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에도 '자격'이 필요하다
300대 1 경쟁률 뚫고 물안골 정착 … "준비한 사람이 성공확률 높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선진국들은 1970년대에 '역도시화 현상'이 나타났다. 산업혁명기 이후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던 인구가 거꾸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동한 것이다. 미국도 대도시보다 지역 카운티의 인구증가률이 더 높았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영국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이어지지 못했다. 한국사회도 최근 귀농·귀촌바람이 불고 있다. 국내에서 일고 있는 이 바람이 영국처럼 꾸준히 이어지는 행렬이 될지 다른 선진국처럼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이 될 것인지 짚어본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새 바람이 불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부귀리 물안마을에 사는 박만덕(50)씨는 지난 2009년 7월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귀농에 성공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생활하던 박씨는 당시 한 방송사에서 마련한 귀농이야기 프로그램에서 물안마을을 본 후 귀농신청을 했다.
박씨와 같이 물안골에 귀농하겠다고 신청한 사람은 2000여명에 이르렀고, 마을은 수용가능한 6가구를 뽑기 위해 귀농신청자를 대상으로 면접을 실시했다.
박씨를 포함, 이때 귀농했던 6가구는 지금까지 한 가구도 이탈하지 않고 물안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다.
◆농촌에서 마을에 적합한 사람 선발 = 당시 마을 이장으로 물안골을 이끌고 있던 신수현(48)씨는 "귀농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동네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등을 알기 위해 면접을 봤다"며 "계획이 잘 서있고, 우리 마을에 적합한 사람을 선별했다"고 말했다. 신씨도 1995년 서울에서 귀농했다.
지금 농촌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도시에서 이 일 저 일 하다 실패한 후 '농사나 지으러 가야지' 생각하면 착각이다.
농사지을 땅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농업기술도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배워야 한다. 고된 노동을 견뎌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던 주민들은 새로 들어오는 이방인을 반갑게만 맞아주지 않는다. 충북 괴산의 한 농업인은 "도시사람이 귀농한다는데, 반대"라며 "그들은 공동 일을 잘 하지 않고 골치 아프다"고 말했다. 마을에 필요한 사람을 선별해서 받아들이려는 경향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귀농·귀촌에도 자격이 필요한 시대로 변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년(2011년 1월~12월)간 도시지역에서 농어촌지역(읍·면)으로 귀농·귀촌한 가구는 1만503호다. 2010년 4067가구보다 158% 증가했다. 인구는 2만3415명으로 귀농·귀촌 가구당 평균 2.2명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귀농·귀촌 담당 공무원을 통해 전수 조사한 결과다.
귀농·귀촌가구는 2001년 880가구에서 2004년 1302가구, 2007년 2348가구로 완만하게 늘다가 2009년 4080가구, 2010년 4067가구에서 지난해 1만가구를 돌파했다.
통계는 우리사회의 지각변동을 보여주고 있다. 귀농·귀촌 연령대는 50대(33.7%), 40대(25.5%)가 60대(18.7%)를 압도적으로 앞섰다. 30대도 13.7%다. 우리 사회의 주력 활동층이 농촌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귀농 전 직업은 자영업(27.5%), 사무직(19.3%), 생산직(8.8%), 영업(3.3%), 공무원(3.1%) 등이었다. 무직은 5.6%로 나타났다.
농사 지으러 가는 귀농과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귀촌이 구분되는 경향도 나타난다. 농지면적이 넓고 농업여건이 좋은 전남도의 경우 조사가구의 84.4%가 농업을 위해 이주했다. 반면 서울에 인접한 강원도의 경우 전원생활을 위해 이동한 가구가 70.3%에 달했다.
◆정부, 귀농·귀촌 적극 지원 = 농식품부는 지난 24일 '농어촌과 도시가 상생하는 2012년 귀농·귀촌 세부추진 대책'을 발표하고 이들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해 귀농·귀촌가구가 급증한 것은 1955년에서 19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맞물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전후에 나타난 '생계형 귀농'과 달리 농촌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새롭다. 농촌이 활력을 되찾으면 국토균형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농식품부는 귀농(귀어)인을 위해서는 농지구입, 시설건립, (수산)양식장구입 등에 필요한 자금을 금리 3%, 5년 거치 10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융자해준다. 가구당 2억4000만원(농어업기반 2억원, 주택 4000만원)이다. 농어업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는 데 필요한 실습비도 매월 60만원까지 10개월 간 지원한다. 귀농일로부터 3년 이내에 구입한 농지에 대해 취득세도 50% 할인한다.
농촌진흥청에 '귀농·귀촌 종합센터'를 설치해 귀농·귀촌 희망자들이 정부나 지자체, 각급 단체에서 시행하는 모든 정보를 한꺼번에 취득하고 상담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지자체에도 종합센터를 설치해 현장애로를 상담하고 선도농가를 멘토로 연결해주기로 했다.
농진청 최윤지 박사는 "귀농은 시작도 끝도 공부"라며 "장밋빛 환상만 꿈꾸기보다 적극적 자세로 농촌 현실을 파악하고 이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귀촌을 귀농과 구분해서 지원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이동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은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에는 농사만 있는 게 아니다"며 "여행사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은 귀촌해서 농사짓기보다 마을의 농촌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해 도시의 여행사와 연결해 관광객도 유치하고 농산물 판로도 개척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인구감소로 보건소, 학교 등이 사라지는 농촌에 다양한 기능을 가진 도시인들이 내려와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사회 서비스도 활성화될 수 있다.
