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한국일보 주필
한 나라의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은 출세의 극점을 성취한 것이다. 민주화된 현대 사회에서일지라도 확실한 신분상승 보증서를 획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자신이 태어나지 않는 나라에서 여성의 신분으로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된다면 더 이상 군말이 필요 없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입양아 출신으로 프랑스의 장관이 된 플뢰르 펠르랭(39)과 필리핀 태생으로 한국의 국회의원이 된 이자스민(35)은 관심 대상이다.
한국의 신문마다 플뢰르 펠르랭이 올랑드 대통령에 의해 프랑스의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 장관에 발탁됐다고 1면에 대서특필했다. 물론 대서특필한 이유는 한국 피를 가진 사람이 그 콧대 높다는 나라의 장관이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고 대견스러워서일 것이다.
한국 미디어들은 그녀가 한국에서 달고 갔던 이름 '김종숙'을 프랑스식 족보에 그대로 쓰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그가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를 그의 학력과 경력을 통해 자상하게 설명했다. 한국 인종의 우수함을 확인하고 또 자랑하고 싶어 하는 국민 의식을 염두에 두고 무언가를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입에서 한국말 한 마디만이라도 듣고 싶었던 것 같고, 한국에 대한 특수한 정서를 끌어내고 싶었던 듯싶다.
그러나 펠르랭 장관은 한국인이라는 감정이 묻은 말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한국을 IT강국으로 인식한다는 것 외에는 한국과 관련된 별다른 생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얼굴은 동양인이지만 정서와 의식구조는 완전 프랑스인인 것 같다.
그렇다고 섭섭해 할 필요가 없다. 그녀는 프랑스인이다. 한국인 부모로부터 몸을 받았지만 생후 3일만에 거리에 버려졌고 6개월만에 프랑스 가정에 입양됐다. 원자물리학을 공부한 사업가를 양아버지로 둔 그녀는 부모로부터 '플뢰르'(꽃)라는 이름을 받고 완전 프랑스적 환경에서 자랐으니 입양아라는 사실에 대한 그녀의 심리는 매우 복잡할 것이다. 마치 스티브 잡스의 심리와 흡사한 것이 아닐까.
펠르랭 장관이지 김종숙 장관 아니다
우리나라의 재외국민이 이제 약 300만 명(외교통상부 파악)에 달하고 뿌리에 근거한 재외동포는 700만명으로 추산된다. 귀화한 나라의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나왔다. 앞으로 더 많은 장관도 나오고 일본처럼 대통령도 나올지 모른다.
좀 쿨해질 필요가 있다. 그녀는 플뢰르 펠르랭 장관이지 김종숙 장관이 아니다. 혹여 펠르랭 장관이 한국을 방문하여 그가 태어난 나라의 모습을 보게 되면 뿌리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지 모른다. 그녀에게서 억지로 한국을 찾으려고 소란 떨 필요는 없다.
펠르랭 장관의 출현과는 대조적으로 필리핀 태생의 여성 이자스민이 한국의 제19대 국회에 곧 입성한다. 그녀는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귀화한 사람이다. 펠르랭 장관이 한국인의 정서상 대견스러워 보이는 존재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자스민은 조국 필리핀에게 역시 자랑스러운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이자스민의 국회 진출은 펠르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의미가 있다. 우리 헌정 사상 최초로 귀화 외국인이 헌법기관이 된 것이다. 프랑스의 각료구성이 변화하는 것에 비하면 덜하지만, 정치권력의 배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불법체류자 포함)은 약 140만명으로 추산된다. 강원도 인구와 비슷하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여성들이 국제결혼으로 들어오면서 우리 사회는 급기야 다문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이들이 장차 한국 사회에 던질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파장은 지금 세대가 느끼는 것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증)나 외국인이 제기하는 도전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숨차게 돌아가는 총선 선거판에서 300명 중 1인인 이자스민의 등장을 단순한 흥밋거리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새누리당이 이자스민을 비례대표 당선권 내에 배치하는 것을 보면서 12월 대선을 겨냥한 선거 전략이 느껴졌다. 귀화인 유권자 약 10만명과 뒤에 있는 가족들이 떠올랐다.
보수가 먼저 다문화사회 받아들여
미국을 보면 소수민족을 포용하는 것은 진보의 울타리인데 우리나라는 보수가 먼저 손을 댔다. 다민족 가정의 표가 어디에 정착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앞으로 여야 정당은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며, 한국의 스펙트럼 속에서 외국인 공동체도 복잡해질 것이다.
펠르랭 장관의 등장을 통해 우리는 민족적 다양성을 가진 서구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고, 이자스민의 한국 국회 진출을 계기로 우리의 다문화 사회가 직면할 도전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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