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조합 "주홍글씨… 누가 오겠나"
부산분양 앞둔 업체, 시장혼란 우려
현대건설이 일부 도시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함에 따라 해당 조합은 물론 부동산 업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침체된 부동산 시장이 더욱 얼어붙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어떤 파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뉴타운 출구전략이 시행되는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청약불패지역인 '부산'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업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18일 현대건설에 따르면 최근 부산을 중심으로 전국 20여개 정비사업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하고 있다. 사업이 늦어지면서 사업성이 떨어진 곳, 조합원간 분쟁 및 소송이 끊이지 않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이 중 12곳이 부산에 있다. 현대건설은 해당 지역조합에 공문을 보내 "사업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통보받은 구역은 구포2·4·6·8지구, 동대신2지구, 봉래1지구, 당감3·8·10지구, 범일2지구, 문현1지구, 복산1지구 등이다.
◆해당 조합 강력 반발 = 사업 추진을 목놓아 기다리던 조합들은 비상대책위까지 구성하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제가 된 부산지역 12개 재개발사업조합은 지난주 공동 비상대책위를 발족했다. 비대위측은 "지난해 하반기까지 현대건설은 '부산 경기가 좋아 사업추진 일정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하더니 지금은 '사업진행이 어렵다'고 말을 바꿨다"며 "일부 조합에는 사업비 일부 지원을 내걸며 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조합 관계자는 "현대건설이 부산 12개 사업장이 사업성이 없다고 했는데 사실상 '주홍글씨'를 써버린 것"이라며 "어떤 다른 건설사가 우리 지역 시공권을 따려고 하고, 누가 분양을 받겠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은 "사업성을 곰곰히 따져보자는 취지"라면서 "2개 가량의 조합은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보여 향후 일정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부터 사업권을 따낸 건설사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조합이 새로운 시공사를 선정하거나 다른 시공사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사업권을 따내는 일은 종종 있었다. 자금난을 겪는 건설사가 아예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포기하거나 재검토 한 적도 있다. 그러나 대형 건설사가 특정지역의 정비사업을 공개적으로 포기하겠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조합과 시공사가 계약을 깨기 위해서는 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조합은 땅이나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 사업을 진행할 현금이 없다. 이 때문에 시공사로 선정한 건설사로부터 사업비를 빌린다. 설계나 철거 등 각종 용역에서부터 주민들 조합 총회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빌려 온다. 조합장 월급에서부터 수백~수천명에 달하는 조합원들에게 보내는 인쇄물까지 건설사가 빌려주는 '대여금'에 의존한다. 조합이 큰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건설사가 빌려준 돈 때문이다. 사실상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다.
건설사로서는 빌려준 '대여금' 본전이라도 뽑아야 한다. 조합이 새로운 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하면 새 시공사는 조합이 진 빚을 갚아줘야 시공사로서 지위를 누릴 수 있다. 현대건설로서는 수억~수입억원 이상의 '대여금'을 내준 사업장을 무상으로 다른 건설사에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건설사 역시 현대건설이 포기한 사업장에 호의적이지 않다. 결국 12개 조합이 새로운 시공사를 만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지난주 문을 연 대신 롯데캐슬 견본주택 모습. 현대건설이 부산의 재건축·재개발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아직까지 분양 열기는 이어지고 있다. 사진 롯데건설 제공
◆부산 분양 앞둔 건설사 당혹 = 부산에 상반기 중 분양을 할 건설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건설사의 부산지사장은 "업계 1위인 현대건설이 상도의를 해치고 다른 건설사 장사까지 망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에서는 "왜 하필이면 지금이냐"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부산지역에서 청약을 하고 있는 건설사들이나 분양을 앞둔 업체일수록 불만이 크다. 심지어 "다른 때도 아닌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부산지역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의도가 있는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현대건설을 인수한 현대차그룹의 수익성 위주 전략도 재건축·재개발 사업 재검토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을 옹호하는 건설사도 상당수 된다. 이미 수도권에 연고를 둔 대형 건설사 일부는 최근 몇년간 부산지역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포기한 바 있다. 건설업계가 부산지역을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인구문제다. 2006년 363만명이던 부산시 인구는 매년 감소세에 있다. 2010년 360만명으로 늘어나는 듯 했으나 지난해 말 다시 358만명으로 줄었다. 부산지역으로 유입되는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거제와 양산, 김해 등 인근도시 인구는 늘고 있다. 부산으로 올 인구가 주변도시에 머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부산에는 수만채씩 아파트가 신규공급되고 있다. 올해 분양예정 물량만 1만4000가구다. 현재까지 청약률이 높지만 시장에서는 언제 미분양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행 및 시공사와 조합간 괴리감이 커졌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조합원들은 기대 이상의 투자 수익을 원하고 있고, 건설사는 보수적인 경영계획을 제시한다. 쉽게 말하면 조합원들은 일반분양 아파트를 비싸게, 많이 팔아야 한다. 조합원 개인 부담을 줄이거나 현금청산을 받기 위해서다. 반면 건설사들은 '착한 분양가'를 내세워 사업을 빨리 정리하고 싶어한다. 고분양가일수록 미분양이 늘어나고 시공사의 재정적인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분양가를 놓고 조합과 시공사간 갈등이 커지면 시공권 포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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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분양 앞둔 업체, 시장혼란 우려
현대건설이 일부 도시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함에 따라 해당 조합은 물론 부동산 업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침체된 부동산 시장이 더욱 얼어붙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어떤 파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뉴타운 출구전략이 시행되는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청약불패지역인 '부산'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업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18일 현대건설에 따르면 최근 부산을 중심으로 전국 20여개 정비사업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하고 있다. 사업이 늦어지면서 사업성이 떨어진 곳, 조합원간 분쟁 및 소송이 끊이지 않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이 중 12곳이 부산에 있다. 현대건설은 해당 지역조합에 공문을 보내 "사업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통보받은 구역은 구포2·4·6·8지구, 동대신2지구, 봉래1지구, 당감3·8·10지구, 범일2지구, 문현1지구, 복산1지구 등이다.