서규용 농식품부 장관은 "올해 농식품부 대표브랜드로 귀농·귀촌정책을 추진하고 이를 직접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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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대 1 경쟁률 뚫고 물안골 정착 … "준비한 사람이 성공확률 높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선진국들은 1970년대에 '역도시화 현상'이 나타났다. 산업혁명기 이후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던 인구가 거꾸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동한 것이다. 미국도 대도시보다 지역 카운티의 인구증가률이 더 높았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영국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이어지지 못했다. 한국사회도 최근 귀농·귀촌바람이 불고 있다. 국내에서 일고 있는 이 바람이 영국처럼 꾸준히 이어지는 행렬이 될지 다른 선진국처럼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이 될 것인지 짚어본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새 바람이 불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부귀리 물안마을에 사는 박만덕(50)씨는 지난 2009년 7월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귀농에 성공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생활하던 박씨는 당시 한 방송사에서 마련한 귀농이야기 프로그램에서 물안마을을 본 후 귀농신청을 했다.
박씨와 같이 물안골에 귀농하겠다고 신청한 사람은 2000여명에 이르렀고, 마을은 수용가능한 6가구를 뽑기 위해 귀농신청자를 대상으로 면접을 실시했다.
박씨를 포함, 이때 귀농했던 6가구는 지금까지 한 가구도 이탈하지 않고 물안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다.
◆농촌에서 마을에 적합한 사람 선발 = 당시 마을 이장으로 물안골을 이끌고 있던 신수현(48)씨는 "귀농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동네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등을 알기 위해 면접을 봤다"며 "계획이 잘 서있고, 우리 마을에 적합한 사람을 선별했다"고 말했다. 신씨도 1995년 서울에서 귀농했다.
지금 농촌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도시에서 이 일 저 일 하다 실패한 후 '농사나 지으러 가야지' 생각하면 착각이다.
농사지을 땅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농업기술도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배워야 한다. 고된 노동을 견뎌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던 주민들은 새로 들어오는 이방인을 반갑게만 맞아주지 않는다. 충북 괴산의 한 농업인은 "도시사람이 귀농한다는데, 반대"라며 "그들은 공동 일을 잘 하지 않고 골치 아프다"고 말했다. 마을에 필요한 사람을 선별해서 받아들이려는 경향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귀농·귀촌에도 자격이 필요한 시대로 변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년(2011년 1월~12월)간 도시지역에서 농어촌지역(읍·면)으로 귀농·귀촌한 가구는 1만503호다. 2010년 4067가구보다 158% 증가했다. 인구는 2만3415명으로 귀농·귀촌 가구당 평균 2.2명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귀농·귀촌 담당 공무원을 통해 전수 조사한 결과다.
귀농·귀촌가구는 2001년 880가구에서 2004년 1302가구, 2007년 2348가구로 완만하게 늘다가 2009년 4080가구, 2010년 4067가구에서 지난해 1만가구를 돌파했다.
통계는 우리사회의 지각변동을 보여주고 있다. 귀농·귀촌 연령대는 50대(33.7%), 40대(25.5%)가 60대(18.7%)를 압도적으로 앞섰다. 30대도 13.7%다. 우리 사회의 주력 활동층이 농촌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귀농 전 직업은 자영업(27.5%), 사무직(19.3%), 생산직(8.8%), 영업(3.3%), 공무원(3.1%) 등이었다. 무직은 5.6%로 나타났다.
농사 지으러 가는 귀농과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귀촌이 구분되는 경향도 나타난다. 농지면적이 넓고 농업여건이 좋은 전남도의 경우 조사가구의 84.4%가 농업을 위해 이주했다. 반면 서울에 인접한 강원도의 경우 전원생활을 위해 이동한 가구가 70.3%에 달했다.
◆정부, 귀농·귀촌 적극 지원 = 농식품부는 지난 24일 '농어촌과 도시가 상생하는 2012년 귀농·귀촌 세부추진 대책'을 발표하고 이들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해 귀농·귀촌가구가 급증한 것은 1955년에서 19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맞물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전후에 나타난 '생계형 귀농'과 달리 농촌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새롭다. 농촌이 활력을 되찾으면 국토균형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농식품부는 귀농(귀어)인을 위해서는 농지구입, 시설건립, (수산)양식장구입 등에 필요한 자금을 금리 3%, 5년 거치 10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융자해준다. 가구당 2억4000만원(농어업기반 2억원, 주택 4000만원)이다. 농어업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는 데 필요한 실습비도 매월 60만원까지 10개월 간 지원한다. 귀농일로부터 3년 이내에 구입한 농지에 대해 취득세도 50% 할인한다.
농촌진흥청에 '귀농·귀촌 종합센터'를 설치해 귀농·귀촌 희망자들이 정부나 지자체, 각급 단체에서 시행하는 모든 정보를 한꺼번에 취득하고 상담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지자체에도 종합센터를 설치해 현장애로를 상담하고 선도농가를 멘토로 연결해주기로 했다.
농진청 최윤지 박사는 "귀농은 시작도 끝도 공부"라며 "장밋빛 환상만 꿈꾸기보다 적극적 자세로 농촌 현실을 파악하고 이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귀촌을 귀농과 구분해서 지원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이동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은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에는 농사만 있는 게 아니다"며 "여행사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은 귀촌해서 농사짓기보다 마을의 농촌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해 도시의 여행사와 연결해 관광객도 유치하고 농산물 판로도 개척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인구감소로 보건소, 학교 등이 사라지는 농촌에 다양한 기능을 가진 도시인들이 내려와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사회 서비스도 활성화될 수 있다.
서규용 농식품부 장관은 "올해 농식품부 대표브랜드로 귀농·귀촌정책을 추진하고 이를 직접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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