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례 언론인·번역가
오촌댁은 사람이 아니다. 3대쯤 전에 오촌 마을에서 원구마을로 시집오신 안주인의 호칭이 그대로 집이름이 된, 옛 관습에 따라 동네사람들에게 불렸던 집이름이다.
2010년 8월 17일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에서 164년이나 돼 아무도 사는 이 없이 소멸위기에 놓여있던 이 '오촌댁(梧村宅)'의 희한한 이건(移建) 고유제가 치러진다. 집이 앉아있던 땅의 토지신 등에게 "이제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오촌댁을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으로 옮겨가기 위해 집을 해체하기 시작하겠습니다"라고 고하는 제사를 모신 것이다.
이 책은 문화재급 전통한옥을 박물관이 있는 경복궁 안뜰로 모셔오기 위한 물색작업에서부터 오촌댁을 정해 서울로 데려오는 사전작업과 현장조사, 건물 해체작업과 집안에 있던 모든 살림살이와 자질구레한 물건까지 옮겨오는 일, 박물관 앞뜰 야외전시장에 다시 옮겨짓는 일을 총괄한 박선주 학예연구사의 치밀한 기록으로 탄생했다.
영덕의 고가(古家)를 서울 경복궁으로 모셔오다
책의 내용은 객관적인 보고문처럼 서술돼있지만 기록자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시선으로 '오촌댁'을 발견하고 서울까지 데려오는 모든 과정이 글과 칼러사진으로 꼼꼼히 그려져있다. 그 뿐 아니라 오촌댁의 해체와 이건의 공사과정, 집안에 있었거나 도중에 발견된 수백점의 물건 도록까지 앨범처럼 빼곡이 부록으로 붙여놓았다.
문화재관련 이론서나 도록의 모든 형식을 깨고 국립민속박물관 특유의 "모든 것을 담고 모든 것을 기록하는 생활사박물지"의 새 영역을 보여주는 점에서도 이 책은 파격이다.
소소한 작업과정과 설명을 제거하고 딱딱하게 기록하는 대신, 독자들이 저자를 따라다니듯, 함께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몇가지 주요 단락의 제목을 소개하자면 이런 식이다.
고향원구리= 15세기말 영양 남씨 11세손 남준이 들어와 살기시작한 이래 후손들의 이동과 다른 가문의 이주, 오촌댁 인근의 명문가의 학통과 지방문화재 가옥들 소개.
이렇게 생겼었다= 동향으로 앉은 'ㅁ자'형태의 오촌댁의 모습과 퇴락하여 한쪽이 무너졌으나 사랑채와 안채, 집 후면의 단단하고 의연한 모습이 '상경할만한' 후보로 보였다.
누가 어느방에 살았나= 오촌댁을 기증하는데 동의해준 후손 남병혁씨의 조부와 조모 오촌댁의 살림살이, 그의 모친과 누이들이 차지했던 안방, 자녀들 출가후 노부부가 지키던 안방, 대청에 들여놓은 가스레인지등 현대의 흔적…
첫만남= 2010년 3월 18일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에 들어섰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다…금방이라도 흘러내릴듯한 기와와 북측으로 심하게 기운 집채…10년가까이 아무도 살지않고 비어있었던 흔적이 역력하다…
기증을 하신단다 = 어려운 부탁을 드렸다. 오촌댁을 박물관에 기증해주시면 잘 관리해서 많은 관람객들에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여줄수있도록 하겠다고…선대의 집 기증은 쉬운일이 아니나 지금상태론 오래 버티지 못할것 같다며 수락…이웃일가들은 말한다. "매일 눈뜨면 보이던 집이 없어진다니 허전한 마음이지만 서울, 그것도 경복궁 안으로 들어간다니 우리보다 출세했다"고.
집을 채우고 있던 것을 옮기다= 오촌댁의 산역사, 시간의 흔적인 가구, 이부자리, 그릇, 고무신, 옹기, 호미등 농기구, 나중에 사들인 플라스틱 손전등과 쓰레받기 등 백여년에 걸친 물건들을 옮기고 일일이 사진첩까지 만들어 실었다.
박물관 마당에 집을 다시 세우다= 해체의 역순으로 진행. 순서는 가설공사, 기단쌓기, 초석놓기, 기둥동바리및 가구 재조립, 연목 평고대 박공부 조립, 지붕공사, 미장공사, 기단공사, 청소및 정리
한옥의 배움터로 사람들의 사랑 받는 오촌댁
옮기는 과정에서 백년이 넘은 부식된 기와의 절반가량이 손실되었다. 한옥 공사의 특성상 기와는 미리 얹은 부분을 밟으며 작업을 이어가야 하는데 체중을 견디지 못해 부서진 것들은 다른 한옥의 철거과정에서 나온 구와를 얻어 보충해가며 지었다. 결국 영덕의 오촌댁은 삼청동 국립민속박물관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관람객을 맞을 수 있는 위치로 날렵하게 날아왔다. 집을 만들어가는 축제인 상량식과 성주 안택굿도 옛 격식에 맞춰 치렀고 해체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에서 건립연대가 서기 1848년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2011년엔 이제는 텃밭이 돼버린 오촌댁의 옛 집터에 박물관에서 마련해준 기록표지판이 세워졌다.
