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논설고문
62주년을 넘긴 올해 6·25의 화제는 단연 장진호(長津湖) 전투였다. 북한의 임시수도 강계와 압록강을 탈환하여 전쟁을 끝내려던 희망의 전투는 미국 해병대 역사에 유례없는 고전으로 기록되었다. 그 전투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두 카투사 병사의 유해가 이제야 돌아온 뉴스는 보훈에 둔감한 우리 정부의 무심함을 질책한 사건이었다.
장진호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 알래스카의 이름 없는 봉우리 하나가 '초신 퓨'(Mt. Chosin Few)로 명명되었다는 소식은 지난일에 무관심한 한국인 특성을 증명했다. 남의 나라 전쟁을 잊지 않으려고 미국은 그렇게 애쓰는데, 우리는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6·25 전쟁 양상은 하루아침에 뒤바뀌었다. 10월 1일 38선을 넘어 북진이 개시된 이래, 국군과 유엔군은 무인지대를 달려가듯 평양과 압록강을 향해 쾌속 진격했다. 맥아더 장군은 병사들에게 "성탄절을 고향에서 맞게 해주겠다"면서 속도경쟁을 부추겼다. 동티는 거기서 났다. 몰래 압록강을 건너와 쥐가 독 안에 들기를 기다리던 중공군의 포위전술에 걸려든 것이다.
낭림산맥에서 발원해 개마고원을 관류하는 장진강에 발전용 댐 건설로 생긴 인공호수가 장진호다. 성난 산줄기들이 출렁출렁 춤추며 내달리는 한반도의 지붕 개마고원은 너무 추워서 농사도 지을 수 없다는 땅이다. 장진호 전투가 벌어진 1950년 11월 말과 12월 초 해발 1000m가 넘는 장진호 지역은 최저기온 영하 30도, 체감온도 50도로 기록된 날이 많았다.
맥아더 장군은 북한 동북방면을 맡은 미 10군단 예하 미 해병1사단에게 장진호 좌안지역을, 미 육군7사단에게 장진호 우안지역을 맡겨 북한의 피란수도 강계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서북방면으로 진격해 오는 미8군과 압록강에서 합류시켜 전쟁을 끝낼 셈이었다.
9월 15일 인천상륙 당시의 피복으로 진격해 올라간 미 해병1사단 병사들은 먼저 추위와 싸워야 했다. 쫓기듯 북상하느라고 제대로 방한장비를 갖추지 못 했던 것이다.
미국에 장진호 전투 기념 산봉우리
거기에 아군의 10배가 넘는 중공군 대병력이 골짜기마다 숨어 기다리는 독 안으로 뛰어든 형국이었다. 한밤 특유의 피리소리는 이국병사들의 사기를 꺾기에 더 없는 무기였다. 깊은 골짜기와 고지를 선점한 중공군의 포위공세에 견디지 못한 미군은 12월 1일부터 철수하기 시작했다.
11월 27일 중공군과의 조우로부터 12월 13일 흥남으로 철수하기까지 17일간의 전투기록은 미 해병대 역사상 전례 없는 고전으로 기록되었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화력과 사기로 밀어붙여 초전은 그럭저럭 버텨나갔다. 그러나 물리쳐도 물리쳐도 파도처럼 밀려닥치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능선과 골짜기마다 숨어 기다리던 적은 철수대열에 화력을 집중시켜 3000명이 넘는 전사자가 났다. 이 가운데 카투사 요원이 900명에 가까웠다.
그 많은 주검을 다 수습할 수는 없었다. 동료의 시신을 수습한 한 병사는 "사냥으로 잡은 짐승의 발목을 잡아끌 듯 수많은 전우의 군화목을 끌어 트럭에 실은 일이 너무 슬프다"고 회고했다. 그렇게라도 수습할 수 없는 주검들은 언 땅을 팔 수 없어 눈속에 파묻고 와야 했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도 태반이 동상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들은 전역 후 모임을 만들었다. 이름은 '초신 퓨' (Chosin Few)라 했다. '초신'에서 살아 돌아온 몇 안되는 전우들 모임이라는 뜻이라 한다. 장진호가 왜 '초신'인가? 여기에 우리의 슬픔이 있다. '초신'은 장진의 일본식 독음이다.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난 지 5년이 되었는데도 우리말로 제작된 지도가 없어, 미군이 일제 때 나온 지도를 작전지도로 썼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관계당국은 즉각 시정 요구를
장진호 전우모임은 그 전투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이름 없는 봉우리 하나를 '초신 퓨'로 명명하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그 운동이 올해 결실을 맺어 미 지명위원회는 6월 15일 알래스카 남쪽 해안지대 추가치라는 국유림의 한 봉우리를 '초신 퓨'로 공식 명명했다. 수륙만리 이국땅에 장진의 이름이 일본말로 불리게 된 것이다. 미 해군도 그 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순양함 한척을 '초신 퓨'로 명명했다.
당시 작전지도에는 유담리, 고토리, 하갈우리, 진흥리 같은 우리말 지명이 표기되었는데, 유독 장진만 '초신'이 된 것은 유감스럽다. 베테랑 전우회 이름까지는 간섭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국유지와 해군함정에 한반도에 없는 이름이 붙은 것은 독립국가의 망신이다. 펄 하버(진주만) 전투를 기념한다고 우리 항만에 '신쥬완'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미국이 어떻게 반응할까. 외교와 국방당국은 즉시 시정을 요청하여 '장진 퓨'산, '장진 퓨'함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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