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 정치개혁 역설 … 민주화 논의 다시 불붙인다
공청단 왕양 '광둥모델' 뜨고, '충칭모델' 잠복
태자당 류샤오치-후야오방 아들 논의에 가세
지난 5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중국의 의회) 개막식의 국정보고에서 정치개혁을 강도 높게 역설했다. 원 총리는 "법에 의한 민주적 선거, 민주적 정책 결정, 민주적 관리, 민주적 감독을 실행하고 인민의 알 권리, 참여권, 의사 표현권과 감독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 총리는 이날 보고에서 정치개혁을 포함해 곳곳에서 '개혁'이란 단어를 이전 연설보다 많은 60여 차례 언급했다.
원 총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개혁을 역설해 왔고 종종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010년 8월 말 '선전경제특구 수립 30주년'을 앞두고 선전을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선전시 박물관을 찾아가 덩샤오핑의 동상에 헌화하고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정치체제 개혁 보장이 없으면 경제체제 개혁의 성과도 잃어버리게 된다." "개혁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는 길밖에 없다."
◆원로그룹, 장쩌민 상하이방에 화살 = 1986년 6월 덩샤오핑이 "경제만 개혁하고 정치를 개혁하지 않으면 경제개혁도 통할 수 없다"고 선언한 발언을 환기시킨 것이다. 원 총리의 이 발언은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중단됐던 중국 정치개혁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해 10월 열린 공산당 17기 5중전회에서 "적극적으로 정치개혁을 추진한다"는 형식적인 선언으로 이어졌다.
원 총리는 1년 전인 지난해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도 동일한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중국은 서구식 정치체제를 모방하거나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올해도 이런 입장은 반복됐다. 우 위원장은 9일 전인대 상무위원회 보고서에서 "중국 고유의 전인대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고 특색 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더불어 서구 자본주의 국가 정치시스템과는 차별화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자바오 총리는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고 있지만 성향은 공청단에 우호적이다. 원 총리가 표방하는 정치개혁은 △점진적인 선거제도 개혁 △인민과 언론의 감독 △공정한 사법제도 수립 등으로 공청단과 흐름을 같이 한다.
반면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정치개혁에 보수적인 상하이방에 속한다. 1989년 톈안먼 시위를 진압한뒤 등장한 장쩌민 전 주석은 민주화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중앙상무위원 중 장쩌민 계열일 우방궈, 자칭린, 리장춘 등이 같은 입장이다. 특히 언론과 이데올르기 담당인 리장춘 상무위원의 언론통제에 대한 재야 원로들의 반발은 상당한 수준 잠복해있다.
지난 2010년 10월 개혁적 성향의 중국 공산당 전직 고위 간부들이 전인대 앞으로 보낸 '언론 환경 악화'를 비난하는 공개서한이 공개됐다. 이들은 마오쩌둥의 비서였던 리루이 전 공산당 중앙조직부 부부장, 후지웨이 전 인민일보 편집장, 리푸 전 신화통신 부사장, 중페이장 전 중앙선전부 신문국장 등 23명의 공산당 원로들이다. 이들 원로는 관영언론들이 원자바오 총리의 정치개혁 연설 내용들마저 삭제해 보도한 것을 강하게 비난하며, 중앙선전부 등 공산당의 언론통제기구를 '검은손'으로 지목했다. 원 총리가 지난 2010년 8월 선전에서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한 달 새 7번이나 정치개혁을 강조했지만, 신화통신 등의 보도에선 이 내용이 빠진 채 보도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원로들이 장쩌민 계열의 리장춘 등 상하이방에 비난의 화살을 날린 것이다.
◆광둥모델 뜨고 충칭모델 잠복 = 중국의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는 제도권과 제도권 밖에서 조심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제도권 내부에서는 보시라이의 '충칭모델'과 왕양의 '광둥모델'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제도권 밖에서는 '신민주주의론'이 주목받고 있다. 문화대혁명 당시 박해를 받아 숨진 류샤오치 전 국가주석의 아들 류위안이 신민주주의론을 지지하고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의 아들 후더핑 등 자유주의파가 논의에 가세하고 있다.

광둥모델을 주도하고 있는 주인공은 왕양 당서기이다. 왕양 서기는 후진타오 주석의 지원을 받고 있는 공청단계이다.
