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권력투쟁 막 올랐다 ⑧수뇌부가 보시라이 죽이기 나선 까닭은?
승자독식서 계파간 나눠먹는 과점체제 유지 … 제한된 경쟁 넘어선 보시라이는 '공공의 적'
1971년 9월 13일 마오쩌둥의 후계자였던 린뱌오가 쿠데타에 실패한 뒤 구소련으로 망명하다 몽골 상공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중국 언론은 사건 발생 이후에도 '린 부주석'이 마치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관련 보도를 계속 내보냈으며 40여 일이 지난 10월 24일에야 사건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 2월 6일 왕리쥔 사건이 발생한 후 중국 당국은 태도표시를 미루어 오다 40여 일이 지난 3월 15일 '양회(兩會)'가 끝난 후 보시라이를 충칭시 당서기 직에서 전격 해임했다. 4월 10일에는 정치국원도 해임했다고 발표했다.
<저우융캉만 빠진="" 인민일보="" 1면=""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중="" 저우융캉="" 중앙정치법률위원회="" 서기만="" 제외하고="" 8명의="" 동정기사를="" 소개한="" 26일자="" 인민일보="" 1면="" 사진="" 제공=인민일보="" 홈페이지="">
중국 언론이 철저히 통제된 상황에서 장막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투쟁의 내막과 계파간 게임의 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마오쩌둥·덩샤오핑 승자독식 =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중국 지도부의 1세대와 2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들 세대는 '승자독식(winner-takes-all)의 룰'이 지배하는 1인 독재체제였다. 시장구조와 비교하면 독점시장과 같다. 1인의 전횡과 초과이윤이 반드시 뒤따른다.
마오쩌둥은 끊임없이 혼란을 조장하고 이를 활용해 죽을 때까지 권력의 정점에 머물렀다. 그는 집권기간 동안 자신의 카리스마와 의지로 당·정·군 모든 영역에서 독점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2세대 지도자인 덩샤오핑은 원로정치집단과 세력간 권력안배의 중심에 서서 마오쩌둥 못지않은 독점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군사위 주석이라는 명함 하나만 가지고도 자신의 사람들을 당과 정부에 심어 막후에서 조정해 최고 지도자로 군림했다. 특히 자신의 후계자로 장쩌민은 물론이고 후진타오도 지명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덩샤오핑은 1인 독재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자신이 지명한 장쩌민의 정당성과 카리스마가 취약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세대'라는 개념을 동원했다. 1989년 덩샤오핑은 톈안먼 사건 이후 당의 최고지도자로 중앙 무대에 정치적 기반이 별로 없었던 장쩌민을 발탁했다. 동시에 당내외의 의혹과 불안을 잠재우고 정치적 무게를 실어주기 위해 마오쩌둥을 제 1세대, 자신을 제 2세대 그리고 장쩌민을 제3세대의 핵심 지도자로 규정하면서 그를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촉구했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대에 중국의 권력구조는 독점에서 과점으로 전환됐다. 상하이방, 공청단, 태자당 등 각 계파가 권력을 나눠먹는 구조를 형성한 것이다. 과점체제는 독재와 다원적 정치체제 사이의 매우 불안정한 체제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게임의 룰을 운용하고 있다.
첫째는 권력 교체나 승계와 관련된 제도화를 통해 차기 권력을 둘러싼 예측가능성을 높였다. 종신제를 폐지하고 임기제를 도입했다. 최소한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군사위원회 주석은 모두 두 기(10년)를 기한으로 하고, 두기 10년 이후에는 바로 퇴휴 절차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2002년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가 시작되어 또 다시 칠상팔하(七上八下)의 원칙이 추가됐다. 즉 67세는 정치국위원으로 승진하거나 연임할 수 있지만 만 68세는 반드시 퇴휴해야한다는 원칙이다.
둘째는 지도그룹 내의 분업과 책임을 명확히 했다.
예를 들면 최고 권력집단인 9명의 중앙상무위원은 1위부터 9위까지 서열이 매겨져 있고, 담당 분야가 다르며, 주요 현안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동등한 발언권과 투표권을 행사한다. 후진타오는 외교·안보·대만문제, 우방궈는 입법, 원자바오는 행정부·경제, 자칭린은 통일전선, 리창춘은 선전·이데올로기, 시진핑은 당조직 관리 및 인사 등, 리커창은 재경·의료, 허궈창은 당 기율·반부패·감찰, 저우융캉은 공안·사법·국가안전 등을 분담하고 있다.
