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난신고 잦다고 보험사기범으로 몰아"
"참고인도 강제출석 의무 있다" … 경찰 거짓말수사에 10년 다니던 직장도 잃어
"도둑맞은 것도 속상한데 보험사기에 위조범이라니 기가 막힙니다."
해외에서 소지품을 수차례 도둑맞아 분실신고를 했다가 보험사기·문서 위조범으로 기소된 직장인이 억울함을 호소, 정식 재판을 청구하기로 해 '끼워맞추기식 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출장 도난 잦아 가입한 보험이… = 필리핀 소재 인력개발업체 한국지사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던 홍 모(37)씨는 본사 출장 때 마다 크고 작은 액수의 현금과 소지품을 도둑맞곤 했다. 필리핀의 치안이 한국보다 열악하기 때문이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출장 때마다 1회성 해외여행자 보험에 가입한 홍씨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해외출장을 12번 나갔고 그 중 5번 도난사고를 당했다. 방식은 다양했다. 현지 쇼핑몰에서 식사를 하다 지나가던 여성으로부터 음료수 세례를 받고 화장실에 잠시 다녀온 사이에 가방이 사라지는가 하면 호텔 앞에서 자동차, 오토바이 날치기를 당하기도 했다. 자동차 트렁크 안에 둔 물건마저도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 가져갔다. 주로 거래처 프레젠테이션(PT)을 위해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 캠코더, 노트북을 비롯해 선글라스 등 고가의 물품들이었다. 그와 함께 있던 한국인과 현지 동료들은 "마음놓고 다니질 못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홍씨는 현지인 본사직원에게 부탁해 현지 경찰에 도난신고를 하고 신고서를 보험사에 제출해 적게는 40만원, 많게는 100만원 가량의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참고인에 '으름장' 출석요구 = 그런데 도둑맞을 때 마다 신고를 한 게 화근이 됐다. 그가 가입했던 보험사 중 한 곳인 S화재가 "(홍씨가) 보험금을 허위 청구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며 인천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다.
2011년 3월초 인천지방 경찰청 외사과는 홍씨에게 전화를 해 "보험사기로 조사를 해야 한다"며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했다.
서울에 살면서 일하고 있던 홍씨는 "일을 해야 해 어렵다"며 "방문수사를 하거나 주소지 관할서로 이송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참고인은 강제출석의 의무가 없다. 그러나 경찰은 "참고인이라도 강제출석의 의무가 있다"며 "안 나오면 체포영장 발부해서 유치장에 2일동안 감금하고 출국정지를 시켜서 일도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홍씨가 서면으로 사유서를 제출하고 출석에는 응하지 않자 경찰은 인천지검에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피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됐다.
◆현지인 직원에 '거짓말' 수사 = 그러나 그해 5월부터 홍씨는 일을 팽개치고 서울과 인천을 수차례 오가야 했다. 경찰이 그를 사기·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입건, 피의자 신분이 됐기 때문이다.
홍씨의 도난사실이 거짓임을 입증하지 못한 경찰은 그해 7월, 홍씨가 보험사에 제출한 현지 경찰의 도난신고서가 위조됐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홍씨는 "약식 신고서의 경우 필리핀 현지 법률 절차를 아는 현지인들이 수수료를 받고 개인적으로 작성, 접수해주는 관행이 있다"며 신고서 작성을 대신 해 주던 현지인 본사직원과 본사 사장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그러나 수차례 시도 끝에 통화에 성공한 경찰은 "(현지인 직원이) 당신을 알지도 못한다더라. 당신이 문서를 위조한 게 아니냐"며 그를 압박했다.
확인 결과 경찰은 해당 직원 조사 과정에서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얼마 후 출장에서 홍씨를 만난 해당 직원은 "경찰이 당신이 감방에 있으며 나도 처벌을 받게 될 거라고 겁을 줘서 알은체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 사건으로 홍씨는 10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검찰은 지난 3월 홍씨를 벌금 300만원으로 약식기소했다.
◆경찰 "홍씨가 무죄입증 해야" = 홍씨는 오는 14일 법원에 이 사건과 관련한 정식재판을 청구할 예정이다.
그는 "주변 경찰·검찰 관계자들에게 모두 물어봐도 말이 되지 않는 수사라는 반응이었다"며 "경찰이 기획수사에 사건을 끼워맞추기 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인천경찰청은 당시 복수의 보험사기 사건에 대한 기획수사를 진행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찰은 홍씨에 대한 조사와 수사가 모두 적법했다는 입장이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인천경찰청 외사과 관계자는 "참고인이라 해도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의 성격이 강할 경우 강제출석 및 체포영장 발부가 가능하다"며 "현지 주재관을 통해 신고서가 위조임을 확인한 이상 무죄입증 책임은 홍씨에게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국내법상 현지 조사가 무리였기 때문에 홍씨를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참고인도 강제출석 의무 있다" … 경찰 거짓말수사에 10년 다니던 직장도 잃어
"도둑맞은 것도 속상한데 보험사기에 위조범이라니 기가 막힙니다."
