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 프레시안 이사
여기 한 인간이 있다. 그는 광대(廣大)다. 광대도 보통 광대가 아니라, 중증 중독에 걸린 광대다. 그러니 인생역정 또한 범상치 않다. 서울대 재학 시절 연극에 푹 빠져 지냈으며 이 때 소리도 배웠다. 사회에 나와선 잠시 잡지사 기자와 교사를 했다.
그러다 학창 시절의 지병인 '광대병'이 도졌다. 평생의 업(業)으로 생각한 연극쟁이가 됐다. 우연찮게(?), 아니 숙명적으로 각색과 남자 주인공까지 맡은 '서편제'가 단관 관객 100만을 돌파하자 국민스타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개방직 초대, 2대 국립극장장을 거쳐, 급기야 최초의 광대 출신 문화관광부장관까지.
김명곤이 '꿈꾸는 광대'라는 책을 냈다. 자전 에세이다. 총선 때가 다가오면 개나 소나 책을 낸다. 그리고 스스로 책 낸 걸 열심히 떠든다. 출판기념회는 요란 뻑쩍지근하기 짝이 없다. 그럼 이 책도? 더구나 김명곤은 장관까지 지냈으니 이미 '정치적 인물' 아닌가!
김명곤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제목처럼 영원히 꿈꾸는 '광대'다. 따라서 이 책은 광대 김명곤의 인생 자전(自傳)일뿐 정치완 아무 상관이 없다. 그건 서평자(書評者)가 보장한다. 개인적으로 그를 잘 알기 때문이다. 혹여 그가 4·11 총선에 출마한다면 그는 이 서평으로 인해 사전선거운동 전과자가 될 거다.
책은 꿈과 삶에 대한 그의 자전적 기록이다. 막연히 문학가가 되고 싶었던 청소년시절을 거쳐 사대 독어교육과에 입학한 후 운명처럼 찾아온 연극에 미친다. 지리산 자락에서 들려오는 판소리의 울림을 따라 박초월 명창의 애제자가 되면서 소리꾼이 된다. 남민전 사건은 탐미적 예술관을 가졌던 그에게 불온한 영향을 끼쳤고….
이후 1980년대 민중문화운동의 전위인 연극 연출가, 작가, 제작자, 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영화에 진출해 서편제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한 사연. 국립극장장, 문화관광부장관 재임 시의 영광과 고뇌.
그리고 배화여고 1년생 제자와의 부적절한(?) 로맨스, 자신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정작 자신은 반대편으로 가 버린 정치인 이재오와의 애매한 인연. 김명곤의 연극을 보러와 휘하 국회의원에게 "연극을 보지 않는 무식한 자"라고 꾸짖은 '문화대통령' DJ와의 각별한 인연.
그에게 "후보 시절 문화예술에 대한 식견이 천박하다"는 질타를 받고도 그를 장관에 기용한 대인배(大人輩) 노무현과의 인연. 결국 그가 가는 마지막 길(路祭)을 총괄 연출하게 된 기구한 숙명. 노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노정(露呈)된 MB 정권의 저열하고도 천박한 문화 의식과 전 정권 죽이기 등이 가감 없이 열거되고 있다.
연대기라고 하지만, 책은 전후좌우, 시공을 넘나들며 광대처럼 훨훨 난다. 연극쟁이로 분주하던 1992년 여름 감독 임권택의 전화 한통으로 시작된 '국민영화' 서편제와의 인연으로 시작되는 1부는 소설가 이청준, 영화감독 이장호, 작가 이윤기, '바보' 노무현, 개그맨 김제동과 선배 광대, DJ 등 그의 삶에 강렬한 영향으로 다가왔던 인물을 조명하고 있다.
2부는 낳고 자란 얘기. 가족과 스승, 그리고 전주고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기까지의 유청소년(幼靑少年) 시절을 그리고 있다.
3부는 청년 김명곤 편이다. 연극에 미치고, 판소리에 미치면서 질풍노도(Strum und Drang)의 삶을 달리며 자기도 모르게 예술가로서의 초석을 다지는 시기. 제자 중 대학을 나온 '선비'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운지 공연하러 가거나 방송국에 가거나 국악인 모임이 있을 때면 꼭 데려가서 인사를 시켰던 박초월 명창과의 만남. <뿌리깊은 나무=""> 한창기 사장을 만나는 등 인생의 은인들이 찾아왔지만, 병마가 찾아와 고통과 시련으로 절망하던 시절의 얘기다. 그런가 하면 여고 1년생 제자는 평생의 반려(伴侶)가 되어 김명곤의 병을 쫒아내 준다.