셋째는 '경쟁적 공존(competitive coexistence)관계'이다. 공청단, 태자당, 상하이방 등 주요 파벌들은 중국 공산당의 집권 지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공존과 제한된 경쟁이 허용된다.
◆과점체제는 취약한 과도기 권력구조 = 보시라이 사건은 '제한된 경쟁'의 범위를 뛰어 넘어 공산당 집권 기반을 뒤흔들었다는 데서 지도부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보시라이가 이러한 게임의 룰을 무시하고 쿠데타 음모를 진행 중이었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저명한 중국전문가 윌리 워 랍 람(林和立)이 보시라이가 지난 2월 인민해방군을 움직여 거사를 실행하기 직전까지 갔었다고 주장했다. 홍콩 유력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기자로서 중국 내부 상황에 관한 정확한 기사로 유명한 월리 워 랍 람은 일본 시사잡지 사피오(SAPIO) 5월9~16일자 최신호를 통해 보시라이의 쿠데타 기도와 관련한 내막을 소개했다.
윌리 워 랍 람은 베이징의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보시라이가 지난 2월 측근이던 왕리쥔 전 공안국장이 쓰촨성 청두 미국총영사관 앞에서 신병이 구속돼 베이징으로 압송된 사실을 알게 되자 충칭에 주둔한 인민해방군 부대를 동원하려 했다고 전했다. 당시 보시라이의 정변 계획이 사전에 누설, 저지됐으나 자칫하면 문화대혁명(1966~1976년) 시기에 잦았던 군과 민병 조직 등에 의한 무장충돌로 번질 수 있는 긴급한 상황이었다고 월리 워 랍 람은 강조했다.
후진타오와 계파가 다른 태자당, 상하이방이 모두 보시라이의 처벌에 동의한 것도 '제한된 경쟁'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외교소식통은 보시라이의 뒤를 봐주던 장쩌민 전 국가주석과 차기 최고지도자로 내정된 같은 태자당 출신의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가능하면 보시라이의 구속과 처벌을 피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왕리쥔이 미국총영사관에 가지고 들어간 기밀서류가 미국 정부에 넘겨져 마침 방미한 시진핑에게 그 존재를 확인한 탓에 그로선 보시라이를 구하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다.
보시라이 사건에 대해 중국 당국은 현재까지는 '형사사건'으로 한정지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사건이 정변에 준하는 권력투쟁으로 비화되고 있으며 그 범위도 보시라이에서 그를 비호한 정치국 상무위원인 저우융캉 정법위 서기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후진타오가 저우융캉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상무위원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게임의 규칙이 깨지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6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면에 고위층 동정을 소개하면서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중 저우융캉 소식만 제외시켰다. 이날 중국의 지역 언론 매체도 저우융캉만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4월 23일 초천도시보(楚天都市報)에는 저우융캉의 후베이(湖北) 방문을 보도하면서 제목 아래 저우융캉의 사진 대신 외줄 타기 사진을 게재했다. 이날 인민일보는 후진타오에서 허궈창에 이르기까지 정치 서열에 따라 기사 편집, 지면 배치, 글자 크기 등을 모두 세심하게 구성했다. 이런 상황에서 저우융캉 만이 빠졌다는 사실을 두고 그의 실각이 임박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보시라이는 양회 과정에서 기자들에게 자신이 충칭시에서 진행한 '창홍다헤이(唱紅打黑, 사회주의 문화는 고양시키고 불법폭력은 엄격히 근절)'가 저우융캉 등 윗선의 지지아래 진행됐음을 시사했다. 또한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에 탈출한 것과 같은 중요한 정보들을 모두 저우융캉을 통해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시라이 조사 과정에서 저우융캉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최근 홍콩과 해외 언론에 저우융캉과 관련된 거액의 횡령 및 음란 등 다양한 정보와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저우융캉 처리 여부가 관건 = 현재 후진타오는 시진핑과 중공 군부와 저우융캉, 보시라이의 지방 잔여세력을 숙청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4월 15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앙군사위원회에서 보시라이 모반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청두군구에 5개의 조사팀을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4월 23일 신화통신은 '악성종양을 제거하자'라는 후진타오의 문장을 발표했다. 이 글에는 "당의 악성종양을 제때 발견하고 제거해야 하며, 불합격한 당원에 대해서는 조직에서 제때 처리해야 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는 후진타오가 얼마 전 제17기 중앙기율위원회 제7차 전체회의에서 한 강의 내용이다.

