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숫자를 쥐고 상황을 장악한다고?

지역내일 2011-12-16
유철규 성공회대 경제학 교수

얼토당토않은 일이 있었다. 경제부처의 수장이 다른 곳도 아닌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지난 10월 고용동향을 전하면서 취업자가 50만명 넘게 늘어났다는 숫자를 빌어 '고용 대박'이 났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를 두고 민심이 요동쳤고 표를 의식한 정치권도 이에 호응해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 사회에서 숫자의 위력은 대단하다. 정책을 두고 벌이는 논쟁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환경, 복지, 교육, 삶의 질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아젠다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쟁에서 경제부처가 사회단체나 여타 부처에 대해 우위를 갖는 경우가 많다.

경제우위의 사회적 구조와 풍토가 그 배경이기는 하겠지만, 현실의 실제적인 논쟁에서 경제부처의 힘이 숫자의 장악력에 기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제부처가 내세우는 논리에 밀린 측에서 하는 가장 흔한 푸념이 "숫자를 들이대는 데야 원…"이다. 그러다 보니 논쟁의 결과가 결국은 수치놀음으로 바뀌는 경우도 많다. 숫자를 장악하는 자가 상황을 장악한다는 말은 격언 아닌 격언이 되었다.

최근 통계청의 인구추계가 5년만에 큰 폭으로 조정되어 논란을 불렀다. 2006년에 추계한 수치가 현실과 큰 오차를 냈으며, 이에 따라 인구가 정점에 도달하는 시기도 2018년에서 2030년으로 재조정되었다.

인구추계는 고령사회대책, 재정전망, 출산 및 복지 정책 등 정부 장기전망의 기초자료이다. 더 내고 덜 받기로 한 2008년 국민연금 개편시에 강력한 논거가 되었던 국민연금의 소진시기도 이 추계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 많은 토론과 논쟁이 허망하기조차하다.

통계를 다루는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미래의 추계는 얼마든지 현실과 다를 수 있고, 또 항상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를 재야 하는 고용과 실업 통계는 이런 식으로라도 이해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실업률 고집하는 이유

실업률은 지난 10월에 이어 11월에도 2.9%를 기록했다. 이 숫자로만 보면 가히 완전고용상태라 할 만큼 낮다. 15세부터 29세까지의 청년실업율은 6.8%로 전체 실업율보다 높지만 이 역시 10%대를 쉽게 넘기고 때로는 20%까지 오가는 다른 주요 국가의 청년실업율과 비할 바가 못된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공식 실업률에 대한 문제 지적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실업률 측정시 사용되는 설문의 구조만 약간 바꾸어도 실업률이 크게 오른다고 발표했다. 또 자격 등이 부족해 구직활동을 하지 못하는 구직단념자를 포함할 경우 실업률은 20%대로 높아진다.

한 민간연구소가 구직단념자와 취업준비자, 취업무관심자 등을 포함하여 사실상 실업상태에 있는 자를 추정한 결과 체감 실업율이 22.1% 달한다는 조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구직단념자와 취업준비자가 48만9000명, 취업무관심자가 28만8000명으로 청년실업자 수는 110만명을 넘는다. 30만명이 못되는 공식 청년실업자 수와 비교하면 청년실업자의 70% 이상이 잡히지 않고 있는 셈이다.

대학 현장에서 보면 신규 졸업생의 졸업 후 1년 내 취업률이 50%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이를 고려하면 위의 조사결과들조차 충분히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내년까지 7만1000개의 일자리를 만들기로 했다는 고용노동부의 정책이 '언발에 오줌누기'식 헛 메아리가 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통계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설문의 구조만 바꾸어도 변하는 숫자, 실업수당제도가 훨씬 잘 발달되어 있기에 그래도 현실에 좀 더 가까운 실업자 수를 파악할 수 있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다른 국가들과의 여건 차이를 무시한 숫자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숫자 통제해도 청년들 좌절감 안 사라져

다른 것은 다 따라 하자면서 왜 구직단념자까지 포함한 다양한 실업통계들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미국을 따라하지 않을까? 통계관련 실무 부처와 경제부처 간에 통계작성 방법을 두고 알게 모르게 알력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혹시 경제부처가 숫자의 장악이 권력이라는 믿음을 실제로 갖고 있는 것이라면 큰 일이다. 숫자를 통제하고 관리한다고 해서 미래 우리 사회의 희망이어야 할 청년층의 좌절이 사라질 리 없기 때문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 편집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