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은 나라를 망쳤고 지금 대통령은 나라를 아예 팔아먹었다”
“아직도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북한에) 줘도 너무 주는 게 아닌가”
지난달 29일 대구 두류공원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구 집회 주변에서 시민들이 내 뱉은 넋두리다.
상인들은 장사가 안된다고 아우성들이다. 이러다가 모두 굶어 죽겠다고 소리를 지른다.
대구의 민심은 최악이다.
지역 중추기업의 잇단 도산과 뜀박질하는 물가는 민생을 더욱 압박하고 있고 의약분업사태, 정치 실종 등 꼬여만 가는 정국은 대구 지역의 반 DJ, 반 정부 정서를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은 서울에서 나름대로 해법 찾기에 나서고 있지만 지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한 야당 당직자는 “이대로 계속 가면 소요가 일어날 것 같습니다”라는 말로 지역민의 민심을 표현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구시의 한 공무원은 “대구 민심은 없습니다. 이제 한계점에 도달한 거죠. 다만 (대통령 임기가) 나갈 날이 더 가까이 왔기 때문에 참고 기다리는 겁니다”라고 털어 놓았다.
‘대구 민심은 위험수위다’
한나라당 대구시지부에 따르면 한나라당 대구집회에 4만 명 이상의 시민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부산집회때 보다 2배정도 많은 수치다.
대구시지부는 당에서 동원할 수 있는 청중이 최고 2만 명 정도로 봤을 때 나머지는 자발적으로 참석한 인원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여권에 대한 지역민심 이반 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전했다.
이날 집회는 한마디로 대정부 성토장이 돼 버렸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참석한 시민들이 카타르시스라도 느끼자는 거죠. 믿음이 가지는 않지만 야당 정치인들의 독설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려고 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또 (한나라당) 시지부에 한나라당이라도 좀 잘해라는 질타성 격려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믿을 건 당신들밖에 없다는 것이다.
심상찮다…여·야 공감
민주당 대구시지부도 이와 비슷하게 여론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실정을 비판하는 전화가 하루에도 몇 통이 걸려온다고 당 관계자는 전했다. “제발 좀 잘해 달라”것이 주 내용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지역 여론이 좋지 않다는 걸 계속 (중앙당에) 보고하고 있다”고 입을 뗀 뒤 “이러다가 대구·경북이 정말 왕따 당하는게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들 정도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쌓여 있다”고 전했다
지금 대구의 민심은‘국민의 정부’출범이후 지역감정 타파를 위한 각계 각층의 다양한 노력은 2년 반이 지난 지금 별무소득이 됐고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끈질긴 구애가 짝사랑에 지나지 않음을 웅변해 주고 있다.
정부와 여권의 짝사랑…받아들이지 않는 지역민심
국민의 정부는 출범 초부터 대구·경북에 많은 공을 들였다. 3차례에 걸친 대통령 방문, 현정권의 실세로 꼽히는 한화갑 부총재는 30여 회 대구를 찾아 민심을 추스리려 했다.
또 밀라노 프로젝트의 본격 추진과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 등 정부는 공을 들일만큼 들였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민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역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한 4.13 총선 결과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지역 유권자들은 야당인 한나라당에 몰표를 던졌다. 한나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DJ와 여당이 싫었기 때문이다.
총선 이후 중앙 정치권에서는 “대구·경북이 해도 너무 한다. 우리(정부와 여당)가 계속 공들일 필요가 있느냐”는 식의 볼멘 소리가 적잖게 흘러나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역경제의 몰락=정부 탓’왜곡된 논리 압도
국민정부 출범 이후 지역 경제의 근간이었던 주택·건설업계는 거의 몰락했다. 청구, 보성의 도산에 이어 마지막 보루였던 우방마저 무너졌다.
‘다리 하나만 걸치면 만사형통’이던 지난 정권때의 향수를 간직한 지역민들은 정치적 소외감에다 지역 상징기업이 무너졌다는 상실감에 빠져들었다.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정부 탓으로 돌리고 있다.
“정부가 조금만 더 잘해 주었으면 이 지경이 되지 않았다” 혹은 “호남기업이면 이대로 방치했겠는가”라는 식의 왜곡된 지역감정이 팽배하고 있다.
한나라당 대구시지부 정해용 직능부장은 “우방 등 지역 업체들의 잇따른 도산 책임은 해당 기업에 있지만, 받아들이는 시민 입장에서는 정권 때문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진실과 어긋난 오해가 증폭되고 확대 재생산되면서 실상이 왜곡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다 위천국가공단지정 문제 해결에 대한 현 정권의 거듭된 공언(空言), 정부 주요요직의 호남편중 인사, 의약분업에 따른 정부정책 실종, 가파른 물가 상승 등이 보태지면서 지역민심을 정부에 완전히 등을 돌려 버렸다.
돌아오지 못할 다리 건너버린 지역민심
지역 정가에서는 현재의 대구민심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단언한다. 더 이상 정치적으로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저 지켜보면서 민심악화가 확대되지 않도록 기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모 정당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한 뒤“국민의 정부는 지역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접근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동서화합 노력을 꼽을 수 있다”며 “이는 선언적 의미로 일부 계층에서는 통했을지 모르지만 민초들은 아직도 냉소적인 자세를 갖고 있으며 이번 정권 동안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15대 때와 달리 16대 의원들은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뛰어 다니지만 문제를 풀어내기가 쉽지 않아 답답할 뿐”이라며 “지역민들 사이에서 대구·경북은 이제 끝났다는 상실감이 너무 커져 버렸다”고 전했다.
민주당 대구시지부 관계자는 “기업 지원책, 경제 챙기기 등을 위한 발전협의회를 구성하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차기 대선을 노린 포석이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어려움을 밝혔다.
지방분권과 지역혁신이 필요하다
김형기 대구사회연구소 소장은 “현재의 지역민심은 실체가 불분명한데다 정치권에 오염, 너무 꼬여있다”라며 “이는 하나의 처방으로 치유될 수 없는 고질이다”고 진단했다.
김 소장은 “이에 대한 바탕에는 정확한 원인을 찾지 않은 채 단지 지역 경제가 굉장히 어렵다는 현실만 깔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역 경제와 사회가 발전해 갈 수 있다는 비전과 프로그램이 전무한 것도 지역 민심을 꼬이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김 소장은 근본적인 대안으로 지역발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가 절실하며 이는 중앙 및 지방정부, 시민의 공동 몫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과도한 중앙집중 해소와 지역 혁신 능력 제고 없이는 대구민심의 황폐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고 이는 구조적인 문제다”라며 “지방분권과 지역혁신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하루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선태 기자 yous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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