 낮추는 효과를 보게 된다고 한다. 희한한 꼼수이자 숫자놀음이다. 그렇게 물가목표 4%를 달성했다고 해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체감물가와는 동떨어진 지수는 통계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릴 뿐이다.
통계가 정확하고 현실 제대로 반영해야 바른 정책 나와
통계는 정책의 기본이다. 통계가 정확하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야 바른 정책이 나온다. 엉터리 통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책은 실현성이 없고 헛발질을 할 뿐이다. 물가통계도 실상이 정확히 반영되어야 가계가 합리적인 지출과 소비를 계획할 수 있다. 기업도 물가변동에 맞춰 투자와 지출을 조정할 수 있게 된다.
고물가 시대를 맞아 서민들의 고통은 갈수록 깊어가는데 정부가 물가지수를 '분식'하여 착시효과나 노린다면 무능한 정부에 더하여 '정직하지도 못한 정부'로 낙인 찍히게 된다. 눈속임 지수보다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체감지수와 신선식품 지수 같은 지표를 충실하게 보완하고 공개해야 한다.
소비자물가지수가 다 하지 못하는 물가흐름을 정확히 파악하여 가계를 제대로 계획하고 꾸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엉터리 실업통계를 놓고 '고용대박'이라고 한 장관은 이번엔 '분식 통계'를 놓고 '물가대박'이라고 자찬할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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