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또 왔는가. 정권 말기가 되면 계절의 전령사처럼 어김없이 찾아오는 실세들의 비리와 부정부패 드라마가 또 시작인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측근의 수뢰의혹 보도는 끝없이 되풀이되는 정권말기 현상의 전주곡 같다.
최고 권력자의 측근들이 줄줄이 물의를 일으키더니, '상왕' 소리를 듣던 이상득 의원 보좌관이 수뢰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번에는 '방통 대통령' 최 위원장의 양아들이라던 정용욱 보좌역이 2억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다.
240억원의 교비횡령 혐의로 구속된 김학인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을 교육방송(EBS) 이사로 선임해 준 대가로 정씨가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지난 해 10월 정씨가 홀연히 사표를 내고 해외로 잠적해 묻혀 넘어가는 듯했으나, 수사과정에서 그 말을 한 사실이 보도되어 사건이 터졌다.
4급 보좌역이 실국장들로부터 보고받아
최 위원장은 5일 국회에서 유감의 뜻을 표명하면서도, 이사선임 로비 의혹은 부인했다. "EBS 이사 선임은 절차를 거쳐 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표결로 결정된 것이고, 그 과정에서 금품 수수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매사가 그렇게만 된다면 수많은 의혹과 뇌물사건이 일어날 수 없다. 그런 인사, 그런 행정을 국민은 갈망한다.
그러나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뇌물의혹의 주인공 정용욱 보좌역 임용에서부터, 그가 최 위원장 '대리인'으로 일한 3년여 동안 방송 통신 관련 정책과 업무를 둘러싼 잡음들이 뇌물수수의 개연성을 증거하고 있다.
그는 최 위원장의 비호만 받아온 것이 아니다.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의 비호 의혹까지 일고 있다. 민주통합당 정책위 의장 주승용 의원은 5일 정책회의 발언에서 "최 위원장의 개인비서였던 정씨 부인이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 주택공사 비서를 거쳐 청와대 행정관이 되었으며, 지난해 10월 정씨가 사직할 때 청와대를 떠났다"고 말했다.
진작부터 정씨의 비행을 안 청와대가 여러 차례 구두경고로 그친 배경에 이런 인적관계도 작용했구나 싶다. 그러나 더 큰 배경은 최 위원장과의 특별한 관계다.
'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린 정씨가 관련 업계와 안팎의 관계인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선거기획사를 운영하던 그는 최 위원장이 한국갤럽 회장 시절 인연을 맺었으며, 2007년 함께 MB 대선캠프에 몸을 담았고, 그 이후 최 위원장 개인비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MB정권 출범 후 방통위원장이 된 최 위원장은 직제를 고쳐 가며 정씨를 정책보좌역(4급 계약직)으로 발탁했다. 그 이후 정씨의 위세가 어떠했을지는 짐작하는대로다. 이동통신 주파수 할당,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채널배정 등 중요 방송통신 민원에 '거쳐야 할 곳'으로 그의 이름이 회자한 것이 업계 현실이었다고 한다. 방통위 안에서 실·국장들이 하위직인 그에게 업무보고를 했다고 하니 위세를 알 만하지 않은가.
관련 업계에서는 지금 불거진 의혹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주파수 할당과 관련해 SK로부터 3억원을 받았고, EBS 사옥 부지 헐값매각에 개입한 의혹도 제기되었다.
문제는 그런 의혹들에 최 위원장이 얼마나 연관되었느냐는 것이다. 공영방송사 인사와 방통위 업무관련 이권, 그리고 금싸라기 같은 강남땅을 특정인이 헐값에 사도록 작용한 일이 4급 계약직 보좌역 한 사람의 힘이었다고 볼 사람이 있을까?
이번에도 꼬리만 자른다면 검찰 신뢰회복 불가능
검찰은 이 의혹에 관하여 아직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인사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아직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고, 김씨 개인비리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 검찰의 공식 코멘트다. 신중하다 못해 머뭇거리는 인상이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10억원이 넘는 돈을 받은 이상득 의원 보좌관 박배수씨를 구속하면서도, 이 의원과의 연관을 밝혀내지 않아 도마뱀 꼬리 자르기 수사라는 비판을 받은 검찰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처리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기우이기를 바란다.
아무리 간이 커도 아랫사람이 그렇게 큰돈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 세인의 상식이다. 이번에도 도마뱀 꼬리 자르기이면 검찰은 영영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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