<보시라이와 함께="" 권력투쟁에서="" 밀린="" 위기에="" 놓인="" 저유융캉="" 상무위원="" 신화="연합뉴스">
최근 중국 관영 언론의 보도 방식을 볼 때 저우융캉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의 낙마가 오는 10월 열리는 제18기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18기 전대) 이전에 가시화될지, 그 이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지 여부가 관건이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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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와>저우융캉만>
승자독식서 계파간 나눠먹는 과점체제 유지 … 제한된 경쟁 넘어선 보시라이는 '공공의 적'
1971년 9월 13일 마오쩌둥의 후계자였던 린뱌오가 쿠데타에 실패한 뒤 구소련으로 망명하다 몽골 상공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중국 언론은 사건 발생 이후에도 '린 부주석'이 마치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관련 보도를 계속 내보냈으며 40여 일이 지난 10월 24일에야 사건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 2월 6일 왕리쥔 사건이 발생한 후 중국 당국은 태도표시를 미루어 오다 40여 일이 지난 3월 15일 '양회(兩會)'가 끝난 후 보시라이를 충칭시 당서기 직에서 전격 해임했다. 4월 10일에는 정치국원도 해임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언론이 철저히 통제된 상황에서 장막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투쟁의 내막과 계파간 게임의 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마오쩌둥·덩샤오핑 승자독식 =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중국 지도부의 1세대와 2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들 세대는 '승자독식(winner-takes-all)의 룰'이 지배하는 1인 독재체제였다. 시장구조와 비교하면 독점시장과 같다. 1인의 전횡과 초과이윤이 반드시 뒤따른다.
마오쩌둥은 끊임없이 혼란을 조장하고 이를 활용해 죽을 때까지 권력의 정점에 머물렀다. 그는 집권기간 동안 자신의 카리스마와 의지로 당·정·군 모든 영역에서 독점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2세대 지도자인 덩샤오핑은 원로정치집단과 세력간 권력안배의 중심에 서서 마오쩌둥 못지않은 독점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군사위 주석이라는 명함 하나만 가지고도 자신의 사람들을 당과 정부에 심어 막후에서 조정해 최고 지도자로 군림했다. 특히 자신의 후계자로 장쩌민은 물론이고 후진타오도 지명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덩샤오핑은 1인 독재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자신이 지명한 장쩌민의 정당성과 카리스마가 취약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세대'라는 개념을 동원했다. 1989년 덩샤오핑은 톈안먼 사건 이후 당의 최고지도자로 중앙 무대에 정치적 기반이 별로 없었던 장쩌민을 발탁했다. 동시에 당내외의 의혹과 불안을 잠재우고 정치적 무게를 실어주기 위해 마오쩌둥을 제 1세대, 자신을 제 2세대 그리고 장쩌민을 제3세대의 핵심 지도자로 규정하면서 그를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촉구했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대에 중국의 권력구조는 독점에서 과점으로 전환됐다. 상하이방, 공청단, 태자당 등 각 계파가 권력을 나눠먹는 구조를 형성한 것이다. 과점체제는 독재와 다원적 정치체제 사이의 매우 불안정한 체제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게임의 룰을 운용하고 있다.
첫째는 권력 교체나 승계와 관련된 제도화를 통해 차기 권력을 둘러싼 예측가능성을 높였다. 종신제를 폐지하고 임기제를 도입했다. 최소한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군사위원회 주석은 모두 두 기(10년)를 기한으로 하고, 두기 10년 이후에는 바로 퇴휴 절차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2002년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가 시작되어 또 다시 칠상팔하(七上八下)의 원칙이 추가됐다. 즉 67세는 정치국위원으로 승진하거나 연임할 수 있지만 만 68세는 반드시 퇴휴해야한다는 원칙이다.
둘째는 지도그룹 내의 분업과 책임을 명확히 했다.
예를 들면 최고 권력집단인 9명의 중앙상무위원은 1위부터 9위까지 서열이 매겨져 있고, 담당 분야가 다르며, 주요 현안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동등한 발언권과 투표권을 행사한다. 후진타오는 외교·안보·대만문제, 우방궈는 입법, 원자바오는 행정부·경제, 자칭린은 통일전선, 리창춘은 선전·이데올로기, 시진핑은 당조직 관리 및 인사 등, 리커창은 재경·의료, 허궈창은 당 기율·반부패·감찰, 저우융캉은 공안·사법·국가안전 등을 분담하고 있다.
셋째는 '경쟁적 공존(competitive coexistence)관계'이다. 공청단, 태자당, 상하이방 등 주요 파벌들은 중국 공산당의 집권 지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공존과 제한된 경쟁이 허용된다.