왕양은 광둥성 선전시에 19개 항목의 정치개혁안을 발표하는 등 정치개혁에 박차를 가했으나 초기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2011년 중국 남부 광둥성의 한 시골 마을인 우칸(烏坎)촌에서 '작은 혁명'이 일어났다. 주민 수가 불과 1만 1,000여명에 불과한 곳에서 주민들이 똘똘 뭉쳐 치열한 싸움을 벌인 끝에 부패한 토착 관리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고 민의를 대변할 새 간부들을 뽑아내는 '민주주의 실험'에 성공한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중국 어디서나 으레 찾아볼 수 있는 부정부패 의혹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주민들은 마을 집단 소유로 된 토지가 촌 간부들에 의해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헐값에 팔려나간 사실을 알게 되자 2011년 9월부터 저항을 시작했다.
부패 사슬로 얽힌 지방 당국은 공안과 무장경찰을 대거 투입해 강경 진압에 나섰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던 주민 대표는 공안에 끌려가 고문 의혹 속에서 사망했다. 주민들은 그해 12월까지 넉 달간이나 격렬한 시위를 이어갔다. 결국 중앙 정부와 성 정부가 이례적으로 직접 개입에 나섰고, 주민들은 토착 세력을 몰아내고 시위대 대표를 당 서기로 선출했다.
우칸 주민의 승리는 정부가 질서 유지보다 주민들의 이익을 우선하는 접근 방식인 '우칸 모델'로 칭송받으며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왕 서기는 2012년 전인대에 참석해 "우칸촌 농민들이 불법토지 수용에 대해 소(訴)를 제기한 것은 정당했고, 그 결과 부패한 당 지도부가 물러나고 민주 선거를 통해 새로운 민주 지도부가 들어섰다"며 "이는 당이 추구하는 통치이념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 하반기부터 우칸촌 모델을 확산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왕 서기는 불만 처리에서도 무력진압 대신 타협적 정책을 채택했고, 경제 구조조정으로 저임금·저부가가치 수출산업 탈피, 비정부기구 역할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시진핑과 가까운 인민해방군 고위 장성 가세 = 충칭시 당서기에 부임한 보시라이의 상황 진단은 매우 일관되고 정확했다. 보시라이는 중국인들의 분노의 초점이 되고 있는 부정부패와 빈부격차의 해법을 제시했다. 왕리쥔이 지휘한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범죄조직을 비호해 온 고위 관리들까지 엄단했고, 국유기업의 수익을 사회로 돌려 저소득층에게 저렴한 임대주택과 도시 후커우(호구)를 제공했다. '평등하고 청렴했던 사회'의 향수를 되살리기 위해 혁명가요 부르기 등 '홍색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도 했다. 당과 국가의 역할을 강화해 덩샤오핑 모델의 부작용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보시라이는 불평등과 불공정에 분노하는 많은 중국인들에게 영웅이 됐고, 초고속 성장의 부작용을 치유하려면 좌파적 지식인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왕리쥔 사건'으로 화려한 조명을 받던 '충칭모델'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왕리쥔 사건을 계기로 홍색 캠페인에 투입된 막대한 예산, '범죄와의 전쟁' 과정에서 가혹수사로 억울한 이들을 범죄조직원으로 둔갑시켜 민영기업가들의 재산을 몰수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범죄와의 전쟁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 정치적 라이벌이자 전임 충칭 당서기였던 왕양 광둥성 당서기의 측근들을 겨냥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도권 밖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비서였던 리잉지의 아들인 장무성이 '우리의 문화역사관을 개조한다'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신민주주의론'이 관심을 끌었다. 신민주주의론은 원래 1940년 마오쩌둥이 제기한 개념으로 공산당 외에도 노동자와 농민, 소자산계급, 민족자산계급 등 광범위한 사회세력이 연합하는 단계이다.
