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원의 세상탐사] ‘조카손자’ ‘대인배’는 우리말에 없다

지역내일 2012-03-16
이용원 언론인 동국대 신방과 겸임교수

인터넷에서 뉴스를 검색하다 흠칫 놀랐다. 이달 초 결혼한 방송인 현영의 남편이 알고 보니 극진 가라테를 창시한 고 최배달(본명 최영의)의 '조카손자'였다고 밝힌 기사 때문이었다. 그 내용이 궁금했다기보다는 제목에 나온 '조카손자'라는 단어에 눈길이 멈췄다.

'조카손자'라니? 조카면 조카이고, 손자면 손자이지 이건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싶었다. '조카의 손자'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건 금세 눈치챘다. 조카의 손자라면 증손자뻘인데, 최 선생 연배로 봐서 그렇지는 않으리라고 짐작됐다. 또 조카사위·조카며느리가 조카와 결혼한 배우자를 뜻하지 조카의 사위·며느리가 아닌 것처럼 '조카손자'역시 조카의 손자일 리는 없었다.

혹시나 해서 찾아보았는데 맨 처음 쓴 기사에 가서야 최 선생과 그 남편의 관계가 설명되었다. 그 남편은, 최 선생 친형의 손자인 것이다. 형제의 손자는 '종손(從孫)'이라고 한다. 거꾸로 손자에게 할아버지의 형제는 '종조(從祖)' '종조부(從祖父)' '종조할아버지'이다.

종손이란 단어를 몰랐으면 차라리 '최배달 형의 손자'로 풀어쓰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존재하지 않는 해괴한 용어를 처음 쓴 기자나 이를 무신경하게 베껴 쓴 다른 기자들은 우리말글을 다루는 직업인으로서 그 죄가 작지 않다 하겠다.



글에는 쓴 사람 인품 들어 있어

하긴 '조카손자'뿐인가. 그보다 더욱 질이 나쁜 예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바로 '대인배'이다. '대인배'는 몇년 전 인터넷 댓글에 처음 등장하는가 했더니 지금은 인터넷 기사와 TV 연예프로그램의 자막에 넘쳐날 지경에 이르렀다. 나아가 전통 있다는 신문에서조차 버젓이 자리를 잡았다.

한자어 '배(輩)'는 기본적으로 '무리, 떼'라는 뜻이지만 아울러 그 무리에 속한 개인을 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전적 의미와 상관없이 이 한자가 붙어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는 대부분 부정적인 말맛을 띤다. 예컨대 폭력배 ·불량배·소인배·간신배·정상배·무뢰배·모리배·시정잡배 등등이다. 그나마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는 선배·후배·연배·동년배 정도이다. 그런 판에 대인(大人)에 굳이 '배'를 붙여 그 아름다운 말뜻을 훼손해야 할까. '소인배'가 있으니 그 반대말이 '대인배'가 아닌가 하겠지만 우리말에 그런 단어는 없다.

글에는 쓴 사람의 지식과 인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많은 이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우리말글을 함부로 토해낸다. 이러한 행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특히 심하다.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선배분'은 기본이고 '학우분', 심지어 '후배분'까지 등장한다. 커피전문점에 가면 커피 한잔은 5000원'이시고' 편의점에서는 담배 한 갑이 2500원'이시다'. 이게 다 경어법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 희극이자 비극이다.

엊그제 국립국어원이 '표준 언어 예절'을 펴냈다. 친인척이나, 사회에서 맺은 인간관계에서 상대를 가리키는 말(지칭)과 부르는 말(호칭)을 어찌해야 하는지를 상세히 설명한 책이다. 경어법도 물론 다루었고 문상을 비롯해 특정한 상황에서 하는 인사말에도 용례를 제시했다. 언어생활에 꼭 필요한 예법의 기준을 만들어 '표준 화법'이란 이름으로 처음 제시한 때가 1992년이다. 그로부터 20년만에 세태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언어 예절 원칙이 나왔으니 그 의의가 자못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교양인의 필독서 '표준 언어 예절'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이 있고, '입은 만화(萬禍)의 근원'이라는 경구가 있다. 말 한마디로, 또 요즘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성행하는 시대에는 글 한줄로 너와 나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한다.

우리말글을 제대로 배우고 익혀 언어생활에서 남에게 예의를 갖춘다면 그 사람 또한 나를 예우할 것이고 불필요한 갈등은 그만큼 줄어들 터이다. 그래서 당신에게 권한다. 만약 교양인을 자처한다면 '표준 언어 예절'을 꼭 들춰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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