오촌댁의 옛모습과 경복궁 안으로 옮겨진후의 말쑥한 새단장 모습 사진과 함께 내력을 설명하는 글이 새겨졌다.
책의 후반 "가족과 이웃을 모시다" 편에는 오촌댁이 박물관마당에 자리를 잡고 서울에서의 첫 겨울을 잘 견딘 설경사진과 함께 이 집에 삶과 추억이 묻혀있는 남씨 일가족과 서울 간다던 오촌댁이 정말 잘 갔는지 궁금해 하는 마을 사람들의 초청행사가 실려있다.
출가한 기증자의 누이들은 오랜만에 마주하는 고향집에서 눈물을 흘리고 마을어른들은 "아니 이게 그 집이야"하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제 오촌댁은 그림이나 설명이 아니라 '한옥에서 한옥을 배우는' 어린이박물관의 학습장소로, 박물관 탐방객들이 대청마루에 걸터 앉거나 미음자 안마당과 안방, 사랑방에 들어가서 직접 만지고 느끼는 장소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한옥마을 탐방객이 늘고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는 있다. 하지만 서울의 한옥들 중엔 전통한옥과 거리가 먼 50~60년대 주택사업자들의 건물들이 많고 대청마루에 전기온돌 패널을 깔고 수세식 화장실과 싱크대를 넣거나 침대와 소파를 들여 외국인들을 받는 광경을 자주 보게된다.
보존을 위한 한옥과 살기위한 한옥이 따로 가고 있는 판에 오촌댁에 들어앉아 편안한 얼굴로 쉬고 있는 관람객들은 진짜 한옥 살리기의 바람직한 방향을 말해주는듯 하다. 해체와 이건, 복구와 보강의 작업인원, 작업일지까지 깨알같이 적어놓은 이 책은 그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박선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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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촌댁은 사람이 아니다. 3대쯤 전에 오촌 마을에서 원구마을로 시집오신 안주인의 호칭이 그대로 집이름이 된, 옛 관습에 따라 동네사람들에게 불렸던 집이름이다.
2010년 8월 17일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에서 164년이나 돼 아무도 사는 이 없이 소멸위기에 놓여있던 이 '오촌댁(梧村宅)'의 희한한 이건(移建) 고유제가 치러진다. 집이 앉아있던 땅의 토지신 등에게 "이제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오촌댁을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으로 옮겨가기 위해 집을 해체하기 시작하겠습니다"라고 고하는 제사를 모신 것이다.
이 책은 문화재급 전통한옥을 박물관이 있는 경복궁 안뜰로 모셔오기 위한 물색작업에서부터 오촌댁을 정해 서울로 데려오는 사전작업과 현장조사, 건물 해체작업과 집안에 있던 모든 살림살이와 자질구레한 물건까지 옮겨오는 일, 박물관 앞뜰 야외전시장에 다시 옮겨짓는 일을 총괄한 박선주 학예연구사의 치밀한 기록으로 탄생했다.
영덕의 고가(古家)를 서울 경복궁으로 모셔오다
책의 내용은 객관적인 보고문처럼 서술돼있지만 기록자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시선으로 '오촌댁'을 발견하고 서울까지 데려오는 모든 과정이 글과 칼러사진으로 꼼꼼히 그려져있다. 그 뿐 아니라 오촌댁의 해체와 이건의 공사과정, 집안에 있었거나 도중에 발견된 수백점의 물건 도록까지 앨범처럼 빼곡이 부록으로 붙여놓았다.
문화재관련 이론서나 도록의 모든 형식을 깨고 국립민속박물관 특유의 "모든 것을 담고 모든 것을 기록하는 생활사박물지"의 새 영역을 보여주는 점에서도 이 책은 파격이다.
소소한 작업과정과 설명을 제거하고 딱딱하게 기록하는 대신, 독자들이 저자를 따라다니듯, 함께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몇가지 주요 단락의 제목을 소개하자면 이런 식이다.
고향원구리= 15세기말 영양 남씨 11세손 남준이 들어와 살기시작한 이래 후손들의 이동과 다른 가문의 이주, 오촌댁 인근의 명문가의 학통과 지방문화재 가옥들 소개.