장무성의 '신민주주의 되살리기'의 핵심은 공산당 집권체제 유지를 전제로 △입법기구(전국인민대표대회) 역할 강화 △공산당 내 파벌간 공개적 논쟁 △노조와 농민조직의 자율성 강화 △언론의 견제 역할 강화 등이다. 군부 내 대표적 태자당 지도자인 류위안 인민해방군 총후근부 정치위원(상장)은 장무성의 책에 직접 서문을 쓰는 등 신민주주의론을 적극 지지하면서 힘이 실리고 있다. 류위안은 문화대혁명 당시 박해를 받아 숨진 류샤오치 전 국가주석의 아들로 시진핑 부주석과도 절친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류위안은 부정부패에 연루된 인민해방군 고위 장성의 해임을 주도하며, 군내 부정부패 척결을 지휘하는 등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후진타오와 절친한 후더핑 영향력 주목 = 후더핑(胡德平)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은 자유주의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는 1980년대 개혁개방을 이끌다 보수파에 밀려 실각한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의 아들이다. 후야오방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이유로 1987년 당시 중국의 최고 실력자였던 덩샤오핑에 의해 총서기직에서 밀려난 뒤 1989년 6월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톈안먼 사태를 촉발한 비운의 정치가이다. 후더핑은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부 부부장, 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 등을 역임했으며 특히 1980년대 초반 중앙당교 룸메이트였던 후진타오 주석을 당시 공청단 대부였던 부친에게 소개시켜 후 주석이 정치지도자로 성장하는 배경을 만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후야오방은 후진타오의 정치적 후견인이며, 시진핑 부친 시중쉰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한 긴밀한 사이이다.
후더핑은 여러 차례 개혁개방을 강조하는 토론회를 개최해 자유주의 세력을 결집시키고 있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20주년을 기념하는 토론회를 태자당의 자유주의파 인물 등 200여명이 참석해 중국이 전면적 정치개혁을 통해 다당제, 민주선거, 언론자유를 실현하고 공산당의 군대인 인민해방군을 국가의 군대로 전환할 것을 주장했다.
후더핑 정협 상무위원은 최근에도 경제 성장 과정에서 정부와 독점 국영 기업들이 결탁해 폐해가 커지고 있다며 전면적인 정치 개혁을 주장, 파문이 일고 있다. 환구시보 등 중국 언론들은 9일 후 상무위원이 "그 동안 중국 경제가 기적을 이루며 경제의 총량이 커진 것은 사실이나 이런 과정에서 인민보다 이익집단과 독점집단들이 더 큰 이득을 봤다"며 "특히 정부와 기업이 결탁해 얻는 수익이 가장 크다는 것은 개혁의 모순"이라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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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단 왕양 '광둥모델' 뜨고, '충칭모델' 잠복
태자당 류샤오치-후야오방 아들 논의에 가세
지난 5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중국의 의회) 개막식의 국정보고에서 정치개혁을 강도 높게 역설했다. 원 총리는 "법에 의한 민주적 선거, 민주적 정책 결정, 민주적 관리, 민주적 감독을 실행하고 인민의 알 권리, 참여권, 의사 표현권과 감독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 총리는 이날 보고에서 정치개혁을 포함해 곳곳에서 '개혁'이란 단어를 이전 연설보다 많은 60여 차례 언급했다.
원 총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개혁을 역설해 왔고 종종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010년 8월 말 '선전경제특구 수립 30주년'을 앞두고 선전을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선전시 박물관을 찾아가 덩샤오핑의 동상에 헌화하고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정치체제 개혁 보장이 없으면 경제체제 개혁의 성과도 잃어버리게 된다." "개혁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는 길밖에 없다."
◆원로그룹, 장쩌민 상하이방에 화살 = 1986년 6월 덩샤오핑이 "경제만 개혁하고 정치를 개혁하지 않으면 경제개혁도 통할 수 없다"고 선언한 발언을 환기시킨 것이다. 원 총리의 이 발언은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중단됐던 중국 정치개혁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해 10월 열린 공산당 17기 5중전회에서 "적극적으로 정치개혁을 추진한다"는 형식적인 선언으로 이어졌다.
원 총리는 1년 전인 지난해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서도 동일한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중국은 서구식 정치체제를 모방하거나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올해도 이런 입장은 반복됐다. 우 위원장은 9일 전인대 상무위원회 보고서에서 "중국 고유의 전인대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고 특색 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더불어 서구 자본주의 국가 정치시스템과는 차별화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자바오 총리는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고 있지만 성향은 공청단에 우호적이다. 원 총리가 표방하는 정치개혁은 △점진적인 선거제도 개혁 △인민과 언론의 감독 △공정한 사법제도 수립 등으로 공청단과 흐름을 같이 한다.
