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프레시안 기획위원
인물과 사상/김용관 지음/16,000원
이 책은 한양의 산과 성곽, 마을과 강을 꼼꼼하게 발품 팔아 흔적 복원을 시도한 인문·역사·지리서다.
저자는 서울 속 성곽도시 한양에 얽힌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양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펼친다.
세계 10대도시, 6백년 역사의 수도(首都), 부와 인재의 집결지. 대략 이 정도면 눈치 챌 것이다. 그렇다 바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다.
하지만 "당신은 서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변하기 쉽지 않다.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지리와 역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도대체 한양은 우리 민족에게 어떤 존재였으며 그 흔적은 어떻게 남아 있는지.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는 그런 갈증을 적셔줄 청량제와 같은 책이다. 이 책은 한양의 산과 성곽, 마을과 강을 꼼꼼하게 발품 팔아 흔적 복원을 시도한 인문·역사·지리서다.
한양이라는 공간엔 거쳐 간 조선의 왕, 지식인, 예술가와 그들의 발자취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다. 그 자체가 광범위하고 복합적이며, 입체적인 인문학이다.
저자는 서울 속 성곽도시 한양에 얽힌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양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펼친다.
먼저 산. 저자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 등 한양 도성을 둘러싼 산들을 섭렵한다.
첫 번째 무악재 서편에 자리한 안산(鞍山). 조선 건국 초기 하륜에 의해 산자락에 궁궐 조성까지 추진됐던 서기어린 안산은, 1624년(인조 2년) 이괄의 난 당시 관군이 반군을 무찌른 의미 깊은 요새였다.
안산 자락에 위치한 천년고찰 봉원사도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담겨 있는 곳. 한국불교 태고종 본산인 이 절은 889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서울에선 보기드믄 고찰.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공부를 위해 용맹정진한 독서당을 두었고, 연암 박지원이 소설 '허생전'의 소재를 얻은 곳이기도 하다.
'어진 임금의 산'으로 풀이되는 인왕산은 한양의 주산(主山) 자리를 놓고 북악산과 막바지까지 경합한 명산. 특히 필운대, 청풍계, 반송지, 세검정 등이 '동국여지비고'의 국도팔영(國都八詠)에 꼽혀 한양 명승지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절경이다.
오죽하면 진경산수화의 개척자이자 최고봉인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 인곡유거 등 수다한 인왕산 그림을 그렸을까. 그밖에 풍운의 안평대군이 야망을 숨기고 유유자적하던 무계정사(나중에 소설가 현진건이 거주)와 대원군의 별장 석파정도 인왕산 자락에 있다.
한양의 주산인 북악산. 두말할 필요없는 명산으로 고려사절요에도 도읍으로서의 수월성이 적시돼 있다.
물이 흔하고 맑아 삼청계곡과 백사실계곡(백석동천)에선 요즘도 맑은 물 흐르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린다.
한양의 내사산 중 백호(白虎)에 해당하는 낙산. 인조의 셋째아들인 인평대군의 석양루, 그 맞은편에 효종의 잠저 조양루 등이 있을 정도로 소나무가 울창하고 계곡물도 맑았다,
그러나 19세기 들어서 백성들의 남벌로 민둥산이 되어버리자 1874년 고종은 어영청에 명을 내려 낙산에 소나무 5만여그루를 심게 한다.
낙산 동편 자락엔 조선시대 청백리 이수광의 거처가 남아 있다. 이름하여 비우당. 도승지를 역임했던 그는 1613년(광해군 5년)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낙산 비탈에 비우당(비를 겨우 그을 정도로 누추한 곳)을 짓고 칩거한다. 여기서 조선 최초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을 편찬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에 존재하는 남산. 저자는 남산골 거주자들을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나간다.
출세지향의 남산골 샌님과 정치와 다리를 걸친 명목만의 은퇴자가 그들. 하지만 남산골엔 박제가와 이덕무, 그리고 대동법을 밀어붙인 진보 정치인 김육도 살았다.
다음 성곽. 숭례문에서 시작해 광희문, 흥인지문과 숙정문을 거쳐 돈의문, 소의문 터에 이르기까지 온전하거나 현재 복원 중인 성곽의 옛 모습과 함께 성에 얽힌 역사를 얘기한다.
눈에 띄는 것은 2008년 2월 한 광노(狂老)의 방화로 소실돼 현재 복원중인 숭례문. 태종이 운하를 파려다 대소신료와 백성들의 강력한 반대에 굴복, 포기했다는 것이다.
태종은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1413년 숭례문 남쪽에 연못을 팠다. 그리고 한강과 운하로 연결하려 했다. 그러나 "헛되이 백성의 노동력만 낭비할 뿐, 실용성이 전혀 없고 조운은 불통할 것"이라는 상소에 이 카리스마 넘치는 군주도 그 뜻을 꺾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저자는 서울 성곽이야말로 한양이라는 도시를 규정하는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라면서 그런 의미에서 서울 성곽 복원 사업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한다.
세 번째로 한양 도성 마을. 도성 밖 서쪽 아현동을 시작으로 경복궁 주변, 북촌을 거쳐, 다시 중심가인 종로통, 청계천, 명동, 충무로, 을지로를 훑어본다. 그 다음 남산 아래 동네와 도성의 동쪽을 섭렵한다. 이 탐방을 통해 예전 한양 사람들의 삶을 추정해 본다.
마지막으로 강. 한강 물길을 따라 동에서 서로 광나루, 잠실나루, 뚝섬과 두모포, 동작나루와 노들나루, 마포, 양화나루와 난지도를 탐사한다.
한강 최대의 나루였던 광나루편에선 전략적 요충지였던 아차산과 광진을 놓고 삼국이 벌인 각축의 역사가 그려진다.
잠실나루편에선 조선시대 시인들의 집결지 두 곳이 소개된다. 한양도성의 시인 묵객들이 봄 가을 두모포에서 배를 타고 잠실나루에 내려 줄지어 향하던 곳은 봉은사.
그런가 하면 두무개(한강과 중랑천의 합류 지점)에 있던 저자도 역시 권필, 구용, 이안눌, 김창흡(이항복의 손녀 사위) 등 당대 시인들이 기거할 정도로 시상이 절로 일어나던 절경. 하지만 1970년대 초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건설용 모래 채취로 사라졌다.
선유봉과 잠두봉(절두산), 그리고 꽃과 풀이 많다고 해서 중초도라 불리던 난지도 역시 손꼽히는 명소였지만 지금은 당시의 그림으로나마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을 뿐이다.
특히 한강 서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인 잠두봉을 무대로 벌어진 천주교 박해의 역사는 지금도 현장에 가면 생생하게 당시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발품에 더해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사서와 사가집, 용재총화 등 고전 수십권을 섭렵해 수다한 사건을 추려내 이를 토대로 역사를 복원해 가는 저자의 노력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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