해외에서 소지품을 수차례 도둑맞아 분실신고를 했다가 보험사기·문서 위조범으로 기소된 직장인이 억울함을 호소, 정식 재판을 청구하기로 해 '끼워맞추기식 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출장 도난 잦아 가입한 보험이… = 필리핀 소재 인력개발업체 한국지사에서 10년째 근무하고 있던 홍 모(37)씨는 본사 출장 때 마다 크고 작은 액수의 현금과 소지품을 도둑맞곤 했다. 필리핀의 치안이 한국보다 열악하기 때문이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출장 때마다 1회성 해외여행자 보험에 가입한 홍씨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해외출장을 12번 나갔고 그 중 5번 도난사고를 당했다. 방식은 다양했다. 현지 쇼핑몰에서 식사를 하다 지나가던 여성으로부터 음료수 세례를 받고 화장실에 잠시 다녀온 사이에 가방이 사라지는가 하면 호텔 앞에서 자동차, 오토바이 날치기를 당하기도 했다. 자동차 트렁크 안에 둔 물건마저도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 가져갔다. 주로 거래처 프레젠테이션(PT)을 위해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 캠코더, 노트북을 비롯해 선글라스 등 고가의 물품들이었다. 그와 함께 있던 한국인과 현지 동료들은 "마음놓고 다니질 못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홍씨는 현지인 본사직원에게 부탁해 현지 경찰에 도난신고를 하고 신고서를 보험사에 제출해 적게는 40만원, 많게는 100만원 가량의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참고인에 '으름장' 출석요구 = 그런데 도둑맞을 때 마다 신고를 한 게 화근이 됐다. 그가 가입했던 보험사 중 한 곳인 S화재가 "(홍씨가) 보험금을 허위 청구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며 인천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다.
2011년 3월초 인천지방 경찰청 외사과는 홍씨에게 전화를 해 "보험사기로 조사를 해야 한다"며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했다.
서울에 살면서 일하고 있던 홍씨는 "일을 해야 해 어렵다"며 "방문수사를 하거나 주소지 관할서로 이송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 참고인은 강제출석의 의무가 없다. 그러나 경찰은 "참고인이라도 강제출석의 의무가 있다"며 "안 나오면 체포영장 발부해서 유치장에 2일동안 감금하고 출국정지를 시켜서 일도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홍씨가 서면으로 사유서를 제출하고 출석에는 응하지 않자 경찰은 인천지검에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피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됐다.
◆현지인 직원에 '거짓말' 수사 = 그러나 그해 5월부터 홍씨는 일을 팽개치고 서울과 인천을 수차례 오가야 했다. 경찰이 그를 사기·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입건, 피의자 신분이 됐기 때문이다.
홍씨의 도난사실이 거짓임을 입증하지 못한 경찰은 그해 7월, 홍씨가 보험사에 제출한 현지 경찰의 도난신고서가 위조됐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홍씨는 "약식 신고서의 경우 필리핀 현지 법률 절차를 아는 현지인들이 수수료를 받고 개인적으로 작성, 접수해주는 관행이 있다"며 신고서 작성을 대신 해 주던 현지인 본사직원과 본사 사장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그러나 수차례 시도 끝에 통화에 성공한 경찰은 "(현지인 직원이) 당신을 알지도 못한다더라. 당신이 문서를 위조한 게 아니냐"며 그를 압박했다.
확인 결과 경찰은 해당 직원 조사 과정에서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얼마 후 출장에서 홍씨를 만난 해당 직원은 "경찰이 당신이 감방에 있으며 나도 처벌을 받게 될 거라고 겁을 줘서 알은체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 사건으로 홍씨는 10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검찰은 지난 3월 홍씨를 벌금 300만원으로 약식기소했다.
◆경찰 "홍씨가 무죄입증 해야" = 홍씨는 오는 14일 법원에 이 사건과 관련한 정식재판을 청구할 예정이다.
그는 "주변 경찰·검찰 관계자들에게 모두 물어봐도 말이 되지 않는 수사라는 반응이었다"며 "경찰이 기획수사에 사건을 끼워맞추기 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인천경찰청은 당시 복수의 보험사기 사건에 대한 기획수사를 진행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찰은 홍씨에 대한 조사와 수사가 모두 적법했다는 입장이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인천경찰청 외사과 관계자는 "참고인이라 해도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의 성격이 강할 경우 강제출석 및 체포영장 발부가 가능하다"며 "현지 주재관을 통해 신고서가 위조임을 확인한 이상 무죄입증 책임은 홍씨에게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국내법상 현지 조사가 무리였기 때문에 홍씨를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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