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너무 척박한 기부문화 토양(문창재)

지역내일 2011-12-09

거리마다 자선냄비가 등장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연말이 온 것이다. 냄비가 설설 끓어 뜨거운 국을 만들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종소리가 행인들의 청각을 자극한다. 서울 광화문 거리에는 작년에 없던 사랑의 온도탑이 다시 등장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건물에는 사랑의 온도계가 설치되었다.

그런데 자선냄비 종소리가 그리 활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것이 배고픈 사람들에게 뜨거운 음식을 제공하게 해달라는 호소인 줄 모르는 모양이다. 또 연말이 왔다는 신호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냄비에 돈을 넣는 행인의 모습을 보기도 어렵다. 광화문 사랑의 온도탑도, 공동모금회 사랑의 온도계도 그다지 눈금이 오르는 것 같지 않다.

썰렁한 인심을 반영하듯, 모금실적이 부진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어제 한 지방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발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금까지의 모금액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크게 줄어 목표액의 67%에 그쳤다 한다. 70%를 크게 넘었거나 100% 달성했던 예년에 비하면 크게 부진하다는 설명이 붙었다.

아이들 크리스마스 소원, 멋진 장난감에서 '아빠 일자리'로

갈수록 인심이 각박해지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닌 듯하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오랜 불황의 여파로 산타클로즈 할아버지 선물을 기다리는 동심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이들에게 받고 싶은 성탄절 선물을 말하라니까 '엄마 아빠 일자리' 또는 '주택' '난방비' 같은 것을 말하는 아이들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광풍이 휘몰아친 지난 30년 동안 지구촌 곳곳에 생긴 소득 양극화의 동공이 그만큼 커졌음을 뜻하는 현상이리라.

해마다 대학 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고,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사람들도 부쩍 많아진 이 시대의 키워드는 '생존'이 되었다. 예쁜 인형이나 멋진 장난감을 원하던 아이들의 소원이 아빠 일자리로 바뀐 것이 조금도 이상할 것 없는 세상이다.

세상이 다 그렇다 해도 우리의 기부문화가 뒷걸음질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되어 세계원조회의를 개최했다고 화제가 된 나라, 무역액 1조달러를 돌파한 세계 아홉번째 나라의 공동모금액이 크게 줄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올해 모금액이 줄어든 것은 지난해 사회공동모금회 부정사건 탓이 크다. 모금함에 돈을 넣어봐야 옳게 쓰이지 못한다는 불신이 부실한 기부문화 나무를 말라 죽게 만들었다. 그러나 크게 보면 우리 국민 모두의 자선의식 부족으로 귀결되는 문제다. 특히 대중의 본보기가 되어야 할 지도층의 무관심과 냉담성이 척박한 기부문화 토양의 원인이다.

눈을 해외로 돌려 보면 선진국일수록 기부문화가 발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컴퓨터 산업의 천재 빌 게이츠는 기부천사로 더 유명하다. 그는 지금까지 무려 540억달러를 기부했다. 우리 돈으로 치면 62조원이 넘는 돈이다.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게 하는 법을 만들자고 주장해 유명해진 워런 버핏은 450억달러를 기부했다.

한국 사회지도층의 무관심과 냉담성이 가장 큰 문제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여기는 것이 선진국 사람들의 의식구조다. 그들은 이 세상이 자신의 부를 이루어주었으니 사회에 그 돈을 돌려주어 뜻 있는 일에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고아들을 입양하여 헌신적으로 기르는 일도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자선정신의 산물이다.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는 극소수 독지가들과 연예인 또는 스포츠 스타들에 의해 명맥을 이어간다. 일부 기업인들의 거액기부가 있었지만, 그것은 자신의 과실에 대한 벌금 성격인 경우가 많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정치지도자들이 기부문화를 철저하게 외면하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정재(淨財)를 세상에 내놓는다면 큰 반향이 일어날 것이다.

며칠 전 명동 거리에서 한 노신사가 자선냄비에 넣은 봉투가 화제가 되었다. 그 속에는 "소외된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쓴 쪽지와 1억1000만원짜리 수표 1장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 일이 지도층 인사들의 오블리스 노블리주를 일깨우는 종소리로 울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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