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러시아가 불안해 보인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서방 언론은 내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어렵지 않게 당선될 것으로 내다보았고 그동안의 인기를 고려하면 '차르'푸틴 시대가 2024년까지도 계속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었다.
그런데 12월4일 두마(러시아 의회)선거가 실시된 다음날부터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가 일어나고. 10일에는 시위가 전국 80여 도시로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푸틴의 앞날이 그렇게 평탄하지만은 않으리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시위 군중들이 "이번 선거는 사기극이다"라고 규탄한다. 유령 선거인 명부를 작성해서 여당 후보에게 투표하는가 하면 투표함에 여당지지 투표용지를 무더기로 투입하기도 했다. 가제타.루(gazeta.ru) 같은 인터넷 신문 기자들이나 유튜브 카메라가 부정선거 장면들을 포착해서 인터넷에 올려 진실을 알렸다. 푸틴이 주류 언론이나 텔레비전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터넷이나 사회망서비스(SNS)는 겸열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통제를 받는다는 푸틴의 러시아 언론이 우리보다 더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두마 부정선거의 무효와 재선거를 촉구한데 이어 15일에는 유럽의회가 모든 정당이 참가하는 '자유롭고 정직한' 선거를 다시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엄중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러시아 민주주의의 위기다. 푸틴이 부정선거에 대한 국내외의 항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또 이것이 내년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가 큰 관심사다.
유럽의회, 러시아의 재선거 실시 촉구 결의
금년은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가 새로 출범한지 20년이 되는 해다. 1991년 12월21일 러시아를 비롯해서 우크라이나 벨라루시 카자흐스탄 등 소련 연방 15개 공화국 중 11개가 연방 탈퇴와 독립국공동체(CIS)를 신설하는 조약을 체결한다. 발틱 3개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과 그루지아는 이미 완전독립을 선언했다. 이제 소련은 실체가 없는 종이 조각이 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고르바초프는 25일 크레믈린에서 소련의 종언과 함께 대통령 사임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의 선언이 끝나자 저녁 7시 크레믈린에 계양던 소련의 붉은기가 내려지고 러시아의 백청홍 3색기가 올라간다. 공산 소련이 사라지고 민주 러시아가 탄생했음을 알리는 상징의 교체였다.
러시아 탄생의 주역은 보리스 옐친이었다. 그는 그해 8월 소련의 붕괴를 막기 위해 군대와 KGB 지도부가 일으킨 쿠데타를 몸으로 막았다. 소련 최고회의에서 공산당과 싸우고 이들의 쿠데타 음모를 탱크와 대포로 분쇄했다. 그는 공산당을 불법화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그가 갑작스럽게 도입한 '충격요법'(물가 자유화)은 러시아 서민들을 견디기 어려운 빈곤상태로 몰아넣었다. 그의 민영화 계획은 소련 정부가 관장하던 대기업들을 권력의 측근들에게 헐값으로 넘겨줘 그들을 하루아침에 엄청난 벼락부자로 만들었다. 옐친은 개인적으로도 부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궁지에 몰린 옐친은 자신의 부정부패를 면죄해주는 조건으로 푸틴에게 권력을 이양한다. 푸틴이 크레믈린의 주인이 된 것은 이런 정치적 흥정의 결과였다.
KGB 출신인 푸틴은 KGB 두뇌와 조직에 의존해서 이완된 러시아의 기강을 바로잡고 러시아의 국위를 조금씩 회복하고 경제 여건을 개선하는데 성공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권위적이고 특히 통치 수단으로 언론을 통제한다는 비판을 받았왔다. 그 역시 장기집권 하면서 부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사만평은 그가 만든 통합러시아당을 '사기꾼과 도둑의 정당'이라고까지 혹평한다.
SNS향배에 주의 기울여야
푸틴은 지금까지는 주류언론과 방송매체를 통제해서 여론을 조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인터넷과 SNS의 전파로 푸틴의 여론조작이 여의치 않게 됐다. 선거부정에 관한 보도도 주류언론이 아니라 인터넷이나 SNS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러시아에는 아직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신의 유산이 살아있다. 정치적으로 의식있는 젊은 세대들은 SNS를 통해서 겁 없이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며 그것이 푸틴의 정책과 인기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인터넷 신문들의 보도다. 이들의 푸틴에 대한 비판 역시 대담해지고 있다. 이제 푸틴도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수단을 소유한 시민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소련 붕괴 20년 만에 러시아에 민주주의의 봄이 왔다는 해외 언론들이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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