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이사
벌써 30년이 지났다. 1970년대 말 덴마크에 8개월 가량 체류했다. 사회민주주의국가의 모범인 그 사회의 모든 것이 신기했다. 오늘날 우리가 따르려고 하는 복지제도가 이미 그 시대에 보편화되어 있었다. 근로와 자산에 따른 빈부의 격차가 크지 않게 사회가 디자인되어 있고 그를 바탕으로 기본적인 교육 보육 의료 주거 등이 큰 차등없이 제공되고 있었다.
정부에 신청했던 아파트가 드디어 나왔다면서 우리를 초대한 대학생부부의 집에 갔는데, 아파트가 넓고 환하고 좋아서 깜짝 놀랐다. 그 며칠 전 갔던 50대 의사의 좁고 오래된 아파트보다 훨씬 좋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기네는 아이가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의사도 대학생도 그 사실에 별다른 모순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소득의 50%가 넘는 세금을 내면서 억울해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것이 다 자신들에게로 돌아온다고 믿었다.
보편적 복지라 하여 서비스가 모두 획일적인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내기 싫은 부모들끼리 일종의 조합같은 것을 만들어 신청하면 학교로 인정하고 교사인건비니 교재비 같은 필요경비를 지급했다.
내가 알던 한 가족도 이미 10여 가족과 함께 장소를 빌려 일종의 가정교육을 시켰다. 이 가족들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함께 돈을 모아 자그마한 학교부지를 마련했고 드디어 건설단계에 들어가게 됐다고 했다.
평등했지만 집단주의적 획일화는 없었다. 공동체의 바탕위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최대한 뒷받침 해주는 사회였다. 이 속에서 사람들은 검박했고 합리적이었고 소수자에게 관대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삶은 편안해 보였다.
우리나라에 돌아 왔을 때 대한민국은 부동산 광풍이 불고 있었다. 버스를 타도 다방에서도 사람들이 땅, 땅 얘기만 했다. 독재와 노동자의 피땀과 산업화의 역군과 고도성장과 민주화의 시대를 거쳐 우리는 분명히 잘 살게 됐다.
평등하지만 집단주의적 획일화 없어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보다 더 깊숙이 미국식 경쟁사회에 빠져들었다. 성공한 미국의 멋있는 면만 보고 들으며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불안하다. 현재 생활불안, 늙은부모 봉양불안, 자신의 노후불안, 자식의 장래불안 등이 우리를 덮친다. 가족 공동체는 무너져가고 '믿을 것은 나밖에 없는데 나는 자신이 없다'라는 좌절감에다 세계적 금융위기까지 겹쳐 중산층이라고 할 계층에게까지 위기감이 퍼져간다.
그러면서 막연하나마 "이게 아닌데 … 뭔가 다른 사회는 없을까"하는 생각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복지가 시대의 최대 화두가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파탄을 목도하면서 국민들은 이 흐름이 거의 국가개조 수준의 변화를 부를 것임을 머지않아 깨달을 것이다. 나라마다 역사와 주어진 조건이 달라 변용은 불가피하겠고 그 나라들도 이런 저런 문제는 있겠지만 그 개조의 방향잡기에서 북유럽식 사회구성은 중요한 본보기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중차대한 작업을 담당해야 할 정치가 과연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정책 하나하나가 유기체처럼 얽혀서 하나를 단독으로 떼서 세울 수 없는 것인데 그저 표 될만한 것 잡아서 이것 불쑥, 저것 불쑥 내놓는 것은 아닌가.
최근 보육 현장에서 난리가 난 0-2세 영유아 보육비 지원정책도 땜방식 정책의 표본이라 할만하다. 지자체도 자체예산 배정을 거부한 데다 현장의 부작용도 속출하니 정부가 6개월만에 철회할 거라는 소식이 나온다.
보육, 특히 영유아기 보육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다. 북유럽이 아버지에게 12주의 출산휴가를 법률로 강제하듯이 무엇보다 아이의 발달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한 양육 철학이 기본이다.
숲과 나무 동시에 보는 혜안 있어야
한 사회의 방향을 개조 수준으로 튼다는 것은 정말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는 혜안과 면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스웨덴도 거의 30년에 걸쳐 이 작업을 해냈다 한다.
기나긴 토론을 거치면서 정치인도 국민도 같이 성숙해 가는 과정을 거쳤다. 그만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유기적으로 제도와 의식이 결합되어 있지 않겠는가.
전체 밑그림도 없이, 예산계획도 없이 지자체의 교감도 없이 그저 표 되면 하고 보자는 식의 단발성 정책도 자꾸 하다보면 뒤죽박죽 개조가 된다. 보편적 복지사회로 분명히 방향을 틀되 전체를 보면서 꾸준히 나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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