제4부는 탐미적 예술가에서 민중문화운동가로의 변신과 실천. 80년대 초 그의 삶을 민중연극쟁이로 바꿔주었던 교사 이재오(한나라당 국회의원)와의 인연, 극단 '아리랑' 창단, 노동문제를 직설적으로 다룬 문제적 연극 '파업전야'와 이적성을 살피러 온 기관원들이 오히려 감동했다는 연극 '격정만리' 등에 얽힌 얘기, 남사당 '유랑의 노래' 등 광대로서 그의 편력을 적나라하게 까보인다. 특히 유랑의 노래는 김명곤으로 하여금 예전 남사당패가 그랬던 것처럼 전국 장터를 누비며 서민들의 애환을 교감하는 마당이었다는 점에서 그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다.
마지막 5부. 그는 생각지도 않았던 개방직 초대 국립극장장, 문광부장관으로 판서(判書) 반열에 오르면서 겪어야 성취감과 고뇌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278~279쪽에선 요즘 절정을 맞고 있는 한류가 어떻게 체계화됐는가를 알 수 있다. 그는 장관 재직 시절 한류의 지속적 확산을 위해 이른바 한복, 한옥, 한글, 한식, 한지, 국악 등 이른바 6H브랜드 개발을 주도했고, '한 스타일 종합육성계획'을 발표했다.
한편 275~278쪽에선 그 자신 스크린 쿼터 축소 반대자이면서 동료 배우들과 척(蹠)을 질 수밖에 없었던 속내와 '바다이야기' 사건 설거지 얘기가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대단원. 5부 '나는 다시 광대다'. 여기서 독자는 유랑민의 자유로움과 창작생의 희열에 빠진 요즘 김명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는 8년만에 다시 광대(2007년 1월 KBS2TV '대왕 세종')로 돌아온 소회와 함께 최근의 일상, 특히 '예마(藝魔)' 찾기에 골몰하는 모습도 보인다.
김명곤은 광대를 '넓고 큰 영혼으로 세계의 불화와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 서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감싸 안고 표현하는 예술가'로 정의(definition)하고 있다. 그 정의가 맞는다면 그는 갈 데 없는 광대다. 앞으로 그는 또 어떤 몸짓으로 광대를 하게 될 것인가?
유리창
김명곤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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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인간이 있다. 그는 광대(廣大)다. 광대도 보통 광대가 아니라, 중증 중독에 걸린 광대다. 그러니 인생역정 또한 범상치 않다. 서울대 재학 시절 연극에 푹 빠져 지냈으며 이 때 소리도 배웠다. 사회에 나와선 잠시 잡지사 기자와 교사를 했다.
그러다 학창 시절의 지병인 '광대병'이 도졌다. 평생의 업(業)으로 생각한 연극쟁이가 됐다. 우연찮게(?), 아니 숙명적으로 각색과 남자 주인공까지 맡은 '서편제'가 단관 관객 100만을 돌파하자 국민스타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개방직 초대, 2대 국립극장장을 거쳐, 급기야 최초의 광대 출신 문화관광부장관까지.
김명곤이 '꿈꾸는 광대'라는 책을 냈다. 자전 에세이다. 총선 때가 다가오면 개나 소나 책을 낸다. 그리고 스스로 책 낸 걸 열심히 떠든다. 출판기념회는 요란 뻑쩍지근하기 짝이 없다. 그럼 이 책도? 더구나 김명곤은 장관까지 지냈으니 이미 '정치적 인물' 아닌가!
김명곤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제목처럼 영원히 꿈꾸는 '광대'다. 따라서 이 책은 광대 김명곤의 인생 자전(自傳)일뿐 정치완 아무 상관이 없다. 그건 서평자(書評者)가 보장한다. 개인적으로 그를 잘 알기 때문이다. 혹여 그가 4·11 총선에 출마한다면 그는 이 서평으로 인해 사전선거운동 전과자가 될 거다.
책은 꿈과 삶에 대한 그의 자전적 기록이다. 막연히 문학가가 되고 싶었던 청소년시절을 거쳐 사대 독어교육과에 입학한 후 운명처럼 찾아온 연극에 미친다. 지리산 자락에서 들려오는 판소리의 울림을 따라 박초월 명창의 애제자가 되면서 소리꾼이 된다. 남민전 사건은 탐미적 예술관을 가졌던 그에게 불온한 영향을 끼쳤고….
이후 1980년대 민중문화운동의 전위인 연극 연출가, 작가, 제작자, 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영화에 진출해 서편제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기도 한 사연. 국립극장장, 문화관광부장관 재임 시의 영광과 고뇌.
