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가정의 달과 한국의 아버지들

지역내일 2012-05-16
박병현 부산대 행정대학원장, 사회복지학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가 쓴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희곡이 있다. 세일즈맨인 윌리 로먼은 대공황이 오기 전까지는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었다.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로먼은 영업을 잘해서 번쩍이는 차와 고급스런 새 집을 구입했고, 미래가 약속된 자랑스러운 아들까지 있는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그야말로 잘나가는 세일즈맨이었다.

그러나 대공황은 로먼의 인생을 서서히 어둡게 만들었다. 과거처럼 영업이 잘 되지 못해 세일즈맨으로서의 로먼의 입지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가 자랑스러워했던 아들은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면서 사회에서 낙오되고 있었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인해 로먼은 업적을 쌓지 못해 직장에서 해고되었고, 아들 역시 사업을 계획했지만 실패했다. 로먼은 소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면서 현실에서 도피하게 되고, 현재와 과거를 계속 오고 가며 과거의 일들에 대한 회한을 느낀다.

세일즈맨으로서 무능했으며, 아버지로서도 존경받지 못했던 그는 보험금을 가족들에게 남겨 줌으로써 자신이 이루지 못한 아버지 노릇을 하기 위해 달리는 차에 뛰어든다.

이 작품은 비록 194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지만 현재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로먼이 부자가 되는 것이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했듯이 한국에서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그러나 봉급을 받는 근로자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부자가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아버지는 세일즈맨으로 때로는 봉급 근로자로 20년, 때로는 30년 이상 일하면서 열심히 살았지만 어느 날 문득 눈을 들어 바깥을 바라보니 언제 지었는지 높은 고층건물들이 나의 조그만 집을 에워싸고 있다.

가정과 사회 중간지점에서 서성거려

순간 경제적 박탈감과 함께 정체성 위기를 느낀다. 주변의 어떤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재테크에 능해 재산을 늘려가지만 대부분의 한국의 아버지들은 재테크를 할 여유자본도 없거니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마저 다 날릴까봐 겁이 나서 투자를 하지 못한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특권을 이용해 재산을 엄청나게 증식해 가는 것을 보면 한없는 상실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이가 쉰을 넘어 직장에서 퇴출될 날이 다가오지만 넉넉하게 재산을 모아두지 못한 아버지들은 이제 대학을 졸업했거나 아직 다니고 있는 자식들을 보면서 마음이 한없이 우울해진다.

돈은 없더라도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가정에 충실하는 것이다. 집에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거나 공부도 꼼꼼히 챙겨주고, 주말이 되면 집안 청소를 하거나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등산이나 여행도 가고,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면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직장 문화는 가정에 충실한 아버지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한국의 아버지는 가정과 직장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직장에 붙어 있으려면 직장문화에 충실해야 한다. 야근도 해야 하고 회식자리에도 빠져서는 안된다. 이러한 직장문화는 아버지를 가정에서 분리시키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아버지들은 가정과 사회의 중간 지점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아버지는 가정과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임에도 두 어깨 위에 얹힌 삶의 무게로 인해 외로움과 정체성의 위기를 느끼며 살아간다.

성실히 일하면 잘 살 수 있어야

나이가 쉰이 넘어 언제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름진 얼굴에 가정과 직장 중간 지점 그 어딘가에서 고개를 숙이고 서성거리고 있는 사람이 한국의 아버지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이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여겨지는 때이다. 가정이 건강해야 국가도 강해질 수 있다. 가정이 건강하려면 무엇보다 아버지가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아버지가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성실히 일을 하는 사람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일 것이다. 가정의 달에 아버지의 가치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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