반면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정치개혁에 보수적인 상하이방에 속한다. 1989년 톈안먼 시위를 진압한뒤 등장한 장쩌민 전 주석은 민주화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중앙상무위원 중 장쩌민 계열일 우방궈, 자칭린, 리장춘 등이 같은 입장이다. 특히 언론과 이데올르기 담당인 리장춘 상무위원의 언론통제에 대한 재야 원로들의 반발은 상당한 수준 잠복해있다.
지난 2010년 10월 개혁적 성향의 중국 공산당 전직 고위 간부들이 전인대 앞으로 보낸 '언론 환경 악화'를 비난하는 공개서한이 공개됐다. 이들은 마오쩌둥의 비서였던 리루이 전 공산당 중앙조직부 부부장, 후지웨이 전 인민일보 편집장, 리푸 전 신화통신 부사장, 중페이장 전 중앙선전부 신문국장 등 23명의 공산당 원로들이다. 이들 원로는 관영언론들이 원자바오 총리의 정치개혁 연설 내용들마저 삭제해 보도한 것을 강하게 비난하며, 중앙선전부 등 공산당의 언론통제기구를 '검은손'으로 지목했다. 원 총리가 지난 2010년 8월 선전에서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한 달 새 7번이나 정치개혁을 강조했지만, 신화통신 등의 보도에선 이 내용이 빠진 채 보도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원로들이 장쩌민 계열의 리장춘 등 상하이방에 비난의 화살을 날린 것이다.
◆광둥모델 뜨고 충칭모델 잠복 = 중국의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는 제도권과 제도권 밖에서 조심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제도권 내부에서는 보시라이의 '충칭모델'과 왕양의 '광둥모델'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제도권 밖에서는 '신민주주의론'이 주목받고 있다. 문화대혁명 당시 박해를 받아 숨진 류샤오치 전 국가주석의 아들 류위안이 신민주주의론을 지지하고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의 아들 후더핑 등 자유주의파가 논의에 가세하고 있다.

광둥모델을 주도하고 있는 주인공은 왕양 당서기이다. 왕양 서기는 후진타오 주석의 지원을 받고 있는 공청단계이다.
왕양은 광둥성 선전시에 19개 항목의 정치개혁안을 발표하는 등 정치개혁에 박차를 가했으나 초기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2011년 중국 남부 광둥성의 한 시골 마을인 우칸(烏坎)촌에서 '작은 혁명'이 일어났다. 주민 수가 불과 1만 1,000여명에 불과한 곳에서 주민들이 똘똘 뭉쳐 치열한 싸움을 벌인 끝에 부패한 토착 관리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고 민의를 대변할 새 간부들을 뽑아내는 '민주주의 실험'에 성공한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중국 어디서나 으레 찾아볼 수 있는 부정부패 의혹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주민들은 마을 집단 소유로 된 토지가 촌 간부들에 의해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헐값에 팔려나간 사실을 알게 되자 2011년 9월부터 저항을 시작했다.
부패 사슬로 얽힌 지방 당국은 공안과 무장경찰을 대거 투입해 강경 진압에 나섰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던 주민 대표는 공안에 끌려가 고문 의혹 속에서 사망했다. 주민들은 그해 12월까지 넉 달간이나 격렬한 시위를 이어갔다. 결국 중앙 정부와 성 정부가 이례적으로 직접 개입에 나섰고, 주민들은 토착 세력을 몰아내고 시위대 대표를 당 서기로 선출했다.
