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내가 여왕이다’] 좋은 아내이자 어머니였던 빅토리아여왕

지역내일 2012-06-15

허영섭/칼럼니스트

역사의 아침/캐럴리 에릭슨 지음/박미경 옮김/1만2000원

이 책은 통치 업적보다는 오히려 남편에 대한 아내로서, 또는 어머니와 할머니로서 빅토리아 여왕의 솔직한 개인적 면모를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하여 '다이아몬드 주빌리' 축하행사가 열리던 그날, 런던 거리에는 초여름날의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고 있었다. 시종의 부축을 받으며 여왕이 꽃으로 장식된 마차에 오르자 밀집한 군중 가운데서 누구랄 것도 없이 일제히 노래가 터져나왔다. 즉흥적인 합창이었다. "신이시여, 우리의 여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our gracious Queen) …."

"격한 감정의 파도가 군중을 압도했다. 그들에 대한 애정과 감동, 자부심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마차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처럼 작은 여왕에게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빅토리아는 제국이었다. 빅토리아는 왕실을 대표했다. 빅토리아는 대영제국이었으며, 그녀의 영광은 곧 제국의 영광이었다."

1897년 6월 22일, 빅토리아 여왕이 일흔여덟의 나이로 대관식 60주년을 맞이하던 장면을 미국의 전기작가이자 역사학자인 캐럴리 에릭슨은 '내가 여왕이다(원제 Her Little Majesty; The Life of Queen Victoria)'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영국 국왕으로는 처음으로 즉위 60주년의 테이프를 끊었던 빅토리아 여왕에 대한 기록임은 물론이다. 마치 소설처럼 가벼운 문체를 따라 영국 왕실의 문틈을 흥미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전기 작품이다.

며칠 전 즉위 60주년을 맞이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경우에서 보여지듯이 왕실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존경심과 애정은 각별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템스강에서 호위선을 앞세우고 남편 필립공을 비롯해 왕실 가족들과 수상 퍼레이드를 펼치며 손을 흔들거나, 버킹검궁에서 열린 축하 콘서트에 우아한 미소를 머금고 입장하는 순간 쏟아진 뜨거운 환호와 축하 박수에서도 또다시 확인된 사실이다. 이번 축하행사가 열리는 동안 영국 전역에서는 국기인 유니언잭으로 물결을 이뤘을 정도다.

유럽 각국에서 군주제가 거의 퇴색해 버린 요즘에도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인기가 여전한 것은 국가통합과 전통적인 가치 수호에 앞장서며 시민들에게 봉사하는 이미지로 흔들리지 않는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국 왕실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소수 의견에 불과할 뿐이다.

영국의 역대 국왕 가운데서도 빅토리아 여왕은 무려 64년 동안이나 군림하며 영국을 최고의 번영기로 이끌었던 주인공이다. 크리미아 전쟁과 아편전쟁에서 승리를 거뒀고, 세포이반란도 무난히 진압했다. 이밖에 산업혁명으로 경제발전이 이뤄졌고, 참정권이 확대됐으며 국민교육이 널리 보급된 것이 그녀의 집권 시기였다.

후세의 역사가들이 '빅토리아 시대'라고 부를 만큼 획을 긋는 중요한 기간이었다.

그랬던 만큼,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 축하행사 때도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버킹검궁에서 세인트폴 대성당까지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가는 길에는 구경꾼들로 발디딜 틈없이 들어찼다"고 저자는 기록하고 있다. 길가의 지붕과 창문에도 사람들이 빽빽히 매달려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백내장으로 시야가 흐릿해진 여왕의 눈가에도 감회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처럼 빅토리아 여왕은 권력과 명예는 물론 물질적인 풍요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것을 누렸다고 해도 그렇게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슬픔과 번민, 좌절감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이 책은 통치 업적보다는 오히려 남편에 대한 아내로서, 또는 어머니와 할머니로서 빅토리아 여왕의 솔직한 개인적 면모를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선 어린 시절부터가 그렇게 행복한 편은 아니었다. 그녀가 기품과 교양미를 잃은 적은 없지만, 생활은 빈곤했다. 울적할 때면 다른 소녀들처럼 인형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달래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면서도 독일 하노버 왕가 출신인 어머니의 통제 아래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지내야 했다. 조지 3세의 넷째아들인 아버지 켄트공은 그녀가 두 살때 사망했다.

사실은, 왕위 계승권으로부터 그렇게 가까운 편도 아니었다. 왕실의 남자들이 적자를 두지 못했거나, 거의 요절하는 바람에 백부인 윌리엄 4세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하게 됐던 것이다.

그녀의 나이 열여덟 살이던 1837년의 일이다. 빅토리아는 왕위에 오르던 날 "나는 조국을 향해 내 임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라고 일기에 적었다.

왕위에 오르고 3년 뒤에는 앨버트 공과 혼인식을 올리고 9명의 자녀들 둠으로써 가정생활에 만족한 듯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남편이 결혼 20년 만에 마흔둘의 나이로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하게 됐던 것이다. 그녀가 한동안 버킹검 궁전에 틀어박혀 나랏일에서 물러나 앉았던 것도 남편을 잃은 슬픔 때문이었다.

여왕은 앨버트 공을 잃은 뒤 "마치 영혼과 육체의 절반을 찢겨버린 것 같다. 내 눈에서는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고 슬픔을 드러내곤 했다. 남편이 사망한 이후에도 하녀에게 그의 옷을 생전처럼 챙겨두라 했으며, 아침마다 남편이 쓰던 대야에 새 물을 받아두도록 일렀을 정도다. 더구나 막내아들인 리어폴드 공작은 혈우병을 앓고 있었다.

더구나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기간이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번영과 풍요로 가득찼던 것만은 아니다.

당시 수상을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영국에는 두개의 왕국이 있다. 하나는 부유하고 다른 한 나라는 지독히 가난하다"라고 썼을 만큼 빈부격차가 컸다. 뿐만 아니라 잊혀질 만하면 콜레라가 휩쓰는 바람에 그때마다 수천명씩 목숨을 잃기도 했다.

세계 역사에서 대영제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로 일으켜 세웠던 빅토리아 여왕.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도 아시아, 아프리카의 약소국들을 무력으로 정복하여 정치·경제적으로 착취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빅토리아 여왕이 이끌었던 19세기 영국의 영광은 그 배경에 짙은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빅토리아 여왕은 여든두살이 되던 1901년 1월 22일,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 데이비슨 대주교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따라 윈저성 안의 프로그모어에 지금도 나란히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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