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이 보는 세계] 미국의 미얀마 접근-중국 포위전략 신호

지역내일 2011-12-05
장행훈 언론인,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지난주 세계 언론은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미얀마(옛 버마) 방문을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최고위급 인사가 미얀마를 방문하는 것은 50년만에 처음 있는 일로 방문이 내포하는 의미가 아주 크다는 암시였다. 클린턴 장관의 미얀마 방문이 관심을 끄는 것은 두 가지 문제 때문이다. 하나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이 나라의 민주화운동에 클린턴의 방문이 미칠 영향이고 또 하나는 지난 30여년간 중국의 동맹국이었던 미얀마가 앞으로 중국의 동남아 공세를 막으려는 미국의 중국 포위망 구축에 참여할 것인지 그 가능성 여부이다.

언론이 클린턴의 방문을 역사적이라고 평가한 것은 이 방문의 목적이 미얀마의 민주화 문제보다도 중국의 동맹국인 이 나라에게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는 데 동참해 줄 수 있을지 타진하는 데 있다고 보고 클린턴 국무장관의 미얀마 지도자들과의 대화가 아시아의 역학관계에 역사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은 1988년 당시 버마 군사정권의 인권탄압과 독재에 항의하여 대사를 소환한 이후 미얀마와는 실질적인 외교관계가 거의 없었다.

1990년 실시된 총선거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를 위한 국민연맹(NLD)이 압승했다. 당연히 정권교체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군사정권은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고 이에 항의하는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다. 나라 이름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꿨다. 세계적인 규탄이 뒤따랐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미국 의회는 1997년 미얀마 정권이 계속 민주화 활동을 탄압하고 아웅산 수치를 다시 연금하면 국제적인 제재를 가한다는 결의를 채택했고 빌 클린턴 대통령이 결의를 실천에 옮겼다.

이처럼 불편했던 미국-미얀마 관계가 지난 11월 중순 하와이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전환을 맞았다. 미국의 중국 정책에 변화가 나타났다. 정상회담이 끝난 후 오바마 대통령은 호주에 2500명의 미국 해병대를 주둔시키기로 결정하고 미얀마와 외교관계를 회복하는 조치를 취할 의사를 발표했다.

힐러리 클린턴의 역사적 미얀마 방문

미얀마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인도 사이에 위치해 있다. 중국이 인도양으로 진출하려면 통과해야 할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나라다. 중국이 경쟁국인 인도를 견제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다.

서구 국가들의 압력으로 고립돼 있던 지난 30여년간 미얀마는 중국의 지원을 받는 그 동맹국이었다. 그러나 중국 샤먼대학의 동남아연구소 팡홍웨이 교수는 미얀마가 동서 어느 진영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정책을 추구하리라고 전망했다. 현재로서는 미얀마를 이용한 미국의 중국 포위 정책이 성공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국이 중국 포위전략을 세운 정책의 근간이다. 이 근간은 미국의 중국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동남아지역 나라들과 연안의 석유 천연가스 개발 문제로 몇년째 다투고 있다. 중국은 무력시위도 불사했다. 혼자서 중국을 상대하기에 버겁게 느낀 연안 약소국들은 중국을 견제해 줄 수 있는 강대국이 절실히 필요했다. 싱가폴 베트남 필리핀 등 중국과 분쟁을 겪고 있는 나라들이 미국의 지원을 모색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동남아 헤게모니를 저지하는 데 유리한 명분을 갖게 됐다. 약소국에 대한 중국의 오만이 미국을 불러들였으니 자업자득이다. 영원한 경쟁국이면서도 지금까지 중국을 신중하게 다뤄 온 미국이 호기를 놓칠 리 없다. 미국은 외교의 목표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아시아로 옮기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한다.

지난 60년 간 드러난 중미관계의 우여곡절은 우리에게 냉혹한 외교의 교훈을 상기시킨다. 1940~50년대에 중공(中共)은 소련에 못지않은 미국의 최대 적국의 하나였다.

그런 중공이 1969년 3월 중소 국경의 우수리강 연안의 다만스키섬(중국명 珍寶島)에서 소련군과 무력 충돌을 벌인 것을 계기로 소련의 위협을 느끼고 1972년 미국과 화해한다.

동맹과 적대관계는 수 없이 교차한다

불구대천의 원수인 미국과 중공이 소련을 공동의 적으로 삼는 정신적인 동맹국이 됐다. 미·중 화해는 30년 후 소련을 붕괴시키는 한 원인(遠因)이 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991년 미·중의 공동의 적인 소련이 붕괴되자 중국이 소련을 대체한 미국의 경쟁국이 된다. 반면 소련 붕괴 후 러시아와 중국은 선린협력조약을 체결하여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에 국제무대에서 사사건건 공동행동을 취한다. 2차 대전 이후 지난 66년의 외교사를 되돌아보면 국제무대에서 동맹과 적대 관계가 수 없이 바뀐다. 동맹국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한국 정치 지도자들이 새기고 간직할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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