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례 언론인, 번역가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90세 가까이 천수를 누리셨으니 호상이라고 문상객들은 입을 모았다. 몇가지 노인성 질환이 있었으나 비교적 잘 지내시다가 갑자기 호흡곤란과 함께 몸의 상태가 나빠졌다.
급히 종합병원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에 입원후 상태가 호전되어 일반병실로 옮겼다가 다시 악화, 중환자실로 들어간 이틀 뒤 세상을 떴다.
기한의 차이가 있을 뿐, 고령층의 사망에서는 가장 흔한 과정이다. 자녀들이 있어도 임종대기와 숨을 거두는 순간이 일치하지 않아서 중환자실에서 혼자 임종을 맞는 이들이 꽤 많다고 한다.
훌륭한 큰 병원의 좋은 시설에서 최후를 맞았으니 그만 못한 노인들에 비해 운이 좋으신 편인가. 나는 아무래도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다. 낯선 방, 생소한 기계장치들 속에서 자녀들 얼굴도 못보고 공포와 외로움속에서 혼자 떠나는 잔인한 고독사(孤獨死)다. 독거노인, 기러기 아빠, 고달픈 청년 실업자들의 나홀로 죽음도 이제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얼마전 일본 도쿄 부근 사이타마의 연립주택에서 60대부부와 30대 아들이 숨진 지 두달만에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달러나 되는 복지대국 일본에서 이들은 모두 앙상하게 야윈 아사체로 발견되어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아직 일할수 있는 나이의 부부와 한창 나이의 아들이 한꺼번에 굶어 죽은 것은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한국사회 시각으로는 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일본정부 통계에 따르면 1981~2010년까지 30년간 무려 1331명이 굶어 죽었고 아사자는 해마다 늘어 2003년엔 93명에 이르렀다. 특히 50대 남자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입에 밥을 넣는 문제는 '사회 문제'
한국에서도 지병에 시달리며 혼자 살던 여성 방송작가가 숨진 채 발견되자 큰 충격과 논란이 있었지만 그 때 뿐이었다. 고정수입이 없는 숱한 이 땅의 젊은이나 은퇴자들처럼 그녀도 생존을 위해 할만큼 했다. 셋집 주인에게 쌀과 김치를 달라는 쪽지를 보내는등 연명을 위한 노력도 했다. 하지만 사후에는 여론의 동정도 받았지만 일부 지식인들은 좀더 적극적으로 일거리와 먹을 것을 구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나홀로 작가의 나태함(?)과 자존심 탓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입에 밥을 넣는 문제를 밑바닥까지 파내려가면 그것 자체가 개인의 사회성 여부와 무관한 '사회문제'임을 알 수 있다.
'소설 자본론'으로도 불리는 잭 런던의 작품 '강철군화'에서 주인공인 노동운동의 영웅 에버하드는 죽도록 일만 하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아이들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기 위해' 온갖 비행으로 일그러지고 망가지던 모습을 떠올리며 분발한다.
결국 호구지책-생계수단- 생존의욕은 한줄에 달린 말들이며 극빈상태의 사회적 박탈감-무기력-분노-공황장애는 입에 밥넣는 일 마저 포기시켜 고립과 죽음을 부르게 된다.
그러니 다수의 입에 들어갈 밥을 빼앗아 기를 쓰고 소수의 부(富)를 부풀려주는 위정자의 행동은 범죄에 가깝다. 아사와 고독사는 소리없는 사회적 타살의 산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먹고 사는 문제, 입에 밥을 넣는 문제의 해결은 빈곤층 개인들의 주체적 문제가 아니라 '입에 밥을 넣어주는' 정치인들의 공익적 인식과 복지정책의 실현여부에 달려 있다.
매년 1만5000명이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는 일본의 사회복지는 지금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공약으로 걸고 있는 것들의 상당부분이 실현돼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한국도 1인가구 수가 가파르게 증가해서 2010년엔 414만 가구( 전체의 23.9%)에 이르렀고 노후대책이나 복지수준은 일본보다 훨씬 열악하다.
사회안전망은 나라의 책임
베이비붐 세대 은퇴후 아사와 고독사가 급증한 일본의 전례처럼, 아직 활동할 나이에 은퇴를 한 뒤 국민연금을 받기까지의 소득공백기에 남의 도움을 청하지도, 받지도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 아사와 고독사가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모에 기대 사는 청년층의 동반몰락도 더 늘어날 것이다. 국가는 아이와 노부모를 , 국민을 굶기지 않고 입에 밥을 넣어주는 따뜻한 복지에 더 치중해야 한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가 아니라, 오직 나라만이 할 수 있다. 사회안전망 확충과 일자리 창출이 그것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90세 가까이 천수를 누리셨으니 호상이라고 문상객들은 입을 모았다. 몇가지 노인성 질환이 있었으나 비교적 잘 지내시다가 갑자기 호흡곤란과 함께 몸의 상태가 나빠졌다.