우칸 주민의 승리는 정부가 질서 유지보다 주민들의 이익을 우선하는 접근 방식인 '우칸 모델'로 칭송받으며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왕 서기는 2012년 전인대에 참석해 "우칸촌 농민들이 불법토지 수용에 대해 소(訴)를 제기한 것은 정당했고, 그 결과 부패한 당 지도부가 물러나고 민주 선거를 통해 새로운 민주 지도부가 들어섰다"며 "이는 당이 추구하는 통치이념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 하반기부터 우칸촌 모델을 확산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왕 서기는 불만 처리에서도 무력진압 대신 타협적 정책을 채택했고, 경제 구조조정으로 저임금·저부가가치 수출산업 탈피, 비정부기구 역할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시진핑과 가까운 인민해방군 고위 장성 가세 = 충칭시 당서기에 부임한 보시라이의 상황 진단은 매우 일관되고 정확했다. 보시라이는 중국인들의 분노의 초점이 되고 있는 부정부패와 빈부격차의 해법을 제시했다. 왕리쥔이 지휘한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범죄조직을 비호해 온 고위 관리들까지 엄단했고, 국유기업의 수익을 사회로 돌려 저소득층에게 저렴한 임대주택과 도시 후커우(호구)를 제공했다. '평등하고 청렴했던 사회'의 향수를 되살리기 위해 혁명가요 부르기 등 '홍색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도 했다. 당과 국가의 역할을 강화해 덩샤오핑 모델의 부작용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보시라이는 불평등과 불공정에 분노하는 많은 중국인들에게 영웅이 됐고, 초고속 성장의 부작용을 치유하려면 좌파적 지식인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왕리쥔 사건'으로 화려한 조명을 받던 '충칭모델'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왕리쥔 사건을 계기로 홍색 캠페인에 투입된 막대한 예산, '범죄와의 전쟁' 과정에서 가혹수사로 억울한 이들을 범죄조직원으로 둔갑시켜 민영기업가들의 재산을 몰수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범죄와의 전쟁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 정치적 라이벌이자 전임 충칭 당서기였던 왕양 광둥성 당서기의 측근들을 겨냥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도권 밖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비서였던 리잉지의 아들인 장무성이 '우리의 문화역사관을 개조한다'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신민주주의론'이 관심을 끌었다. 신민주주의론은 원래 1940년 마오쩌둥이 제기한 개념으로 공산당 외에도 노동자와 농민, 소자산계급, 민족자산계급 등 광범위한 사회세력이 연합하는 단계이다.
장무성의 '신민주주의 되살리기'의 핵심은 공산당 집권체제 유지를 전제로 △입법기구(전국인민대표대회) 역할 강화 △공산당 내 파벌간 공개적 논쟁 △노조와 농민조직의 자율성 강화 △언론의 견제 역할 강화 등이다. 군부 내 대표적 태자당 지도자인 류위안 인민해방군 총후근부 정치위원(상장)은 장무성의 책에 직접 서문을 쓰는 등 신민주주의론을 적극 지지하면서 힘이 실리고 있다. 류위안은 문화대혁명 당시 박해를 받아 숨진 류샤오치 전 국가주석의 아들로 시진핑 부주석과도 절친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류위안은 부정부패에 연루된 인민해방군 고위 장성의 해임을 주도하며, 군내 부정부패 척결을 지휘하는 등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후진타오와 절친한 후더핑 영향력 주목 = 후더핑(胡德平)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은 자유주의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는 1980년대 개혁개방을 이끌다 보수파에 밀려 실각한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의 아들이다. 후야오방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이유로 1987년 당시 중국의 최고 실력자였던 덩샤오핑에 의해 총서기직에서 밀려난 뒤 1989년 6월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톈안먼 사태를 촉발한 비운의 정치가이다. 후더핑은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부 부부장, 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 등을 역임했으며 특히 1980년대 초반 중앙당교 룸메이트였던 후진타오 주석을 당시 공청단 대부였던 부친에게 소개시켜 후 주석이 정치지도자로 성장하는 배경을 만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후야오방은 후진타오의 정치적 후견인이며, 시진핑 부친 시중쉰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한 긴밀한 사이이다.
후더핑은 여러 차례 개혁개방을 강조하는 토론회를 개최해 자유주의 세력을 결집시키고 있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20주년을 기념하는 토론회를 태자당의 자유주의파 인물 등 200여명이 참석해 중국이 전면적 정치개혁을 통해 다당제, 민주선거, 언론자유를 실현하고 공산당의 군대인 인민해방군을 국가의 군대로 전환할 것을 주장했다.
후더핑 정협 상무위원은 최근에도 경제 성장 과정에서 정부와 독점 국영 기업들이 결탁해 폐해가 커지고 있다며 전면적인 정치 개혁을 주장, 파문이 일고 있다. 환구시보 등 중국 언론들은 9일 후 상무위원이 "그 동안 중국 경제가 기적을 이루며 경제의 총량이 커진 것은 사실이나 이런 과정에서 인민보다 이익집단과 독점집단들이 더 큰 이득을 봤다"며 "특히 정부와 기업이 결탁해 얻는 수익이 가장 크다는 것은 개혁의 모순"이라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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