◆해당 조합 강력 반발 = 사업 추진을 목놓아 기다리던 조합들은 비상대책위까지 구성하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제가 된 부산지역 12개 재개발사업조합은 지난주 공동 비상대책위를 발족했다. 비대위측은 "지난해 하반기까지 현대건설은 '부산 경기가 좋아 사업추진 일정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하더니 지금은 '사업진행이 어렵다'고 말을 바꿨다"며 "일부 조합에는 사업비 일부 지원을 내걸며 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조합 관계자는 "현대건설이 부산 12개 사업장이 사업성이 없다고 했는데 사실상 '주홍글씨'를 써버린 것"이라며 "어떤 다른 건설사가 우리 지역 시공권을 따려고 하고, 누가 분양을 받겠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은 "사업성을 곰곰히 따져보자는 취지"라면서 "2개 가량의 조합은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보여 향후 일정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부터 사업권을 따낸 건설사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조합이 새로운 시공사를 선정하거나 다른 시공사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사업권을 따내는 일은 종종 있었다. 자금난을 겪는 건설사가 아예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포기하거나 재검토 한 적도 있다. 그러나 대형 건설사가 특정지역의 정비사업을 공개적으로 포기하겠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조합과 시공사가 계약을 깨기 위해서는 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조합은 땅이나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 사업을 진행할 현금이 없다. 이 때문에 시공사로 선정한 건설사로부터 사업비를 빌린다. 설계나 철거 등 각종 용역에서부터 주민들 조합 총회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빌려 온다. 조합장 월급에서부터 수백~수천명에 달하는 조합원들에게 보내는 인쇄물까지 건설사가 빌려주는 '대여금'에 의존한다. 조합이 큰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건설사가 빌려준 돈 때문이다. 사실상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다.
건설사로서는 빌려준 '대여금' 본전이라도 뽑아야 한다. 조합이 새로운 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하면 새 시공사는 조합이 진 빚을 갚아줘야 시공사로서 지위를 누릴 수 있다. 현대건설로서는 수억~수입억원 이상의 '대여금'을 내준 사업장을 무상으로 다른 건설사에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건설사 역시 현대건설이 포기한 사업장에 호의적이지 않다. 결국 12개 조합이 새로운 시공사를 만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 분양 앞둔 건설사 당혹 = 부산에 상반기 중 분양을 할 건설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건설사의 부산지사장은 "업계 1위인 현대건설이 상도의를 해치고 다른 건설사 장사까지 망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에서는 "왜 하필이면 지금이냐"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부산지역에서 청약을 하고 있는 건설사들이나 분양을 앞둔 업체일수록 불만이 크다. 심지어 "다른 때도 아닌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부산지역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의도가 있는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현대건설을 인수한 현대차그룹의 수익성 위주 전략도 재건축·재개발 사업 재검토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을 옹호하는 건설사도 상당수 된다. 이미 수도권에 연고를 둔 대형 건설사 일부는 최근 몇년간 부산지역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포기한 바 있다. 건설업계가 부산지역을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시행 및 시공사와 조합간 괴리감이 커졌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조합원들은 기대 이상의 투자 수익을 원하고 있고, 건설사는 보수적인 경영계획을 제시한다. 쉽게 말하면 조합원들은 일반분양 아파트를 비싸게, 많이 팔아야 한다. 조합원 개인 부담을 줄이거나 현금청산을 받기 위해서다. 반면 건설사들은 '착한 분양가'를 내세워 사업을 빨리 정리하고 싶어한다. 고분양가일수록 미분양이 늘어나고 시공사의 재정적인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분양가를 놓고 조합과 시공사간 갈등이 커지면 시공권 포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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