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총선을 전후해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필리핀계 한국인 이자스민씨에 대한 인신공격성 폭언들이 쏟아져나와 논란이 됐습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본인이 폭언도 많았지만 격려는 더 많았다며 한국사회의 포용성에 감사한다는 매우 현명한 태도로 받아들여 일단 수습이 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어 나타난 보도를 보면 이 문제가 이자스민씨 한사람에 대한 막말 차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엉뚱하게도 우리사회에 제노포비아(Zenophobia ; 외국인 혐오증)현상이 싹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일이 계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는 지난 2010년 7월 28일자 본란에서 '약자를 학대하는 이상한 나라'란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한국인의 이상한 습성중에 약자를 학대하는 경향이 있다는 개탄의 글이었습니다. 몽골이나 청나라에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다 늙어 고향에 돌아오면 '화냥년'(還鄕女)이라고 해서 내쫒았고 종군 위안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북한에서 탈출해 겨우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차별을 받는다고 합니다. 약자를 보호해주기 보다 학대하는 이런 현상은 우리 민족이 고쳐야 할 아주 고약한 버릇이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은 약자에 대한 차별 차원이 아니라 제노포비아의 성격까지 띠고 있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도를 보면 백인 영어원어민 교사들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면 뒤를 밟고 위협하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은 "영어 좀 한다고 각종 혜택을 받으며 쉽게 돈 버느냐" "네가 뭔데 국회의원까지 하느냐"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한국사람인 자기도 못하는 것을 외국인인 너희들이 하느냐는 자기콤플렉스의 역발산일지도 모릅니다.
한발 더 나아가 "저급한 이민자들이 한국인과 결혼해 민족의 혈통을 말살하고 있다"에 이르면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한민족은 단일 혈통 아니다
이런 위험천만한 생각은 한민족이 단일민족이라는 가설에 기초하고 있는 듯합니다. 교과서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한민족은 비교적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일민족이 아닙니다.
고대 삼국시대에서부터 외래인의 피가 꾸준히 섞여 왔고 고구려는 만주에서 출발했습니다. 민족이란 개념도 근대에 이르러 생겨난 것입니다. 또 단일민족, 순수혈통이란게 결코 좋은 것도 아닙니다.
1992년의 LA폭동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흑백 분쟁이 한인들에 불똥이 튄 것은 평소 우리 교포들이 흑인들을 차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백인들에 이런저런 차별을 받고 사는 사람들이 흑인을 차별한다는 것은 속 보이는 일 아닌가요.
일제시대 조선사람들이 일본인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차별을 받았습니까. 차별을 넘어 멸시는 또 어떠했고요. 1923년 일본 관동 대지진때는 조선인들이 조직적으로 살해됐습니다. 피해자가 수천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피해를 당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자기보다 얼굴색이 좀 다르다고, 불과 몇십년 전까지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데 지금 형편이 조금 폈다고, 자기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괄시하고 핍박하는 것은 요즘 인기있는 TV프로 '개콘'만큼이나 웃기는 일입니다. 제노포비아의 원조라 할 미국의 백인 우월주의 비밀결사인 KKK(Ku Klux Klan)는 그나마 이해를 하고 넘아갈 수도 있습니다.
남북전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극적이었습니다. 남북 합해 전체인구 3000만명이었던 당시 양쪽에서 무려 60만이 전사했습니다. 남부의 백인들은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노예해방에서 풀려난 흑인들을 혐오하는 백인결사가 탄생한 것입니다. 독일의 나치(Nazism)도 마찬가지입니다. 1차대전에서 패하고 천문학적인 전쟁배상금에 몰려있던 독일은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었습니다.
편견, 싹부터 잘라야 한다
미국의 KKK, 독일의 나치가 인류역사에 어떤 죄악을 남겼는지는 다 아는 일입니다. 이 시대, 이 땅에서 제노포비아란 시대착오적이고 자기 기만적입니다. 혹시 졸부심리는 아닐까요. 못난 자기를 위로하려는 보상심리가 곁들여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언제나 일탈자들이 있는 법입니다. 한국에서도 제네포비아의 싹이 자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만에 하나 그렇다면 근본부터 잘라야 합니다. 역사에 커다란 죄를 짓는 일입니다. 사법당국은 물론 교육, 언론이 나서서 싹이 자라지 못하도록 지금 바로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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