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표 언론인 전 한겨레신문 논설주간
수사권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갈등이 수시로 불거지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해 말 수사이전 단계인 내사에 대해서는 검찰의 지휘를 받지 말라는 지침을 일선 경찰서에 내려 보냈다. 대통령령이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 '수사'에 '내사'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새해 초부터 여러 경찰서에서 내사 지휘를 거부하고 나섰다.
어디까지가 내사이고, 어디서부터가 검찰 지휘대상이 되는 수사냐 하는 정도의 쟁점이라면 대통령령 해당구절에 대한 관련부서(이를테면 법제처)의 유권해석으로 사전에 간단히 마무리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갈등의 형태로 드러나게 만든 것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수뇌부의 조정능력이 바닥을 헤매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이번 검경 갈등으로 드러난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번 갈등에서는 지난 가을까지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며 보였던 경찰의 거센 기세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더 이상 검찰의 잔심부름은 하지 않겠다는 수준이다. 경찰의 이런 태도는 조직의 사활을 건 검경 싸움은 더 이상 없다는 신호로 읽힐 수도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수사권 조정을 지렛대로 검찰 조직을 견제하려던 정치권의 의도가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검찰 조직에 대한 정치권의 견제가 구체화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잔심부름은 하지 않겠다는 경찰
노 대통령은 취임 2주 만인 2003년 3월 9일 젊은 검사들과 공개 토론을 갖고 검찰의 변화를 요구했다.
민주화와 함께 국내 정치사찰을 금지당한 국정원(중앙정보부의 후신)을 대신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등장한 검찰에 대한 첫 견제구였던 셈이다.
하지만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방송에 생중계된 이 토론에서 그는 검사들과의 이른바 '계급장을 뗀' 논쟁에 휘말렸다. 결국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라는 막말까지 쏟아냄으로써 토론을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그 뒤 1년 반이 지난 2004년 9월 그는 검찰개혁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 곧 자신의 대선공약인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골자로 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뛰어들었다.
검찰의 완강한 반대로 수사권 조정이 벽에 부딪치자 그는 이듬해 4월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에서 수사권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자"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검찰이 가지고 있는 '제도 이상의 권력'은 내놔야 한다. 과거의 기득권과 습관을 바꾸고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이는 거부할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이라는 말로 검찰을 설득하려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개혁에 대한 의지는 강했지만, 조건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급하게 서두른 대통령'으로 기억될 정도로 순진한 측면이 있었다. 그의 순진성은 임기 말 '이명박 코드인사'로 알려진 임채진 검찰총장과 어청수 경찰청장의 기용으로 극적으로 과시되었다. "검찰과 경찰 조직은 안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음 정권에서도 임기를 채울만한 사람으로 앉혀야 한다"고 역설했던 노 전 대통령은 퇴임 뒤 바로 임 총장에 의해 시작된 검찰수사로 치명상을 입고,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던 것이다.
검찰개혁을 향한 긴 여정
이명박 대통령의 검찰개혁에 대한 태도는 노 전 대통령과 대조적이다. 그는 검찰개혁이라는 주제를 수사권 조정으로 축소시키고, 조정에 따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기보다는 특유의 화법으로 상황을 얼버무리는 길을 택했다.
검찰의 사실상 승리로 귀결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경찰 쪽 불만이 만만치 않았던 상황에서도 그는 '경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여 "경찰은 명실상부한 수사의 한 주체가 됐다"는, 사실과는 다른 말로 치켜세웠던 것이다.
검찰은 출범하는 새 정권의 충실한 칼이 되어 전 정권 관련자들을 감옥에 보내지만, 정권 말기가 되면 현 정권과도 각을 세움으로써 다음 정권에 대비해왔다.
