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매크로위키노믹스’] 세상 재부팅할 핵심 키워드는 협업과 개방

지역내일 2012-03-16
박순철 칼럼니스트

향후 10년은 어떤 시기일까. '타임'지의 특집기사에는 이를 '엘리트의 쇠퇴기'로 규정하는 시각이 등장한다. 이 책 '매크로위키노믹스'에 인용된 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지난 10년 동안 제너럴 모터스, 의회, 월가, 메이저리그, 가톨릭교회, 주류 언론 등 미국 사회를 떠받쳐온 거의 모든 조직과 기관이 부패했거나 무능력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엘리트와 조직의 쇠퇴가 동시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미국 사회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번영을 가져왔던 산업화시대 자체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재화의 대량생산, 매스미디어, 대중교육, 대중민주주의를 제공한 산업화시대의 조직들, "생산기반과 사회적 집단을 힘 있는 소유주가 일방통행 방식으로 통제하는 중앙집중화된 천편일률적인 대중 모델"의 위기다. 이런 문맥에서 "이 세상은 이제 중대한 전환점에 도달했다"는 돈 탭스코트와 앤서니 윌리엄스의 선언은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지난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인류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온 수많은 기관들이 얼어붙은 채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재의 상황이라면 우리는 "과거의 모델과 접근법, 구조를 재부팅하거나 구조적인 마비, 혹은 붕괴를 받아들여야 하는" 중대한 선택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방통행적 중앙통제의 모델을 넘어선, 집단지성의 모델로 "세상을 재부팅하라"는 건 시대의 요구다. 그리고 그 재부팅의 핵심이 바로 매크로위키노믹스라는 개념으로 요약된다. 20세기 후반 세계의 거대한 흐름들을 말끔하게 정리해 주었던 '메가트렌드'의 용례가 그러했듯 매크로위키노믹스라는 합성어는 21세기의 세계적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개념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이 용어에는 세 가지 의미가 결합돼 있다. 그 첫 번째 '위키'는 흔히 집단지성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만인이 만든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연유한다. 지은이 두 사람은 거기에 경제학을 뜻하는 '이코노믹스'를 덧붙여 전작인 '위키노믹스'라는 제목의 책을 엮어낸 바 있다. 여기에 거시를 뜻하는 '매크로'가 추가된 것이다.

그 내용은 개방형 네트워크 모델을 바탕으로 한 대규모 협업이다. 지은이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이러한 협업이 하나의 비즈니스 또는 기술 트렌드를 넘어 포괄적인 사회적 변화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그러니까 '위키노믹스'가 '매크로위키노믹스'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말한다. "위키노믹스와 위키노믹스의 핵심 원칙이 사회와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에 적용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개방형 협업의 성공적인 사례들은 인간 세상의 모든 조직, 모든 분야에 걸쳐 발견되고 있다. 가령 교육 분야에서는 산업화시대의 낡은 모델 대신 협업학습의 새 모델이 관심을 모은다. 예컨대 JIT(just-in-time)교수법의 경우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인터넷 기반과제와 학생들의 요구에 맞는 맞춤형 수업 과정을 제공해 학습자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심도 깊은 질문'으로 이끄는 이 방식은 코넬대에서 학생들의 수학 성적을 크게 높이는 성과를 낳았다. 의료 분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협업의료의 새로운 가능성이 태동하고 있다. 웹 2.0은 환자들이 스스로 그룹을 형성하고, 집합적인 지식을 기여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를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도록 돕는다.

예컨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에 걸린 환자의 형제들이 개발한 웹사이트 페이션츠라이크미는 이제 거의 모든 질병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는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이러한 협업의료에서는 의료 서비스가 환자 중심으로 이루어질 뿐 아니라 환자들의 참여 속에 양질의 의료 서비스나 건강상태를 함께 이루어간다.

미디어의 경우도 그렇다. 미디어는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디지털 혁명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부문으로 흔히 지적된다. 이 책은 "신문의 몰락은 정해진 일"이라고 단언한다. "신문의 몰락은 우연이 아닐뿐더러, 갑작스레 발생한 일도 아니며,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진실을 숨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단순한 콘텐츠 창조자가 아니라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역할을 자임하는 '뉴욕타임스'의 혁신을 주목한다. "과거 '인쇄하기에 적합한 모든 뉴스'라는 슬로건을 앞세웠던 '뉴욕타임스'는 현재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대화'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매크로위키노믹스는 민간부문을 넘어 정부부문으로, 국경을 넘어 글로벌 영역으로 쓰나미의 거센 파고를 일으키는 형세다. 캐나다 정부가 도시 지속 가능성 문제에 관한 전 세계적 대화를 시도한 해비타트잼의 사례는 이 변화의 거대한 가능성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158개국에 흩어져 있는 슬럼 거주자, 장관, 학생, 교수 등 3만9000명 간에 벌어진 72시간 동안의 온라인 토론은 언어 장벽, 문맹 장벽, 장애 장벽, 빈곤 장벽, 전쟁 장벽, 디지털 장벽을 무너뜨린 "세계를 바꿔놓을 만한 대화"였다.

이러한 네트워크 지능의 새 시대를 향유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다섯 가지 원칙이다. 그 첫 번째는 협업이다.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는 협업을 바탕으로 하는 혁신이 예산이나 R&D, 기획 못지않게 중요한 핵심 기술이라고까지 여긴다. 이어 개방성, 공유, 진실성, 상호의존성이 원칙의 리스트를 마무리한다. 경쟁과 은폐의 세상이 위키노믹스의 세상으로, 즉 협업과 개방 그리고 공유와 진실이 원칙이 되는 새로운 세상으로 바뀌어 가는 대세, 그 필연성이 반갑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 대목을 인용하고 싶다. "위키노믹스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으며, 매일 새로운 사례가 등장한다. 여러분들도 '매크로위키노믹스'를 읽으면서 위키노믹스 원칙을 한국의 정부와 기업, 사회에 적용할 방법을 상상해보기 바란다." 글은 이렇게 끝난다. "이제, 혁명에 참여해 보자." 참여가 없다면 이 모든 건 물론 공염불이다.

21세기북스

돈 탭스코트·앤서니 윌리엄스 지음

김현정 옮김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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