이렇게 생겼었다= 동향으로 앉은 'ㅁ자'형태의 오촌댁의 모습과 퇴락하여 한쪽이 무너졌으나 사랑채와 안채, 집 후면의 단단하고 의연한 모습이 '상경할만한' 후보로 보였다.
누가 어느방에 살았나= 오촌댁을 기증하는데 동의해준 후손 남병혁씨의 조부와 조모 오촌댁의 살림살이, 그의 모친과 누이들이 차지했던 안방, 자녀들 출가후 노부부가 지키던 안방, 대청에 들여놓은 가스레인지등 현대의 흔적…
첫만남= 2010년 3월 18일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에 들어섰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다…금방이라도 흘러내릴듯한 기와와 북측으로 심하게 기운 집채…10년가까이 아무도 살지않고 비어있었던 흔적이 역력하다…
기증을 하신단다 = 어려운 부탁을 드렸다. 오촌댁을 박물관에 기증해주시면 잘 관리해서 많은 관람객들에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여줄수있도록 하겠다고…선대의 집 기증은 쉬운일이 아니나 지금상태론 오래 버티지 못할것 같다며 수락…이웃일가들은 말한다. "매일 눈뜨면 보이던 집이 없어진다니 허전한 마음이지만 서울, 그것도 경복궁 안으로 들어간다니 우리보다 출세했다"고.
집을 채우고 있던 것을 옮기다= 오촌댁의 산역사, 시간의 흔적인 가구, 이부자리, 그릇, 고무신, 옹기, 호미등 농기구, 나중에 사들인 플라스틱 손전등과 쓰레받기 등 백여년에 걸친 물건들을 옮기고 일일이 사진첩까지 만들어 실었다.
박물관 마당에 집을 다시 세우다= 해체의 역순으로 진행. 순서는 가설공사, 기단쌓기, 초석놓기, 기둥동바리및 가구 재조립, 연목 평고대 박공부 조립, 지붕공사, 미장공사, 기단공사, 청소및 정리
한옥의 배움터로 사람들의 사랑 받는 오촌댁
옮기는 과정에서 백년이 넘은 부식된 기와의 절반가량이 손실되었다. 한옥 공사의 특성상 기와는 미리 얹은 부분을 밟으며 작업을 이어가야 하는데 체중을 견디지 못해 부서진 것들은 다른 한옥의 철거과정에서 나온 구와를 얻어 보충해가며 지었다. 결국 영덕의 오촌댁은 삼청동 국립민속박물관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관람객을 맞을 수 있는 위치로 날렵하게 날아왔다. 집을 만들어가는 축제인 상량식과 성주 안택굿도 옛 격식에 맞춰 치렀고 해체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에서 건립연대가 서기 1848년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2011년엔 이제는 텃밭이 돼버린 오촌댁의 옛 집터에 박물관에서 마련해준 기록표지판이 세워졌다.
오촌댁의 옛모습과 경복궁 안으로 옮겨진후의 말쑥한 새단장 모습 사진과 함께 내력을 설명하는 글이 새겨졌다.
책의 후반 "가족과 이웃을 모시다" 편에는 오촌댁이 박물관마당에 자리를 잡고 서울에서의 첫 겨울을 잘 견딘 설경사진과 함께 이 집에 삶과 추억이 묻혀있는 남씨 일가족과 서울 간다던 오촌댁이 정말 잘 갔는지 궁금해 하는 마을 사람들의 초청행사가 실려있다.
출가한 기증자의 누이들은 오랜만에 마주하는 고향집에서 눈물을 흘리고 마을어른들은 "아니 이게 그 집이야"하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제 오촌댁은 그림이나 설명이 아니라 '한옥에서 한옥을 배우는' 어린이박물관의 학습장소로, 박물관 탐방객들이 대청마루에 걸터 앉거나 미음자 안마당과 안방, 사랑방에 들어가서 직접 만지고 느끼는 장소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한옥마을 탐방객이 늘고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는 있다. 하지만 서울의 한옥들 중엔 전통한옥과 거리가 먼 50~60년대 주택사업자들의 건물들이 많고 대청마루에 전기온돌 패널을 깔고 수세식 화장실과 싱크대를 넣거나 침대와 소파를 들여 외국인들을 받는 광경을 자주 보게된다.
보존을 위한 한옥과 살기위한 한옥이 따로 가고 있는 판에 오촌댁에 들어앉아 편안한 얼굴로 쉬고 있는 관람객들은 진짜 한옥 살리기의 바람직한 방향을 말해주는듯 하다. 해체와 이건, 복구와 보강의 작업인원, 작업일지까지 깨알같이 적어놓은 이 책은 그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박선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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