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21기의 원전이 돌아가는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원전대국이자 원전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전체 전력중 원전 비중은 사고 전 일본과 같은 30%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인류사에 기록될 중대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원전대국 일본이 1년 사이 54기의 원전 모두를 멈춰 세운 것이다. 폭발로 서 버린 후쿠시마 제1원전의 4기에 이어, 장기점검을 위해 차례차례 가동을 중지해, 지난 5일 마지막으로 호카이도의 도마리원전 3호기가 멈췄다. 지자체와 주민들은 점검을 마친 원전이 다시 가동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일본은 '원전 제로' 상태가 되었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등이 탈원전의 길을 가고 있지만, 신규 원전을 짓지 않고 수명이 다한 원전을 퇴출시킴으로써 순차적으로 줄여가는 방법이다. 그런데 일본에선 수요 전력의 30%를 감당하던 원전 모두를 한꺼번에 꺼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풍요와 편리에 중독된 현대인이 과연 엄청난 불편을 감수하고 원전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일본의 '원전 제로'가 아무런 갈등 없이 진행된 건 물론 아니다. 일본정부를 비롯해 원전추진파들은 모든 원전이 멈추는 것만은 막아보려 무진 애를 썼다. 서해안에 위치한 후쿠이현 오이원전 3,4호기를 4월중에 재가동하려는 노력을 마지막까지 기울였으나, 지역주민과 여론의 완강한 반발에 부닥쳐 포기해야 했다. 추진파들은 올여름 끔찍한 전력부족사태가 올 거라며, 꺼져가는 원전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원전 제로'… 54기 모두 멈춰
하지만, 국민 여론은 이번 기회에 탈원전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다. '마이니치신문'이 원전이 멈춘 날부터 이틀 동안 전국의 10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올여름 전력사용이 제한된다면 참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74%가 '참을 수 있다'고 답했다. 정기점검이 끝난 원전의 재가동에 대해서도 반대(63%)가 찬성(31%)의 2배를 기록했다. 국민은 또 정부의 원전정책에 극심한 불신을 드러냈다. '원전의 재가동 여부를 결정하는 정부의 판단기준을 믿느냐'는 질문에 '믿지 않는다'는 대답이 77%였다. '마이니치신문'은 "정부는 원전 재가동을 서두르지만, 민심은 탈원전으로 강하게 기울었다"고 평가했다.
작년 여름 도쿄에 갔을 때, 전력부족에 대처하는 일본인들의 담담하고도 결연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내가 묵었던 호텔의 엘리베이터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고객의 양해를 구함. 1, 본 호텔은 전력 15%를 절약하고 있음. 2, 객실의 에어컨은 28도로 해주시기 바람. 3, 외출시엔 에어컨을 꺼주시기 바람. 켜 있으면 청소 때 끄겠음. 4, 현관 등 일부 시설의 불을 끄겠음. 5, 직원들의 넥타이를 매지 않은 반팔셔츠 차림을 양해해 주시기 바람."
원전 가동중지는 자연스럽게 자연에너지 확대로 연결되고 있다. 파산한 골프장이 태양광 발전소로 변신하는가 하면,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은 몽골 고비사막 등에서 태양광·풍력발전으로 생산한 대규모 자연에너지를 아시아 각국이 공유하는 '아시아 수퍼그리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오는 7월 자연에너지전량매입제도를 도입한다.
원전 없이 올여름을 지내고 나면, 일본은 '탈원전 자연에너지 혁명'을 향해 확실한 발걸음을 내딛게 될 것 같다. 지난 5년 마이너스성장을 벗어나지 못한 원전산업과는 대조적으로 자연에너지는 세계적으로 매년 10~60%의 고성장을 계속하고 있어 일본의 불편한 여름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자연에너지 확대 … 전화위복 될수도
1979년3월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가 난 후, 스웨덴은 국민적 토론을 거쳐 꼭 1년 뒤인 1980년3월 '원자력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그에 따라 30년 후인 2010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기하기로 했다.
21기의 원전이 돌아가는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원전대국이자 단위면적당 원전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전체 전력중 원전의 비중은 사고 전 일본과 같은 30%다. 일본의 '실험'은 그저 남의 나라 소식이기만 할까? 일본처럼 회복불능의 사고를 겪은 후 황망한 탈원전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스웨덴처럼 스스로의 선택으로 계획된 탈원전을 할 것인가, 두 길이 우리 앞에 있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