그리고 배화여고 1년생 제자와의 부적절한(?) 로맨스, 자신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정작 자신은 반대편으로 가 버린 정치인 이재오와의 애매한 인연. 김명곤의 연극을 보러와 휘하 국회의원에게 "연극을 보지 않는 무식한 자"라고 꾸짖은 '문화대통령' DJ와의 각별한 인연.
그에게 "후보 시절 문화예술에 대한 식견이 천박하다"는 질타를 받고도 그를 장관에 기용한 대인배(大人輩) 노무현과의 인연. 결국 그가 가는 마지막 길(路祭)을 총괄 연출하게 된 기구한 숙명. 노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노정(露呈)된 MB 정권의 저열하고도 천박한 문화 의식과 전 정권 죽이기 등이 가감 없이 열거되고 있다.
연대기라고 하지만, 책은 전후좌우, 시공을 넘나들며 광대처럼 훨훨 난다. 연극쟁이로 분주하던 1992년 여름 감독 임권택의 전화 한통으로 시작된 '국민영화' 서편제와의 인연으로 시작되는 1부는 소설가 이청준, 영화감독 이장호, 작가 이윤기, '바보' 노무현, 개그맨 김제동과 선배 광대, DJ 등 그의 삶에 강렬한 영향으로 다가왔던 인물을 조명하고 있다.
2부는 낳고 자란 얘기. 가족과 스승, 그리고 전주고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기까지의 유청소년(幼靑少年) 시절을 그리고 있다.
3부는 청년 김명곤 편이다. 연극에 미치고, 판소리에 미치면서 질풍노도(Strum und Drang)의 삶을 달리며 자기도 모르게 예술가로서의 초석을 다지는 시기. 제자 중 대학을 나온 '선비'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운지 공연하러 가거나 방송국에 가거나 국악인 모임이 있을 때면 꼭 데려가서 인사를 시켰던 박초월 명창과의 만남. <뿌리깊은 나무=""> 한창기 사장을 만나는 등 인생의 은인들이 찾아왔지만, 병마가 찾아와 고통과 시련으로 절망하던 시절의 얘기다. 그런가 하면 여고 1년생 제자는 평생의 반려(伴侶)가 되어 김명곤의 병을 쫒아내 준다.
제4부는 탐미적 예술가에서 민중문화운동가로의 변신과 실천. 80년대 초 그의 삶을 민중연극쟁이로 바꿔주었던 교사 이재오(한나라당 국회의원)와의 인연, 극단 '아리랑' 창단, 노동문제를 직설적으로 다룬 문제적 연극 '파업전야'와 이적성을 살피러 온 기관원들이 오히려 감동했다는 연극 '격정만리' 등에 얽힌 얘기, 남사당 '유랑의 노래' 등 광대로서 그의 편력을 적나라하게 까보인다. 특히 유랑의 노래는 김명곤으로 하여금 예전 남사당패가 그랬던 것처럼 전국 장터를 누비며 서민들의 애환을 교감하는 마당이었다는 점에서 그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다.
마지막 5부. 그는 생각지도 않았던 개방직 초대 국립극장장, 문광부장관으로 판서(判書) 반열에 오르면서 겪어야 성취감과 고뇌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278~279쪽에선 요즘 절정을 맞고 있는 한류가 어떻게 체계화됐는가를 알 수 있다. 그는 장관 재직 시절 한류의 지속적 확산을 위해 이른바 한복, 한옥, 한글, 한식, 한지, 국악 등 이른바 6H브랜드 개발을 주도했고, '한 스타일 종합육성계획'을 발표했다.
한편 275~278쪽에선 그 자신 스크린 쿼터 축소 반대자이면서 동료 배우들과 척(蹠)을 질 수밖에 없었던 속내와 '바다이야기' 사건 설거지 얘기가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대단원. 5부 '나는 다시 광대다'. 여기서 독자는 유랑민의 자유로움과 창작생의 희열에 빠진 요즘 김명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는 8년만에 다시 광대(2007년 1월 KBS2TV '대왕 세종')로 돌아온 소회와 함께 최근의 일상, 특히 '예마(藝魔)' 찾기에 골몰하는 모습도 보인다.
김명곤은 광대를 '넓고 큰 영혼으로 세계의 불화와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 서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감싸 안고 표현하는 예술가'로 정의(definition)하고 있다. 그 정의가 맞는다면 그는 갈 데 없는 광대다. 앞으로 그는 또 어떤 몸짓으로 광대를 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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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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