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몰락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탈석유시대, 쿠바가 다시 주목받는 까닭은?

지역내일 2012-01-20
박순철 칼럼니스트

이 책은 쿠바를 '몰락선진국'으로 규정한다. 선뜻 와 닿지 않는 표현이다. 몰락한 선진국이란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유한한 석유자원이 고갈하면 그 위에 세워진 현대 세계가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토대로 한다. 그 때 '부드럽게 몰락'하는 시범을 보이는 나라, 그 몰락의 선진국이 쿠바라고 지은이 요시다 타로는 생각한다.

세계의 석유 생산이 언젠가는 정점을 찍고 그 이후에는 내리막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는 건 자명하다. 다만 이 피크 오일의 시점이 언제인가가 의문일 따름이다. 이미 지났다는 주장마저 나온다. 또한 석유뿐 아니라 식량과 물 부족이 함께 닥치는 '퍼펙트 스톰'(최악의 폭풍)이 임박했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위기가 닥쳤을 때 세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유익한 시사를 제공하는 것이 이 책에 인용된 옥스퍼드대 요르크 프리드리히스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20세기에 석유 단절을 경험했던 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본다. 소련의 붕괴로 석유 수입이 끊기면서 농업생산이 대타격을 받았던 북한, 미국의 경제봉쇄를 군사적 침공으로 타개하려다 큰 대가를 치러야 했던 1940년대의 일본은 참담한 실패 사례였다.

그 세 번째 나라는 달랐다. 쿠바는 "북한과 쏙 빼닮은 상황에 직면하고 게다가 한 때 일본처럼 미국의 경제봉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잘 벗어났다." 그러면 쿠바는 어떻게 '부드러운 몰락'에 성공할 수 있었는가. 우선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쿠바가 처했던 절체절명의 상황을 살펴보자. 이는 요시다 타로가 10년쯤 전에 지은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에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동구권과의 국제 분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쿠바 경제는 석유 수입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서 공장의 80%가 문을 닫게 되고 실업자가 넘쳐났다. 1994년 말에는 교통도 70%가 마비됐다.

특히 식량 자급률이 40% 정도밖에 안 되는 처지여서 잘못하면 수많은 아사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바나나 카사바 따위로 겨우 연명하던 사람들의 평균 체중은 한 해 10kg 가까이 줄기도 했고, 영양실조로 일시적인 시각 장애나 운동기능 손상을 겪기도 했다.

농약의 98%, 화학비료의 94% 등 종자에서 트랙터와 연료 부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동구권에 의존하던 쿠바가 선택한 비상수단은 유기농업의 방법으로 '도시를 경작'하는 것이었다. "베란다에서도 빈 연유 깡통에 흙을 채워 채소를 길러" 먹었고, 콘크리트로 덮인 주차장이나 도로를 경작지로 이용하는 기술을 찾아내기도 했다.

쿠바는 살아남았다. 사회적 연대와 전통적인 지식의 부활에 의존했던 이 홀로서기의 과정을 통해 이 나라는 지속가능한 경제체제를 구축했다. 드디어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의 유일한 우등생으로까지 일어설 수 있었다. "지구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의료, 교육 등 인간개발지표를 충족시키는, 분명 이율배반적으로 보이는 이 두 기준을 충족시키는 나라는 지금 지구상에 단 한 나라밖에 없다."

그렇다고 쿠바가 지상낙원은 물론 아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서 세계가 보았던 굴러다니는 고물 같은 차, 검버섯이 핀 듯한 낡디 낡은 주택은 경제봉쇄 속에 겨우 살아남은 이 나라의 가시적 현실이다. 그 뿐 아니다. 눈에 덜 뜨이는 현실도 있다. "(소득)격차가 벌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고, 욕망을 추구하여 많은 쿠바인이 소비의 수렁에 빠져 있는 것도 현실이다."

쿠바에 대해 호의적인 관점을 견지해온 지은이가 이 책에서는 쿠바인들의 고충이나 불만을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한 점이 흥미롭다. 도쿄도 직원으로 오랜 세월을 지냈던 그는 세심하게 현장의 문제들을 들여다본다. 그 가운데 하나는 농업이다. 경제위기 시대에 놀라운 소생력을 보여주었던 농업은 21세기에 접어들어 실망스런 침체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낡고 좁은 공동주택에 여러 세대가 토끼장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주택문제, 중앙집권적 정치의 개혁 지체, 싼 임금과 이중 통화체제의 문제도 심각하다.

그러나 20세기말 자조의 길을 찾아냈던 쿠바는 21세기초의 도전에도 공동체에 토대를 둔 창의적인 실험들로 대처하고 있다. 관료체제의 병폐가 남아있는 농업부문에서는 지방 분권화 등 농업 개혁이 새롭게 일어나는 중이다. 여전히 건축자재를 마련하기 힘든 현실에서 주택 만들기에 가족 성원 모두와 공동체의 전문적 의견이 수렴되는 '공동체 건축가' 프로그램은 국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시 큰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생태신학자 토마스 베리는 19세기 말부터 21세기 중엽까지를 '석유의 막간시대'로 명명한 바 있었다. 인류가 석유의 대량소비로 산업시대의 풍요를 즐기면서 지구를 황폐화시켰던 이 시기는 결국 인류사의 '막간'일 따름인 것이다. 인류가 다시 석유가 사라지는 시대, 이른바 탈석유시대에 생존하려면 "석유에 기반을 두지 않는 생활 방식을 배우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론 "위기가 닥칠 때까지 그냥 기다릴 수는 없다."

그런데 봉쇄된 쿠바는 바로 석유가 끊길 지구의 예고편인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지원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월드워치연구소의 보고서는 이렇게 강조한다. "쿠바의 교훈은 세계적으로 중요하다. 생태학적으로 본다면 지구는 경제봉쇄에 처한 쿠바보다도 닫힌 체계(closed system)이다."

보고서는 이어 이렇게 묻는다. "에너지와 물질자원의 한계에 직면한 때에 쿠바는 기초적인 사회복지를 무시하지 않고 지속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대담한 정책을 선택했다. 우리는 앞으로 쿠바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FTA가 더욱 강화하는 국제적인 분업체제는 본격적인 위기와 패닉의 상황에서는 카드로 지은 집처럼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쿠바가 오랫동안 의존했던 코메콘 체제가 그러했다. 그렇다면 지구가 닫힌 체계라는 사실은 국제 분업체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우리에겐 특히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더욱이 에너지자급률 3%, 곡물자급률 27%로 요약되는 자원극빈국의 처지에서는.

서해문집

요시다 타로 지음

송제훈 옮김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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