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에선 이번 설 연휴 동안 전국적으로 3154만명이 이동하고 설날인 23일에만 647만명이 고향을 찾을 것으로 내다봤다. 작년 설보다 이동인구가 2% 정도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여기저기 북적거리고, 귀성의 설렘 또한 피부로 느껴져야 할 터다. 그러나 웬일일까,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백화점이나 시장은 썰렁하기까지 하다. TV에 비친 유통업체 종사자들은 "설이 전혀 설 같지 않다"며 "경기가 나쁘다고 선물조차 안하는 것 같다"고 한숨을 쉰다.
명절 대목은커녕 경기한파가 사람들 마음을 꽁꽁 얼리고 있다. 물가가 올랐느니 아니니 따질 것도 없이 "아예 돈을 안 쓰기로 작심"하고 시장 근처는 얼씬도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고급아파트 주변에 선물 전달하러 들락거리는 택배 트럭이나 오토바이를 보며 '공연히 화를 내는' 사람들도 늘었다.
지난해 설도 구제역 탓에 썰렁하긴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경기자체가 실종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는 세계경제 전망이 불확실한 데다 금융위기 쓰나미가 언제 몰려들지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겹쳐 기업이건 개인이건 돈 씀씀이를 꽁꽁 묶어놓은 모양새다.
이럴 때 명절을 맞는 건 정말 우울한 일이다. 이런 판에, 서민들을 더욱 짜증나게 하고 화를 돋우는 게 있다. 바로 정치다. 사실 '잘하는 정치'라는 게 별 것 아니고 "그저 백성들 배부르고 등 따숩게 해주면" 된다고 하는데, 어쩐 일인지 이 나라 정치는 그러기는커녕 분노를 넘어 증오의 대상으로까지 악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런 배경엔 서민의 생활이나 의식과 너무나 다른 정치인의 '돈 문제'가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터져나온 정치인의 부정 비리와, 거기 섞인 더러운 돈 냄새가 국민을 절망케 하고 분노케 하다 끝내는 증오하도록 만들었다는 얘기다.
절망과 분노 넘어 증오의 대상으로
자, 한번 짚어보자. 누가 뭐래도 이 나라 정치의 정점은 대통령이다. 다음이 국회의장쯤 되고 여야대표, 국회의원, 정치인장관, 대통령비서, 원외 당직자, 대의원, 당원들이 그 뒤를 이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말썽이 난 이른바 '전당대회 돈 봉투 문제'는 바로 이들 전체와 관련이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봉투를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하급당원조차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것은 가령 국회의원에게 돈을 건넸어도 그건 그 개인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대의원, 당원을 보고 돈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급당원들은 시쳇말로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 채 도매금으로 넘어갔다"는 얘기다.
말은 그렇지만 초점을 흐릴 수 있으니 '꼭대기'에 국한해 얘기한다 해도 울화통이 터지는 걸 참기 힘들다.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고, 또 그렇게 되지도 않겠지만 나라의 최고 어른인 대통령과 그의 '계보'(친이계) 국회의장이 불법적 돈 봉투 문제로 구설에 올랐다는 자체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뿐인가. 사실 대통령은 내곡동 사저에 얽힌 돈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고 국회의장은 비서의 '선관위 디도스 공격 자금' 문제로 망신을 사지 않았는가.
자신이 전혀 관여한 바 없다 해도 비서나 주변인의 불법이 드러났으면 조신, 근신해야 마땅한데 어디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
현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들이 돈 비리로 구속된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불법적 돈 흐름과 관련해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요즘 시중에서는 "이 정부 들어 발생한 친인척과 측근비리에 관련된 돈의 액수만 해도 몇백억원은 족히 될 것"이라는 말이 나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과로 위로해야
경기한파 속에 설 명절을 맞아 선물꾸러미 하나 사기도 버거운 서민들에겐 그야말로 복장이 터질 얘기다.
물가는 오르고, 쓸 돈은 없고, 자식들 취직은 안 되고, 빚은 늘어나는데 정치권에선 더러운 돈과 관련한 설만 풍풍 쏟아지니 분노가, 증오가 일지 않을 리 없다.
명절이 코앞이다. 증오로까지 악화된 정치 불신이 고스란히 명절 상머리에 오르고, 그래서 정치와 국민의 간극이 더욱 더 벌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대통령과 국회의장은 마음에서부터 우러난 사과로 국민들을 위로해주는 게 급선무다. 지난번에 "국민들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한 것보다는 훨씬 더 진정성이 실려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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