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말 정상회의서 단일금융감독기구 합의 … 10년간의 논란 끝내
위기안정대책에 까다로운 전제조건 달아 … 또다른 불안요인 예고
유럽은 그 결말이 성공이든 실패이든 '새로운 유럽'을 향한 걸음을 내딛었다. 최근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단일통화동맹에 머물고 있던 유로존은 '재정·은행동맹' 쪽으로 방향을 가져가고 있다. 유로존 위기의 분수령으로 여겨진 지난달말 정상회의에서는 유럽정상들은 금융통합(은행동맹)으로 다가서는 의미있는 합의를 내놓기도 했다. 세부적인 내용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10년 가까이 지속됐던 금융통합 논란이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위기의 또 다른 효과인 셈이다.
문제는 유럽이 '더 통합된 유럽'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는 동안 발등에 떨어진 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리더들은 스페인·이탈리아 등 위험국 국채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단기대책들을 내놨다. 그러나 모호한 전제조건을 달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번의 논란을 예고했다.
◆EU, 예상 외 파격 대책 내놔 = 시장의 낮은 기대를 비웃듯 지난달말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정상회의에서는 예상 외의 대책에 전격합의했다.
일단 위험국들의 국채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과 유럽안정화기구(ESM) 등의 구제기금이 유로존 은행들을 직접 지원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현재는 정부를 통해서만 은행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 경우 정부 부채가 늘어 결국 스페인 등의 국채금리가 치솟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정상회의는 또 구제기금이 위험국 국채를 직접 매입하는 것을 허용했다. 아울러 구제기금의 변제 선순위권을 없앴다. 그동안에는 구제자금을 지원받는 국가에 만일의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구제기금에 우선적으로 변제권을 인정하고 있어 민간 투자자들은 위험국 채권 투자를 기피해왔다.
헤르만 반 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장장 13시간의 마라톤회의가 끝난 후 29일(이하 현지시간) 새벽 언론 브리핑에서 "시장을 진정시키고 위기 재발을 방지하는데 획기적인 돌파구를 열었다"고 자평했다.

◆금융시장, 열렬한 반응 = 금융시장도 이 같은 대책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국제유가는 기록적인 상승률을 보이며 가장 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29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8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9.4% 올라 2009년 3월 12일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이날 금값은 하루에 3.5%나 올랐고, 유럽 주식 시장도 7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프랑스 파리 증시가 4.75% 상승한 것을 시작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 4.33%, 이탈리아 밀라노 증시 6.6%, 스페인 마드리드 증시 5.66% 등 각국 증시는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은행주들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스페인의 산탄데르 은행과 방코 빌바오 등은 6∼8% 상승했고, 이탈리아의 유니크레디트 은행과 그리스의 유로은행과 알파은행 등은 모두 12% 이상 급등했다.
채권 금리도 떨어졌다(가격상승). 특히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전날 6.94%에서 6.33%로, 이탈리아 10년 만기물도 6.2%에서 5.81%로 각각 급락했다.
◆전제조건이 한아름 = 그러나 들뜬 반응을 보였던 시장도 차차 냉정을 찾아가고 있다. 유럽 정상들이 내놓은 성명서를 차근차근 뜯어본 결과 파격대책들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한 아름 달려 있다는 점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새롭게 마련한 지원책들은 △재정적자 감축과 개혁 프로그램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모범국만을 대상으로 하고 △시기적으로는 연말까지 유로존 차원의 금융감독 시스템을 마련한 뒤에 시행키로 했다. 첫번째 전제조건에 대해서는 과연 '모범국'이라는 것을 어떤 기준으로 적용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는다. 또 두번째 금융감독 시스템의 경우에도 10년간 논란만 난무했던 은행동맹의 첫 걸음을 뗐다는 점에서는 평가할 만하지만 시스템 마련까지는 또한번 고비가 있다는 점은 불안하다. 시스템이 완비된 이후에야 스페인 등에 지원이 이뤄질 경우에는 대책의 민첩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장 관계자들은 당분간 이번 합의가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주겠지만 전제조건들 때문에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에셋증권 박희찬 연구원은 "구제기금의 재원이 한정돼 있다는 점이 기본적 약점인 점, 전제조건 때문에 향후 국채 매입 대상국과 독일 사이의 마찰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점, 단일 금융감독기구는 금융 관할권 이양 문제 때문에 세부 방안을 만드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그리스 구제금융 조건 완화 등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도 여전히 불안요소로 남아있다.
