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가 추천하는 오늘의 책 │삶을 바꾼 만남]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삶이 변한다

지역내일 2012-02-03
임혜은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잠을 자다 달게 마신 물이 해골바가지에 담긴 더러운 물이었음을 알고 깨달음을 얻어 당나라 유학을 포기한 원효대사의 일화는, 우연한 일로 삶이 바뀐 가장 유명한 이야기이다. 삶이 바뀌는 계기는 이처럼 사소한 사건이 될 수도 있고 고전 속 주인공과의 만남이 될 수도 있으며 김중식 시인의 시처럼 '서로 비껴나는 지하철 창문에 비친 한 여인의 첫인상'과 같은 찰나의 영상이 될 수도 있다.

18세기 조선시대 지식인을 비롯해 조선 후기에 관해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정민 교수는 스승 다산 정약용과 제자 황상의 운명적인 만남을 소개했다.

전남 강진에 유배 온 다산 정약용과 그 고을 아전의 아들인 15세의 황상이 스승과 제자로 만났다. 제자는 스스로를 둔재라 여겼고 스승은 제자가 어째서 학문에 가장 적합한 인물인지 일깨워준다. 이때의 일을 황상은 60년이 지난 일흔다섯 살 때 [임술기(壬戌記)]란 글에서 스승이 위의 문답을 정리하여 써준 글을 받고 난 이후 변모한 자신의 삶을 술회한다. 이것이 그의 삶을 바꾼 삼근계(三勤戒)이다.

"제게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둔한 것이요, 둘째는 막힌 것이며,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 "대저 둔한데도 들이파는 사람은 그 구멍이 넓어진다. 막혔다가 터지면 그 흐름이 성대해지지, 답답한데도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뚫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틔우는 것은 어찌하나?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이때 받은 가르침은 황상의 일생을 관통하여 백성의 고혈을 짜내야 하는 아전의 운명을 떨쳐내고, 일속산방(一粟山房)에서 학문에 전념하는 유인(幽人)의 삶을 선택하게 한다.

정약용은 복락에는 권력을 얻어 거침없이 살 수 있는 열복(熱福)과 자연에 순응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청복(淸福)이 있으며, 이 두 가지 중에 어떤 복을 택할지는 성품에 따른다고 했다. 황상은 정약용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아마 청복(淸福)을 좇아 살고자 했을 것이다. 황상의 가장 큰 복은 성품대로 살아갈 수 있는 정확한 길을 알려주는 스승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만남이 이뤄낸 삶의 변화가 놀랍다.

제자는 없고 학생만 있다는 저자의 탄식처럼 요즈음 학교 교육의 문제는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로 해결의 실마리를 얻었으면 싶다.

이 책의 또 하나의 미덕은 꼼꼼한 자료 수집과 연구를 바탕으로 정약용의 유배생활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직조해냄으로써, 기중기의 발명자이자 목민심서 저술 등의 업적을 쌓은 사람으로만 떠올리게 되는 정약용의 맨 얼굴을 드러내 주었다는 것이다. 스승으로서, 아버지로서, 문인이자 실학자로서의 면모, 그리고 유배지에서 느낀 고독과 그리움, 고단함, 인간적인 모습을 문학적인 문체로 그려냈다. 무엇보다 정약용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18년 유배기간 동안 500여권의 저작을 저술했고 제자들은 조선 팔도에서 최고의 학술 집단이 되었다.

어느 해 3월, 머뭇거리며 들어선 동아리방에서 처음 대면한 것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그 삶이 변한다'는 문장이었다. 꿈꾸었던 것만큼 삶이 많이 변하지는 않았지만 사람과의 만남이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힘이라는 믿음은 그대로다.

이러저러한 건조한 관계들을 유지하는 일에 지쳐 있는 사람들은 정약용과 황상의 사제지간을 넘어서는 지극한 마음, 그 아들 정학연과 평생에 걸쳐 쌓아가는 우정을 보며 새로운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언젠가 생의 반전을 도모할 수 있는 만남이 한 번쯤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꿈을.

문학동네

정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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