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재 칼럼] 정부가 에너지 낭비를 ‘선도’하는 나라

지역내일 2012-05-25

본지 논설고문

국회 앞을 지나다가 경내에 멋진 새 건물이 들어선 것을 보았다. 며칠 후 신문에서 그것이 제2의원회관이며, 얼마나 호화스럽게 지어진 건물인지 알았다. 300명이 쓸 건물이 10층 높이에 연면적이 10만 평방m를 넘는다니 호사스러움에 짐작이 간다. 더러 의원회관에 가보았지만 옹색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 했는데, 왜 그런 회관이 또 필요한지 모르겠다.

서울시 신청사 건물도 모습을 드러냈다. 구 청사 뒤편에 13층 규모로 짓는 공사장 가림막이 철거되어 새 얼굴을 보게 되었다. 역시 날렵하고 멋진 건물이다. 10월부터는 입주가 시작된다 하니, 서울의 새로운 랜드 마크가 될 것이다.

대표적인 공공청사의 호사스러움을 탓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유리로 된 두 건물 외벽이다. 유리는 열 전도성이 강해 단열재를 사용한 벽면에 비해 에너지 손실률이 5~8배 높다고 한다. 노천에 세워둔 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걸 때 몸에 와 닿는 열기와 한기, 그것을 에어컨으로 식히거나 데우는 일상의 경험만으로도 두 건물의 에너지 소비량에 짐작이 간다.

냉난방은 하루 이틀 하고 마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려면 그 건물이 존재하는 한 거의 연중 가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리 건물이 그 둘뿐이라면 예외로 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새로 짓는 공공건물은 예외 없이 유리빌딩이니 문제다. 시골 군청과 의회건물까지 그렇게 지어 놓을 것을 보고 에너지 과소비를 걱정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서울 도심지와 강남과 여의도, 그리고 지방 중요도시 중심가에 들어서는 민간 건축물까지 날씬한 유리빌딩 경쟁이다. "정부가 하는데 나는 왜 못 해!" 하는 것 같다. 그 많은 유리건물들이 잡아먹을 에너지를 생각하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지난 20년 동안 1인당 전력소비가 4배 늘어난 까닭을 이제 알겠다. 경제대국 일본보다 에너지 소비량이 30% 많다고 한다.

의원회관과 서울시 신청사의 '유리벽'

이 문제에 생각이 미칠 때마다 작년 이맘 때 일본에서 겪은 일이 떠오른다. 도쿄 지하철은 무덥고 컴컴했다. 승객이 너무 많아 서서 가기가 고통스러웠다. 정부의 절전시책으로 배차간격이 늘어나 '콩나물 시루'처럼 되었는데도 차내 온도를 28도로 높인 탓이었다. 승강장과 차내가 어두운 것은 조명등을 반 이상 껐기 때문이었다.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피해로 후쿠시마 원전 가동이 중지된 이후, 안전점검을 위해 여러 원전이 멈추었던 것이다.

도쿄전력 산하 발전시설의 일제 점검과 정비로 인한 전력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정부는 계획정전이라는 전에 없던 시책을 단행했다. 수도권을 5개 권역으로 나누어 하루에 몇 시간씩 강제로 정전을 시키지 않고는 에너지 성수기를 건너갈 길이 없었다 한다. 7월 1일부터는 전력사용 제한령이 떨어졌다. 전력사용이 많은 공장 업소 공공시설 등은 의무적으로 전력 15% 절감에 동참하라는 강압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잘 견뎌냈다. 계획정전 지역에서는 신호등까지 꺼져 교통경찰의 수신호에 의존했다. 지시에 따르지 않는 차를 보기 어려웠다. 사고도 늘지 않았다. 배로 늘어난 지하철 배차간격에도, 미적지근한 자판기 음료에도 불평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표적인 관광지 닛코(日光)는 썰렁하기만 했다.

일본인들이 참을성이 많은지는 모르겠다. 미증유의 대재앙을 이겨내야 한다는 자각의 작용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부의 솔선수범이다. 정부가 에너지 절약에 앞장서기 때문에 국민이 따라준 것이다. 에너지를 아끼는 기업과 기관을 포상하고, 많이 쓰는 시스템은 아예 허락하지 않는다. 공공청사를 에너지 과소비 건물로 짓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일본과 같은 불행이 없었던 우리는 작년 9월 블랙아웃 사태를 겪었다. 전기 없는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불편한지 절감했다. 참담한 폐허를 딛고 일어선 일본과 너무 대조적이었다. 창문을 열어놓고 냉방기를 가동하는 식의 '에너지 무신경'이 초래한 경고 사이렌이었다.

일본은 정부가 솔선수범, 국민 따라가

올해는 사정이 더 나쁘다. 고장과 점검 등으로 원전과 화력발전소 4곳이 가동을 멈추어 생산량이 19%나 줄었는데도 전기 사용량은 오히려 늘었다. 위기를 느낀 김황식 총리가 얼마 전 특별담화를 통해 에너지 절약을 호소했다. '비상한 관심을 가져달라' '사정이 절박하다' 같은 표현을 쓴 걸 보면 얼마나 급한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전기를 아껴달라는 말뿐, 정부가 어떤 정책으로 문제를 근원부터 풀겠다는 말은 없었다. '에너지 먹는 하마' 같은 건물을 규제하지는 못 할지언정, 정부가 앞장서 에너지 과소비를 선도하면서 국민에게만 '아껴라, 아껴라' 한다고 영이 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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