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학순/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12월 대통령선거까지 임기가 대여섯 달밖에 남지 않은 이명박정부가 오만하게도 또 일을 저질렀다. 국가안보와 경제가 무너지는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26일 국무회의에서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체결안을 '대외비'로 통과시켰다.
국무회의는 이를 안건 목록에도 올리지 않고 '즉석안건'으로 상정하여 국민이 모르는 사이에 졸속 처리했다. 그리고 일본과의 군사협력에 대한 국민정서의 민감성을 고려하여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이라는 명칭에서 '군사'라는 표현을 삭제하여 통과시켰다.
하루 뒤인 27일 외교부에서 처리 사실을 인정할 때까지 정부는 '즉석안건이라 몰랐다' '실수로 비공개했다' '아직 처리하지 않았다'는 등 거짓과 변명으로 일관했다. 이번 협정은 조약이 아니어서 국회에서 비준을 받을 필요도 없어 양국 외교부 간에 서명하면 체결이 완료된다. 빠르면 내일(6월 29일) 협정에 서명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번에 이명박정부의 행위는 두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첫째, 그 동안 입버릇처럼 국격(國格)을 따지던 이명박정부가 한·일 군사정보협정을 자기 국민을 속이면서 비밀리에 처리하는 만행을 저지름으로써 이명박정부의 품위와 정체성문제를 다시 한번 제기했다.
이명박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이명박정부 출범 후, 중국에 대한 홀대와 미국과 일본에 대한 우대가 뚜렷해졌을 때, 당시 주한중국대사관 고위관료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한미관계는 동맹관계이기 때문에 한국의 소위 친미정책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으나, 중국을 배척하면서 친일정책을 편다는 것은 21세기 동아시아 국제정치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국민을 속이면서 비밀리에 처리
우리나라가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러시아 등 많은 국가들과 군사비밀보호협정을 맺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일본과는 안되는가?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일본이라고 특별히 안될 것은 없다. 그러나 한·일 관계는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 역사요 현실이다. 일본은 군사력으로 우리나라를 강점했던 나라이고, 역사 문제, 영토문제, 일본군위안부 문제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해결한 것이 없다. 일본은 지금까지 진정한 사과도 제대로 된 배상도 하지 않았다.
둘째, 이번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은 미국의 강권과 전략 하에서 이뤄졌다. 이명박정부는 올 4월 로켓발사 이후 북한 관련 고급정보 취득을 위해 한·일 군사정보협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정부는 군사정보공유가 미·일, 한·미 양자 사이에서 배타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MD 구축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체결을 강권한 미국의 목적은 이를 통해 한·미·일 3국 미사일방어(MD) 구축 등 3국 군사협력을 강화, 중국을 포위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한·일 군사정보협정을 통해 중국을 포위하는 미국의 전략을 도와줌으로써 안타깝게도 한반도와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대결구도로 심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까지 동원한다. 2006년 11월 라트비아(Latvia)의 수도 리가(Riga)에서 개최된 NATO 정상회의는 미국의 제안에 따라 NATO 역외 국가들, 특히 호주, 일본, 한국과의 보다 긴밀한 협력관계 구축 문제를 논의했다. 그 후 NATO는 역외 국가들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맺는데, 호주, 일본, 한국, 뉴질랜드, 파키스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몽골이 글로벌 파트너가 됐다. 누가 보더라도 중국을 포위하자는 것이다.
21세기 역사의 흐름 거스르는 것
물론 미국은 우리의 동맹국이다. 그러나 미국이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중국과의 대결구도를 심화시키면서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방향으로 우리에게 동맹협력을 요구할 때, 우리로서는 그것을 다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이번에 이명박정부가 미국의 중국포위 전략 하에서 한·일 군사정보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명백히 21세기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다. 이명박정부가 국민을 속이면서 저지른 참담한 일의 뒤처리를 감당해야 할 차기정부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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