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의 금융교실]침묵의 살인자, 가계부채

지역내일 2011-12-05
박철 KB국민은행 인재개발원 팀장

'가계부채'가 900조원에 육박하면서 여기저기서 요란한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가계부채 증가가 한국경제의 최대 위협요인"이라고 경고하고 나설 정도다. 또 해외언론들도 잇따라 한국의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 섞인 보도를 내보냈다.

특히 세계적인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2003년 '카드대란'이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들춰가며 한국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꼬집어 우리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국내 전문가들의 시각도 비슷하다. 실제 얼마 전 한 신문사가 국내 15개 주요 경제연구소 등을 대상으로 "우리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인"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절반 안팎이 가계부채를 첫 손에 꼽고 있다.

가계부채는 올해 3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인 892조5,000 억을 기록했다. 이를 통계청이 추계한 올해 전체 가구수(1737만 9667)로 나누면 가구 당 평균 5000만원이 넘는 '빚더미'에 깔려있는 셈이다.

덩달아 가계의 이자부담도 치솟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이자비용은 9만 254원으로 관련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원금을 제외하고도 연간 110만원 정도의 돈을 이자로 내고 있는 셈이다. 4인 가족 기준으로 따지면 이자로 나가는 돈만 매년 200만원이 넘는다는 얘기다.

가계부채 이자만 매년 200만원 넘어

더 큰 문제는 천정부지로 증가하는 가계부채에 비하면 가계소득은 거의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3월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가구의 평균자산은 2억9765만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7.5% 늘어난 반면 부채는 5205만원으로 12.7%늘어났다. 가계 총자산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17.5%로 지난해보다 0.8%포인트 증가했다. 이렇게 '벌이(소득)'는 시원치 않은데 빚은 늘어만 가니 가계의 부채상환능력이 사상 최악으로 떨어지고 있다. 한 마디로 빚에 허덕이는 가구는 늘어나고 가계의 '부도위험'은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는 빚을 안고 사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있다. 감당하기 힘들만큼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빚도 재산'이라거나 '빚 내는 것도 능력'이라며 태연자약한 사람들이 많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가계의 부채상환능력을 감안할 때 가계부채 문제를 걱정하는 나라 밖의 시선이 지나친 호들갑이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빚 권하는 사회에 살다 보니 어느새 빚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빚에 대한 '내성'이 단단히 생긴 탓이다.

물론 가계부채가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계부채는 '고혈압'과 비슷한 특징이 있다. 고혈압은 평소에는 견딜만하다. 별다른 증상도 없고 당장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다 보니 모르고 지내거나 경각심을 잃고 방치하기 일쑤다.

문제는 날씨 등 '외부충격'이 가해지면 무서운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지면 혈압은 쑥쑥 올라가 뇌출혈·뇌경색 등 갖가지 합병증을 일으킨다. 건강해 보이던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고혈압을 '침묵의 살인자' 또는 '소리 없는 저승사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계부채는 고혈압과 같아

가계부채도 마찬가지다. 외부충격의 강도에 따라 자칫 빚진 가계는 치명적인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예컨대, 부동산 경기침체가 지속되거나 금리인상 추세가 가속화 된다면 가계가 떠안아야 할 금리 리스크와 상환부담은 더욱 커지고 점점 더 '빚의 늪'에 빠져 들 수밖에 없다.

의사들은 고혈압 치료에서 지속적인 관리를 '합병증'을 예방하는 최고의 처방으로 꼽는다.

가계부채도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평소에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가계부채 문제가 더 이상 심각해지지 않도록 대책마련이 절실한 때다. 특히 빚을 너무 여유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빚은 빚일 뿐이지 결코 재산일 수는 없다. 빚은 미래의 불확실한 소득을 앞당겨 사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빚을 내다 보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빚을 지는 것도 습관이다. 빚이 많은 사람들 중에는 가난해서 빚을 졌다기 보다는 빚 때문에 가난해진 경우가 더 많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주량(酒量)은 '최대로 마실 수 있는 양'이 아니라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양'이다. 마찬가지로 대출한도는 '최대한 빌릴 수 있는 한도'가 아니라 '갚을 수 있는 한도'다. 빚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때다. 그래야 '침묵의 살인자', 가계부채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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