◆과점체제는 취약한 과도기 권력구조 = 보시라이 사건은 '제한된 경쟁'의 범위를 뛰어 넘어 공산당 집권 기반을 뒤흔들었다는 데서 지도부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보시라이가 이러한 게임의 룰을 무시하고 쿠데타 음모를 진행 중이었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저명한 중국전문가 윌리 워 랍 람(林和立)이 보시라이가 지난 2월 인민해방군을 움직여 거사를 실행하기 직전까지 갔었다고 주장했다. 홍콩 유력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기자로서 중국 내부 상황에 관한 정확한 기사로 유명한 월리 워 랍 람은 일본 시사잡지 사피오(SAPIO) 5월9~16일자 최신호를 통해 보시라이의 쿠데타 기도와 관련한 내막을 소개했다.
윌리 워 랍 람은 베이징의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보시라이가 지난 2월 측근이던 왕리쥔 전 공안국장이 쓰촨성 청두 미국총영사관 앞에서 신병이 구속돼 베이징으로 압송된 사실을 알게 되자 충칭에 주둔한 인민해방군 부대를 동원하려 했다고 전했다. 당시 보시라이의 정변 계획이 사전에 누설, 저지됐으나 자칫하면 문화대혁명(1966~1976년) 시기에 잦았던 군과 민병 조직 등에 의한 무장충돌로 번질 수 있는 긴급한 상황이었다고 월리 워 랍 람은 강조했다.
후진타오와 계파가 다른 태자당, 상하이방이 모두 보시라이의 처벌에 동의한 것도 '제한된 경쟁'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외교소식통은 보시라이의 뒤를 봐주던 장쩌민 전 국가주석과 차기 최고지도자로 내정된 같은 태자당 출신의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가능하면 보시라이의 구속과 처벌을 피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왕리쥔이 미국총영사관에 가지고 들어간 기밀서류가 미국 정부에 넘겨져 마침 방미한 시진핑에게 그 존재를 확인한 탓에 그로선 보시라이를 구하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다.
보시라이 사건에 대해 중국 당국은 현재까지는 '형사사건'으로 한정지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사건이 정변에 준하는 권력투쟁으로 비화되고 있으며 그 범위도 보시라이에서 그를 비호한 정치국 상무위원인 저우융캉 정법위 서기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후진타오가 저우융캉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상무위원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게임의 규칙이 깨지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6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면에 고위층 동정을 소개하면서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중 저우융캉 소식만 제외시켰다. 이날 중국의 지역 언론 매체도 저우융캉만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4월 23일 초천도시보(楚天都市報)에는 저우융캉의 후베이(湖北) 방문을 보도하면서 제목 아래 저우융캉의 사진 대신 외줄 타기 사진을 게재했다. 이날 인민일보는 후진타오에서 허궈창에 이르기까지 정치 서열에 따라 기사 편집, 지면 배치, 글자 크기 등을 모두 세심하게 구성했다. 이런 상황에서 저우융캉 만이 빠졌다는 사실을 두고 그의 실각이 임박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보시라이는 양회 과정에서 기자들에게 자신이 충칭시에서 진행한 '창홍다헤이(唱紅打黑, 사회주의 문화는 고양시키고 불법폭력은 엄격히 근절)'가 저우융캉 등 윗선의 지지아래 진행됐음을 시사했다. 또한 왕리쥔이 미국 영사관에 탈출한 것과 같은 중요한 정보들을 모두 저우융캉을 통해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시라이 조사 과정에서 저우융캉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최근 홍콩과 해외 언론에 저우융캉과 관련된 거액의 횡령 및 음란 등 다양한 정보와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저우융캉 처리 여부가 관건 = 현재 후진타오는 시진핑과 중공 군부와 저우융캉, 보시라이의 지방 잔여세력을 숙청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4월 15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앙군사위원회에서 보시라이 모반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청두군구에 5개의 조사팀을 파견했다고 보도했다. 4월 23일 신화통신은 '악성종양을 제거하자'라는 후진타오의 문장을 발표했다. 이 글에는 "당의 악성종양을 제때 발견하고 제거해야 하며, 불합격한 당원에 대해서는 조직에서 제때 처리해야 한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는 후진타오가 얼마 전 제17기 중앙기율위원회 제7차 전체회의에서 한 강의 내용이다.

<보시라이와 함께="" 권력투쟁에서="" 밀린="" 위기에="" 놓인="" 저유융캉="" 상무위원="" 신화="연합뉴스">
최근 중국 관영 언론의 보도 방식을 볼 때 저우융캉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의 낙마가 오는 10월 열리는 제18기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18기 전대) 이전에 가시화될지, 그 이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지 여부가 관건이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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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와>저우융캉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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