한편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거시경제정책의 우선 순위를 긴축에서 성장으로 바꾸고 경기 부양책을 펼치는 내용의 성장고용 협약 체결 등도 합의됐다. 이를 위해 1200억 유로가 경제 취약국가들의 위기탈출과 성장 동력 회복을 위한 사업에 투자된다. 이와 별도로 프로젝트 채권 발행을 위해 회원국들이 50억 유로를 내기로 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기안정대책에 까다로운 전제조건 달아 … 또다른 불안요인 예고
유럽은 그 결말이 성공이든 실패이든 '새로운 유럽'을 향한 걸음을 내딛었다. 최근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단일통화동맹에 머물고 있던 유로존은 '재정·은행동맹' 쪽으로 방향을 가져가고 있다. 유로존 위기의 분수령으로 여겨진 지난달말 정상회의에서는 유럽정상들은 금융통합(은행동맹)으로 다가서는 의미있는 합의를 내놓기도 했다. 세부적인 내용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10년 가까이 지속됐던 금융통합 논란이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위기의 또 다른 효과인 셈이다.
문제는 유럽이 '더 통합된 유럽'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는 동안 발등에 떨어진 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유럽의 리더들은 스페인·이탈리아 등 위험국 국채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단기대책들을 내놨다. 그러나 모호한 전제조건을 달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번의 논란을 예고했다.
◆EU, 예상 외 파격 대책 내놔 = 시장의 낮은 기대를 비웃듯 지난달말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정상회의에서는 예상 외의 대책에 전격합의했다.
일단 위험국들의 국채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과 유럽안정화기구(ESM) 등의 구제기금이 유로존 은행들을 직접 지원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현재는 정부를 통해서만 은행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 경우 정부 부채가 늘어 결국 스페인 등의 국채금리가 치솟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정상회의는 또 구제기금이 위험국 국채를 직접 매입하는 것을 허용했다. 아울러 구제기금의 변제 선순위권을 없앴다. 그동안에는 구제자금을 지원받는 국가에 만일의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구제기금에 우선적으로 변제권을 인정하고 있어 민간 투자자들은 위험국 채권 투자를 기피해왔다.
헤르만 반 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장장 13시간의 마라톤회의가 끝난 후 29일(이하 현지시간) 새벽 언론 브리핑에서 "시장을 진정시키고 위기 재발을 방지하는데 획기적인 돌파구를 열었다"고 자평했다.

◆금융시장, 열렬한 반응 = 금융시장도 이 같은 대책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국제유가는 기록적인 상승률을 보이며 가장 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29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8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9.4% 올라 2009년 3월 12일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이날 금값은 하루에 3.5%나 올랐고, 유럽 주식 시장도 7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프랑스 파리 증시가 4.75% 상승한 것을 시작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 4.33%, 이탈리아 밀라노 증시 6.6%, 스페인 마드리드 증시 5.66% 등 각국 증시는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은행주들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스페인의 산탄데르 은행과 방코 빌바오 등은 6∼8% 상승했고, 이탈리아의 유니크레디트 은행과 그리스의 유로은행과 알파은행 등은 모두 12% 이상 급등했다.
채권 금리도 떨어졌다(가격상승). 특히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전날 6.94%에서 6.33%로, 이탈리아 10년 만기물도 6.2%에서 5.81%로 각각 급락했다.
◆전제조건이 한아름 = 그러나 들뜬 반응을 보였던 시장도 차차 냉정을 찾아가고 있다. 유럽 정상들이 내놓은 성명서를 차근차근 뜯어본 결과 파격대책들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한 아름 달려 있다는 점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새롭게 마련한 지원책들은 △재정적자 감축과 개혁 프로그램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모범국만을 대상으로 하고 △시기적으로는 연말까지 유로존 차원의 금융감독 시스템을 마련한 뒤에 시행키로 했다. 첫번째 전제조건에 대해서는 과연 '모범국'이라는 것을 어떤 기준으로 적용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는다. 또 두번째 금융감독 시스템의 경우에도 10년간 논란만 난무했던 은행동맹의 첫 걸음을 뗐다는 점에서는 평가할 만하지만 시스템 마련까지는 또한번 고비가 있다는 점은 불안하다. 시스템이 완비된 이후에야 스페인 등에 지원이 이뤄질 경우에는 대책의 민첩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장 관계자들은 당분간 이번 합의가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주겠지만 전제조건들 때문에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에셋증권 박희찬 연구원은 "구제기금의 재원이 한정돼 있다는 점이 기본적 약점인 점, 전제조건 때문에 향후 국채 매입 대상국과 독일 사이의 마찰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점, 단일 금융감독기구는 금융 관할권 이양 문제 때문에 세부 방안을 만드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그리스 구제금융 조건 완화 등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도 여전히 불안요소로 남아있다.
한편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거시경제정책의 우선 순위를 긴축에서 성장으로 바꾸고 경기 부양책을 펼치는 내용의 성장고용 협약 체결 등도 합의됐다. 이를 위해 1200억 유로가 경제 취약국가들의 위기탈출과 성장 동력 회복을 위한 사업에 투자된다. 이와 별도로 프로젝트 채권 발행을 위해 회원국들이 50억 유로를 내기로 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