급히 종합병원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에 입원후 상태가 호전되어 일반병실로 옮겼다가 다시 악화, 중환자실로 들어간 이틀 뒤 세상을 떴다.
기한의 차이가 있을 뿐, 고령층의 사망에서는 가장 흔한 과정이다. 자녀들이 있어도 임종대기와 숨을 거두는 순간이 일치하지 않아서 중환자실에서 혼자 임종을 맞는 이들이 꽤 많다고 한다.
훌륭한 큰 병원의 좋은 시설에서 최후를 맞았으니 그만 못한 노인들에 비해 운이 좋으신 편인가. 나는 아무래도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다. 낯선 방, 생소한 기계장치들 속에서 자녀들 얼굴도 못보고 공포와 외로움속에서 혼자 떠나는 잔인한 고독사(孤獨死)다. 독거노인, 기러기 아빠, 고달픈 청년 실업자들의 나홀로 죽음도 이제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얼마전 일본 도쿄 부근 사이타마의 연립주택에서 60대부부와 30대 아들이 숨진 지 두달만에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달러나 되는 복지대국 일본에서 이들은 모두 앙상하게 야윈 아사체로 발견되어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아직 일할수 있는 나이의 부부와 한창 나이의 아들이 한꺼번에 굶어 죽은 것은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한국사회 시각으로는 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일본정부 통계에 따르면 1981~2010년까지 30년간 무려 1331명이 굶어 죽었고 아사자는 해마다 늘어 2003년엔 93명에 이르렀다. 특히 50대 남자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입에 밥을 넣는 문제는 '사회 문제'
한국에서도 지병에 시달리며 혼자 살던 여성 방송작가가 숨진 채 발견되자 큰 충격과 논란이 있었지만 그 때 뿐이었다. 고정수입이 없는 숱한 이 땅의 젊은이나 은퇴자들처럼 그녀도 생존을 위해 할만큼 했다. 셋집 주인에게 쌀과 김치를 달라는 쪽지를 보내는등 연명을 위한 노력도 했다. 하지만 사후에는 여론의 동정도 받았지만 일부 지식인들은 좀더 적극적으로 일거리와 먹을 것을 구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나홀로 작가의 나태함(?)과 자존심 탓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입에 밥을 넣는 문제를 밑바닥까지 파내려가면 그것 자체가 개인의 사회성 여부와 무관한 '사회문제'임을 알 수 있다.
'소설 자본론'으로도 불리는 잭 런던의 작품 '강철군화'에서 주인공인 노동운동의 영웅 에버하드는 죽도록 일만 하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아이들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기 위해' 온갖 비행으로 일그러지고 망가지던 모습을 떠올리며 분발한다.
결국 호구지책-생계수단- 생존의욕은 한줄에 달린 말들이며 극빈상태의 사회적 박탈감-무기력-분노-공황장애는 입에 밥넣는 일 마저 포기시켜 고립과 죽음을 부르게 된다.
그러니 다수의 입에 들어갈 밥을 빼앗아 기를 쓰고 소수의 부(富)를 부풀려주는 위정자의 행동은 범죄에 가깝다. 아사와 고독사는 소리없는 사회적 타살의 산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먹고 사는 문제, 입에 밥을 넣는 문제의 해결은 빈곤층 개인들의 주체적 문제가 아니라 '입에 밥을 넣어주는' 정치인들의 공익적 인식과 복지정책의 실현여부에 달려 있다.
매년 1만5000명이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는 일본의 사회복지는 지금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공약으로 걸고 있는 것들의 상당부분이 실현돼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한국도 1인가구 수가 가파르게 증가해서 2010년엔 414만 가구( 전체의 23.9%)에 이르렀고 노후대책이나 복지수준은 일본보다 훨씬 열악하다.
사회안전망은 나라의 책임
베이비붐 세대 은퇴후 아사와 고독사가 급증한 일본의 전례처럼, 아직 활동할 나이에 은퇴를 한 뒤 국민연금을 받기까지의 소득공백기에 남의 도움을 청하지도, 받지도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 아사와 고독사가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모에 기대 사는 청년층의 동반몰락도 더 늘어날 것이다. 국가는 아이와 노부모를 , 국민을 굶기지 않고 입에 밥을 넣어주는 따뜻한 복지에 더 치중해야 한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가 아니라, 오직 나라만이 할 수 있다. 사회안전망 확충과 일자리 창출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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