개인의 성향과는 상관없이 조직으로서의 검찰은 이런 과정을 되풀이함으로써 더욱 강해지고, 매우 정치적인 조직으로 성장했다. 검찰개혁이야말로 특정 대통령의 공약차원을 넘어, 온 국민의 힘으로 이뤄야 할 민주화의 주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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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권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갈등이 수시로 불거지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해 말 수사이전 단계인 내사에 대해서는 검찰의 지휘를 받지 말라는 지침을 일선 경찰서에 내려 보냈다. 대통령령이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 '수사'에 '내사'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새해 초부터 여러 경찰서에서 내사 지휘를 거부하고 나섰다.
어디까지가 내사이고, 어디서부터가 검찰 지휘대상이 되는 수사냐 하는 정도의 쟁점이라면 대통령령 해당구절에 대한 관련부서(이를테면 법제처)의 유권해석으로 사전에 간단히 마무리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갈등의 형태로 드러나게 만든 것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수뇌부의 조정능력이 바닥을 헤매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이번 검경 갈등으로 드러난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번 갈등에서는 지난 가을까지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며 보였던 경찰의 거센 기세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더 이상 검찰의 잔심부름은 하지 않겠다는 수준이다. 경찰의 이런 태도는 조직의 사활을 건 검경 싸움은 더 이상 없다는 신호로 읽힐 수도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수사권 조정을 지렛대로 검찰 조직을 견제하려던 정치권의 의도가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검찰 조직에 대한 정치권의 견제가 구체화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잔심부름은 하지 않겠다는 경찰
노 대통령은 취임 2주 만인 2003년 3월 9일 젊은 검사들과 공개 토론을 갖고 검찰의 변화를 요구했다.
민주화와 함께 국내 정치사찰을 금지당한 국정원(중앙정보부의 후신)을 대신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등장한 검찰에 대한 첫 견제구였던 셈이다.
하지만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방송에 생중계된 이 토론에서 그는 검사들과의 이른바 '계급장을 뗀' 논쟁에 휘말렸다. 결국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라는 막말까지 쏟아냄으로써 토론을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그 뒤 1년 반이 지난 2004년 9월 그는 검찰개혁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 곧 자신의 대선공약인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골자로 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뛰어들었다.
검찰의 완강한 반대로 수사권 조정이 벽에 부딪치자 그는 이듬해 4월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에서 수사권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자"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검찰이 가지고 있는 '제도 이상의 권력'은 내놔야 한다. 과거의 기득권과 습관을 바꾸고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이는 거부할 수 없는 변화의 흐름"이라는 말로 검찰을 설득하려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개혁에 대한 의지는 강했지만, 조건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급하게 서두른 대통령'으로 기억될 정도로 순진한 측면이 있었다. 그의 순진성은 임기 말 '이명박 코드인사'로 알려진 임채진 검찰총장과 어청수 경찰청장의 기용으로 극적으로 과시되었다. "검찰과 경찰 조직은 안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음 정권에서도 임기를 채울만한 사람으로 앉혀야 한다"고 역설했던 노 전 대통령은 퇴임 뒤 바로 임 총장에 의해 시작된 검찰수사로 치명상을 입고,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던 것이다.
검찰개혁을 향한 긴 여정
이명박 대통령의 검찰개혁에 대한 태도는 노 전 대통령과 대조적이다. 그는 검찰개혁이라는 주제를 수사권 조정으로 축소시키고, 조정에 따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기보다는 특유의 화법으로 상황을 얼버무리는 길을 택했다.
검찰의 사실상 승리로 귀결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경찰 쪽 불만이 만만치 않았던 상황에서도 그는 '경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여 "경찰은 명실상부한 수사의 한 주체가 됐다"는, 사실과는 다른 말로 치켜세웠던 것이다.
검찰은 출범하는 새 정권의 충실한 칼이 되어 전 정권 관련자들을 감옥에 보내지만, 정권 말기가 되면 현 정권과도 각을 세움으로써 다음 정권에 대비해왔다.
개인의 성향과는 상관없이 조직으로서의 검찰은 이런 과정을 되풀이함으로써 더욱 강해지고, 매우 정치적인 조직으로 성장했다. 검찰개혁이야말로 특정 대통령의 공약차원을 넘어, 온 국민의 힘으로 이뤄야 할 민주화의 주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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