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배드 사이언스’] 과학사기꾼들에게 통쾌한 일침을 놓다

지역내일 2012-01-06
안종주 환경·보건 칼럼니스트

사람은 매우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리는 첨단과학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여전히 비과학적인 상품에 매달린다. 특히 건강과 관련해 그런 일이 많이 벌어진다. 10명 가운데 한 명이라도 이런 비과학적인 치료법이나 건강식품에 몸과 마음을 뺏긴다고 해도 수백만 명이나 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과학을 빙자한 건강·의료상품이 등장했다. 그것은 때론 기적의 의약품으로, 때론 신비의 식품으로, 때론 마법의 상품으로 유행병처럼 대중 사이에 번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심해상어 간기름인 스쿠알렌이 만병통치약처럼 팔려나갔다. 백담사에 '유배'가 있던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의 절 방 한 켠에 놓인 모 회사 스쿠알렌 제품이 방송화면에 비치자 너도나도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먹을 정도면 확실히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라는 생각에 심지어는 어린이 암환자와 말기 암환자까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줄 구세주처럼 여겨 마구 사먹었다. 그즈음 멜라토닌이나 DHEA와 같은 호르몬제품이 신비의 의약품 또는 만병통치약처럼 소개됐다.

또 한때 자석팔찌와 목걸이 등이 신경통이나 관절통뿐만 아니라 만병에 좋다는 선전에 혹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차고 다녔다.

1980년대 이미 전자파를 차단해준다는 손톱크기만한 제품이 외국에서 수입돼 팔렸다. 컴퓨터 모니터나 텔레비전 등에 이를 붙인 사람이 제법 있었다. 뿐만 아니라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먹는물 오염문제가 1990년대 초반 전 국민의 관심을 끄는 사회문제로까지 번지자 파이수, 육각수, 자화수 등 과학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름을 붙인 물이 신비의 물로 둔갑해 만성병 환자나 암환자, 고엽제 환자들에게까지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알칼리수가 만병통치약 이라고 = 이밖에도 현대인들은 산성식품을 많이 먹어 몸이 산성체질로 바뀌는 바람에 각종 성인병과 암에 시달린다며 이를 알칼리체질로 바꾸어주어야 병을 예방하고 고칠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퍼뜨리며 알칼리수를 만병통치약으로 팔아먹던 어느 대기업이 결국 뒤늦게 철퇴를 맞기도 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 반짝했던 사이비 과학·의학제품에 속았던 일은 까마득하게 잊고 새로운 사이비 과학·의학제품에 다시 눈길을 돌린다. 2010년대를 맞이한 지금은 비타민, 오메가 3, 항산화제 등이 과거 영광을 차지했던 스쿠알렌이나 호르몬제를 밀어내고 대세다. 산성체질을 들먹이던 과학사기꾼들은 최근 몸 안에 쌓인 독소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떠벌린다. 그리고 이들은 몸의 독소를 제거해준다는 이름으로 디톡스차와 디톡스식품·화장품을 팔고 있다. 이들은 또 몸에 좋다거나 자녀의 성적을 올려주고, 젊게 해주고, 암과 노화를 예방해준다는 말만 들으면 사족을 못 쓰는 현대인들을 겨냥해 사이비 건강의료상품·식품을 만들어 판다.

영국의 신경정신과 전문의 출신의 과학칼럼니스트이며 과학저술가로 영국과학저술가협회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벤 골드에이커가 쓴 <배드 사이언스="">는 사이비 약품이나 근거 없는 식이요법 등을 팔아먹는 동종요법사, 영양요법사, 제약회사와 이들의 뒷배를 봐주는 무책임한 언론에 시원한 '똥침'을 날린 책이다. 저자는 주로 영국에서 벌어진 사례를 바탕으로 신랄한 어조로 사이비 의료·식품전문가들과 제약회사, 언론인을 비판하는데 그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저자는 독제제거 족욕기가 어떻게 소비자들을 속이는지를 설명한다. 이 족욕기는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간 TV홈쇼핑이나 인터넷쇼핑몰에서 불티나게 팔리다 2007년 그 허위성을 폭로한 언론보도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판매를 금지했다. 하지만 저자는 사기 제품이라는 사실을 이미 2004년 밝혀냈다. 저자가 사기성을 밝혀낸 또 다른 디톡스상품인 이어캔들은 2010년 3월 우리나라 언론도 그 허위성을 보도했지만 여전히 온라인쇼핑몰이나 건강제품 가게에서 팔리고 있고 피부미용(관리)실에서 시술되고 있어 소비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피부의 독소를 제거해준다는 화장품들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무턱대고 비싼 돈을 주고 사 바르지는 않을 게 분명하다. 효과가 없거나 있더라도 미미해 돈이 아까울 테니 말이다.

사이비 과학 제품이 판을 치는 대표적인 분야가 뇌 영역이다. 아이들의 두뇌를 향상시키고 성적을 올려준다는 말에 부모들은 솔깃하기 마련이다. 이 책을 보면 이는 비단 우리나라 부모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학생들의 성적을 올려준다는 생선기름(DHA, 오메가 3 성분 등) 캡슐을 만들어 파는 회사와 이 회사를 운영하는 사이비 과학자들의 상술과 사기방법, 가짜 학력, 그리고 여기에 놀아나는 학교 등도 저자가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파헤치고 있다. 그는 두뇌를 좋게 해준다는 '뇌체조'에 대해서도 난도질했다.

21세기가 첨단의학시대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치료할 수 없거나 치료가 어려운 불치·난치병이 수두룩하다. 이 때문에 환자나 그 가족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한다. 동종요법사를 비롯한 사이비 보완대체의학자들은 바로 이런 점을 교묘히 이용한다. 그래서 이들에 속은 사람들이 아무 성분도 들어있지 않은 물을 기적의 치료제로 여기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비타민C가 감기예방은 물론 암 예방과 신체 활력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은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일종의 신앙과도 같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방송사의 아침 방송에 국립의대 교수가 나와 고용량의 비타민C를 복용하면 만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하자마자 그날 서울시내 약국의 비타민이 동나다시피 하는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이 책을 읽는다면 적어도 비타민을 기적의 약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환상은 깨질 것이 분명하다.

◆과학 꼼수에 속지 않으려면 = 저자는 몸에 걸치는 단순한 액세서리에 불과한 큐링크(우리나라에서도 2004년부터 집중력을 향상시켜주는 학습도우미로 팔리고 있음)가 어떻게 전자파를 차단해주고 질병을 치료해주는 놀라운 상품으로 둔갑한지와 신약개발 임상시험 때 부작용은 숨기고 좋은 점은 과장하는 제약회사들과 '아니면 말고' 식의 입맛대로 보도하거나 '위험팔기 '장사에 급급한 언론의 구린 곳도 시원하게 까발려 놓았다. 과학꼼수꾼들에게 몸과 마음이 상하지 않으려면 이 책을 읽어라.

공존

벤 골드에이커 지음

강미경 옮김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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